이순신, 삼별초, 그리고 아리랑

[二輪紀行] ep 12. 해남에서 진도

by 최기훈


시대마다 다른 고통과 희망이 있었으나, 노래는 그 모든 것을 끌어안아 지금도 불리고 있다.


해남 우수영에서 바다를 마주한다. 조류는 알려진 대로 사납다. 좁은 해협 사이에서 물살은 좌로 우로 쉬지 않고 뒤엉키며, 소용돌이를 만들어 낸다. 이순신은 바로 이곳에서 열두 척의 배로 나라를 지켰다. 승리의 전설은 오래도록 남았지만, 그 바다를 지휘하던 장수는 이곳에서 최후를 맞았다. 바다는 전장을 품고, 세월은 그 전설을 길 위에 남겼다. 그리고 오늘, 명량해전의 바다는 여전히 격동하고 있다. 거센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전설이 옷깃에 스며든다.


진도대교가 눈앞에 선다. 국내 최초의 사장교다. 내 어릴 적 기억 속의 다리는 붉은빛이었다. 다리는 이제 하나도 아니다. 제2진도대교가 건설되면서 두 개의 다리가 나란히 서 있다. 쌍둥이처럼 바다 위에 모습을 나란히 하고, 섬과 육지를 잇는다. 하나의 다리는 과거를 품고, 다른 다리는 현재를 건넌다. 그러나 두 다리 아래에서 울돌목의 물살은 변하지 않았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본 울돌목은 단순한 바다가 아니었다. 해협의 물살은 제 몸을 꼬아 소용돌이쳤고, 그 소리는 오토바이 엔진음을 집어삼켰다. 나는 다리를 건너 진도 땅에 들어서서 다시 오토바이를 세우고 한참을 그 물살을 바라보았다.


섬에 들어서면 풍경은 달라진다. 바다의 요동은 멀어지고, 너른 들판이 열린다. 섬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평야가 드넓다. 바람은 논과 밭을 가로질러 불어왔고, 물을 가득 머금은 모내기철 논은 저녁 햇살을 받아 바다처럼 번들거렸다.


그러나 이 땅은 오래전 피와 눈물의 무대였다. 고려 말, 몽골에 맞서 끝까지 항전을 이어간 삼별초가 이곳으로 들어왔다. 왕조의 이름을 지키고자 한 그들의 기세는 마지막 순간까지 꺾이지 않았다. 비록 패망으로 끝났지만, 그 의지는 오랫동안 이 땅의 기억 속에 남았다. 폐허로 남은 성터와 안내문 위의 기록이 남긴 것은 패배가 아니라, 꺾이지 않는 기개였다.


진도를 떠올리면 아리랑이 빠질 수 없다. 진도아리랑은 밀양아리랑과 더불어 우리 민족 정서를 대표하는 노래다. 한이 서린 그 선율은 삼별초의 울음에서부터, 이순신의 전장, 그리고 오늘의 아픔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듯하다. 시대마다 다른 고통과 희망이 있었으나, 노래는 그 모든 것을 끌어안아 지금도 불리고 있다.


진도 읍내에 들어서니 식당 간판마다 풍요로운 평야와 바다의 음식을 내세우고 있었다. 꽃게무침 정식 한 상을 받았다. 매콤한 양념에 버무린 꽃게살은 밥 위에 얹자마자 바다의 맛을 터뜨렸다. 수북한 반찬은 소박했으나 정갈했고, 상은 넘치도록 풍성했다. 진도의 밥상은 단순한 풍요가 아니라, 오랜 세월 삼별초와 이순신과 진도아리랑이 빚어낸 열매 같았다. 꽃게무침의 매콤한 맛에도, 수북한 반찬에도 그런 세월의 힘이 밴 듯했다.


진도의 길은 속도를 요구하지 않았다. 오토바이는 조용히 들판과 마을을 지나갔다. 진도를 달린 하루를 돌아보면, 울돌목의 거센 물살보다 꽃게무침 정식 한상의 풍요가 먼저 떠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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