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생 6
여중과 담장을 공유하는 남중 (4)
처음 중학교에 입학한 날 나는 적잖은 충격에 몸을 가누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래도 국민학교 6년 동안 남녀공학이라는 환경에서 생활해 오다가 느닷없이 새까만 남학생들만으로 온통 가득 채워진 운동장에 들어서는 그 기분이란... 그냥 숨이 꽉 막혀 오는 느낌 그 잡채였다. 개인적으로, 학교에서 불량학생들 소위 일진들조차 감히 범접하기가 힘든 크게 두 가지의 부류의 학생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집안이 괜찮거나 잘 살아서 선생님도 특별대우해 주는 학생들 => 주말연속극에 자주 등장하는 약간 비현실적인 재벌/부자/권력자 집안의 자손들... 둘째, 집이 못 살건 빽도 없는 평범한 가정 출신이라 하더라도 오로지 공부 하나만큼은 그 누구 못지않게 잘해서 이른바 모범생 계열로 분류될 만한 우등 학생들 =>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인지라, 성적은 행복순은 못 되더라도 최소 인생 만족도순은 될 수 있기 때문이리라.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태생부터가 "첫째" 케이스에는 절대 해당될 수 없음을 일찌기 깨닫고... 그냥 내가 잘 하는 것 하나로도 충분히 환경을 바꿀 수 있고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방도를 선택했었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그러한 목적이 있었기에, 다행히 우리 동네에서는 제법 알아주는 모범생의 길을 걸어왔다고 자부한다. 누가 봐도 "둘째" 케이스에는 들 수가 있었던 것이었다. 왜 이 시점에서 이 얘기를 하냐면, 남자 중학교에서는 학교생활에 있어서 이런 것이 상당히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남녀공학이었던 국민학교 시절에는 몇몇이 치고 박고 물리적으로 폭력을 행사하게 될 경우에는 어김없이 여학생들 중 누군가가 재빨리 교무실 혹은 옆반 선생님에 제보해서 싸움상황이 종료되는 경우가 허다했었다. 이 때 먼저 때린 학생이 선생님께 야단 맞거나 심하면 징계를 받는 결과까지 갔었다. 그렇게 되면 나중에 이 야단맞은 학생이 제보자에게 그 화풀이를 해야 하는데... 여학생이라서 때릴 수도 없고, 기껏 복수해 봤자 "아이스 께끼" or "고무줄 끊기" 정도가 그 전부였었다. 그래서 나는 "둘째" 케이스라서 불량친구들이 함부로 못한 것도 있는데다가, 자습시간에 떠든 학생들을 선생님께 일러바친다 할지라도 거의 보복당하지 않는 행운의 환경을 지난 국민학교 6년간 온전히 누릴 수가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남자중학교는 완전히 별개의 세상이었다. 일단 나처럼 내성적이고 정적이며 섬세한 여성취향의 남학생이라면, 언제든지 집단 따돌림 소위 왕따를 당하기에 필요 충분 조건을 모두 다 갖추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긴 하지만, 이미 이곳 남중에도 일진이 형성되어 있었고... 게다가 학교 싸움 1짱부터 최소 10짱까지는 이미 서열이 다 매겨져 있다고 했다. 여기서는 공부를 잘 하건 못 하건 그리고 집이 잘 살건 못 살건 아무 상관없는, 어쩌면 아마존 밀림과도 같은 야생 그 자체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