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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특급썰렁이 Oct 06. 2024

나의 이생 29

남중 옆 여중 (9)

날이 갈수록 성적이 올라가던 중학교 3학년 1학기의 어느 모의고사날, 그날따라 난이도가 쉬웠다는 둥 전반적인 평균 점수가 올라갈 것이라는 둥 많은 얘기들이 오갔다. 아니나 다를까 모의고사 끝나자마자 재빨리 매겨보니, 전 과목 다 합쳐서 딱 2개 틀린 것 같았다. 어 이 정도면 전교 1등도 가능하겠는걸. 베토벤 머리의, 음악 담당이신 담임선생님이 오시더니만... 너 2개 틀려서 이번에 전교 2등이네. 옆반에 원래 1등 하던 애가 딱 1개 틀렸단다. 잠깐 그 녀석에 대해 소개하자면, 몇 달 전에 전학을 온 친구인데... 전학 온 첫날부터 보충수업 끝나기가 무섭게, 옆반인 우리반에 와서 축구하러 가자 하고 신나게 뛰어놀던 여드름투성이의 괴짜 그 자체였다. 왜냐하면 전학 오고나서 불과 2~3일만에 치른 중간고사에서 전교 1등을 대뜸 해 버린 괴물 중의 괴물이었기 때문이었다. 한 마디로, 마치 "오타니 쇼헤이" 같은 만화 속에서 불쑥 튀어나올법한 신기한 학생이었다. 이 친구는 전학 온 이후로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단 한번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더니만, 결국 멀리 서울의 그 유명한 대O외고(당시 1년에 서울대를 약 200명 가까이 합격시킨다는)에 합격해서 올라갔다. 담임쌤이 다짜고짜 나에게 이런 제안을 하셨다. 너 혹시 과학고 갈 생각 없냐?나야 무조건 좋지. 그래서 단번에 과학고 가고 싶다고 대답했었다. 며칠 후 담임쌤이 다시 나를 불러서... 과학고 원서를 내려면 중학교 3년 내내 국어, 영어, 수학, 과학 모두 다 "all 수" 가 나와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내가 중 1 1학기 때엔가 한번 "우" 가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원서조차 낼 수가 없단다. 이미 나는 없는 돈 끌어모아 힘겹게 "과학고 입시문제집" 을 구해서, 꾸역꾸역 풀어나가기 시작했던 참이었다. 하는 수 없었다. 당시 대구에 소재하고 있던 경O과학고는 물 건너 간 것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공부를 잘해야겠다는 나의 열망은 꺾이지 않았다. 중학교 3학년이었던 1992년 10월 18일 무렵 주시 외곽의 건O읍으로 갑자기 이사를 갔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버스로 대략 30분 내외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래서 저녁 20시까지 전교생 모두가 의무적으로 참석하는 야간자습을 하고나서, 다시 22시까지 학교에 남아서... 더 공부하기를 희망하는 학생들을 위해 마련된 별도의 교실에서 추가로 공부하였다. 버스 막차를 타고 집에 도착해서, 간단히 씻고 야식 먹고나면 거진 23시쯤 되는데, 공부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라는 어머니의 독촉에 제까닥 방의 형광등을 껐다가는... 몰래 일어나 다시 공부를 재개하였다가 한번 걸려서 크게 혼난 적도 있었다. 그렇게 죽어라 공부했다. 어머니가 전깃세 많이 나온다고 그만 공부하라고 아무리 말려도...

      

공부 자랑은 이제 그만해도 될만큼 충분한 것 같다. "최후에 웃는 자가 바로 승리한 자다." 라고 했던가. 소싯적에 왕년에 공부 한번 잘 해 본 적 없는 사람이 과연 어디에 있겠는가. 참고로, 나는 경주시에서는 최고라고 하던 경O고등학교에 결국 합격하였다. 경O과학고 포기 이후 포항의 포O고등학교도 고려를 해 보았으나, 거긴 기숙사 사용 문제 때문에 애시당초 배제할 수밖에 없었다. 그토록 눈이 빠져라 공부했던 고입 시험의 결과는, 1교시 국어/도덕/미술 ; 1문제 틀림, 2교시 수학/과학/음악 ; 2문제 틀림, 3교시 영어/사회/기술 ; 만점... 다 합쳐서 전부 3개를 틀렸다. 200점 만점에 197점. 사실은 틀린 3문제 중에서 2문제는 답을 알고 있어서 처음에는 제대로 정답을 기입했다가 종료 직전에 고민 끝에 답을 고치는 바람에 날려버려서 참 아쉬웠다. 고입시험날 셤 종료 때까지 기다리셨던 어머니가 수고했다면서 짜장면을 사 주셨다. 내가 마지막에 답을 고쳐서 2문제나 날렸다는 소리에, 어머니는 짜장면을 먹다 말고 "그러게 좀더 신중하게 차근차근 잘 풀지 그랬어?" 라며 타박을 하셨다. 수석 입학을 할 수도 있었을텐데... 나중에 알고 보니, 3문제 틀린 바람에 전교 23등으로 입학했다고 한다.


오늘도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내 자랑을 하니, 마음이 조금은 후련하다. 씁쓸한 얘기지만, 요즘은 이렇게 자랑할만한 꺼리가 없어진 나이라서 더더욱 그리 느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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