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꾸준히 달려온 나의 이생 시리즈 1~3탄 연재가 드디어 끝맺음에 다다랐다. 나의 일생은 탄생~국민학교 6학년, 나의 이생은 중학교 1~3학년 이야기였으니, 자연 나의 삼생은 결국에는 고등학교 1~3학년으로 넘어갈 것으로 충분히 예측이 된다. 다만 언제쯤 그 "나의 삼생" 시리즈가 시작이 될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라서 문제지 말이다...
나의 이생 시리즈 마지막 편은 중학교 3학년 끝무렵 발생한 안타까운 이야기를 다루고자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1992년 12월 초, 고입 시험을 불과 1주일~10일 가량 남겨둔 시점이었던 걸로 기억이 된다.
3학년 나의 반에는 반에서 키가 제일 큰 OO락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이 친구는 집도 꽤 괜찮게 살다보니, 그다지 공부에 열심을 두는 편은 아니었다. 아니 머리는 좋지만 공부보다는 노는 걸 더 좋아하는 쪽에 속하는 학생이었다. 이 OO락이는 나름 명석한 두되 덕에 수업시간에 들은 내용 정도로도 상당히 괜찮은 성적이 나오는터라서 더우기 공부하고는 담을 쌓고 지내던 소위 날라리였다. 수업시간에는 뒤에서 몰래 친구들이랑 500원짜리 짤짤이(네이버 사전 ; 손 안에 있는 동전의 갯수를 맞히는 놀이)를 해서 부지런히 돈을 버는 친구였다. 그것도 지겨우면, 마분지 한 장을 가져다가 "트럼프" 를 그려서 포커를 치기도 하던 간큰 또라이 친구이기도 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나이키 운동화를 샀다고 자랑하기도 하는 등등 지금 생각해 보아도 참 이상한 행동을 많이 하던 괴짜 친구였다. 집안 형편도 좋고 꽤 큰 액수의 용돈도 받는 것 같던데, 뭐 그리 돈 쓸 일이 많은지 틈만 나면 반 친구들 중에서 약간 찐따 같은 애들에게서 삥(네이버 사전 ; 상대방을 협박하여 빼앗은 돈이나 물건 따위를 속되게 이르는 말)을 뜯는 게 예사였다. 한번은 그날따라 수업이 일찍 끝나서 대낮에 집에 간다고 학교 앞을 나서는 길이었는데, 학교 담장 근처에서 그 OO락 친구가 같은 학교 1학년 학생 두 명을 붙잡아 놓고 몇 대 쥐박으면서 돈을 뜯어내는 걸 목격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워낙 키가 크고 덩치가 좋아서 얼핏 보면 고등학생으로 보일 정도이니 웬만한 애들이라면 충분히 돈을 뜯기고도 남을 비주얼이기는 했다. 반에서 싸움 1짱이다 보니, 반 친구들도 이 녀석의 심기를 혹시 건드리기라도 할라 조심에 조심을 하곤 했었다. 당시 남자 인문계 고등학교는 경O고-계O고-문O고-신O고 순으로 입학가능 커트라인이 어느 정도 드러나 있었는데, 이 OO락의 성적은 이미 그 커트라인을 거뜬히 넘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던 터라 그냥 그대로 고입 시험만 치르기만 하면 나와 같이 경O고 입학은 벌써 따논 당상이었다. 그러다 보니 OO락이는 수업시간에만 살짝 집중할뿐 더 부지런히 노는데 온통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앞서 언급한 12월 초의 어느 월요일 아침이었다. 등교해서 교실로 들어섰는데, 아침부터 무언가 어수선하니 반 친구들이 둘셋씩 모여서 웅성웅성대고 있었다. 뭔 얘기인가 싶어 한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우리반 애 중에서 누가 교통사고로 죽은 거 같다는 얘기였다. 주말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재빨리 반 친구들은 아직 등교하지 않아 비어 있는 책상들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하나 둘 비어 있던 나머지 자리들이 채워지고... 마지막 딱 하나 남은 자리... 그건 바로 OO락의 자리였다. 엊그제 토요일에도 함께 수업을 듣던 친구가 갑자기 죽었다니. 그리 많이 친하진 않았지만, 힘없고 공부만 잘 하는 나를 굳이 괴롭히지 않았던... 그런 본심은 선한 친구였는데... 잠시 후 조회 시간. 베토벤 머리의 담임선생님 대신에 옆반 담임쌤이 들어오셨다. 우리 담임선생님은 멀리 대학병원 장례식장엔가 급하게 사실 확인하러 가셨단다. 순간 반 친구들 모두가 숙연해지는 듯 했다. 그리고 쉬는시간에 화장실을 다녀와서 보니, OO락의 책상 위에 새하얀 국화꽃 한 다발이 올려져 있었다. 평상시 유달리 그 OO락이를 아껴주시던 어느 과학 선생님이 그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에 비통해 하며 얹어두고 가셨다고 했다. 같은 반 친구가 떠나가고 남은 자리에 그 대신 남겨진 그 꽃을 보니, 웬지 약간은 허무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뭐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수업을 다 마치고 종례시간이 되어서야 담임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오셨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비통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차근차근 덤덤하게 설명해 주셨다. 사건인즉슨... 평소 불심이 깊었던 OO락의 어머니가 고입 시험을 앞두고 자주 근처 절에 찾아가곤 하셨단다. 그런데 바로 어제 일요일 새벽엔가는 고입 시험이 불과 2주도 채 안 남은 상황이라서 특별히 OO락이도 함께 절에 데러가셨다고 했다. 다른 지인들과 함께 봉고차에 모두 타고 새벽 일찍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고 오던 중에 교통사고가 크게 났는데... OO락의 어머니를 비롯한 다른 분들은 경상 혹은 중상의 피해를 입은 반면, OO락이 혼자 안타깝게도 사망을 하고 만 모양이었다. 담임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나를 포함 모든 반 친구들은 더욱 더 침울해졌다. 그러자 담임선생님이 어렵게 힘을 내어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죽은 사람도 죽은 사람이지만, 산 사람들은 또 살아야지. 이제 고작 열흘 뒤면 고입 시험이다. 우리 모두 OO락이를 위해 오늘 딱 하루만 슬퍼하자." 그리고는 담임선생님의 지시로 우리 모두는 일제히 약 1분간 OO락의 명복을 비는 묵념을 하였다. 그러고 나서 담임선생님은, OO락의 책상 위에 모여진 그 국화꽃 다발과 다른 여러 친구들의 편지와 쪽지들을 한켠으로 치우라고 하셨다. 그것들은 전부 나중에 OO락의 가족에게 전달할테니, 이제 너희들은 모두 잊고 고입 시험 준비에 전념하라고도 덧붙이셨다.
그렇게 OO락이는 고입 시험 직전에, 중학교 3학년 고작해야 16살 어린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나갔다. 그리고 경O고 커트라인 안에 안착해 있던 OO락의 죽음으로 인해 그 대신 어느 이름모를 한 학생은 경O고를 입학할 수가 있었으리라. 고입 시험에 불합격해서 1년을 통째로 재수해야 하는 대신에 말이다. 이렇게 오늘은 마음아픈 이야기로써 나의 이생 시리즈 기나긴 여정을 끝마무리해 보려 한다. 다음 시리즈를 기약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