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짧은 꿈같은 봄날
해마다 한두 차례 가는, 차로 두세 시간 거리의 그 도시.
그곳에 가면 항상 가는 인공 호수를 낀 그 호텔.
숙박비에 포함된 더할 나위 없는 조식 뷔페.
어느덧 우리 가정에 주께서 허락하신 소박한 사치의 루틴.
여행 계획.
갈 수 있는 날짜를 고르고 호텔을 예약하는 것은 부인 담당.
어느 날 부인이 남편에게 말했다.
"이젠 이런 일을 당신도 해 보세요.
내가 없으면 어쩌려고요."
남편의 대답.
"당신 없으면 이젠 그런데 안가."
그렇다.
지금 3 식구.
이 세 식구가 있으니 여행이 즐겁구나.
여행코디인 내가 없으면 남편은 여행을 안 갈 거고
남편이 없으면 장거리 운전하기 좋아하지 않은 나도 여행은 안 할 것이고
만약 늙은 귀여운 아들이 없으면 노부부 두 명이 재미가 없을 터다.
여행 최소 인원은 3명이구나.
이 세 명이 함께 있는 동안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야지.
(부부가 코로나후유증으로 이 여행도 이젠 힘들게 되었다. ㅠㅠ)
가능한 한 4월 초순에 그 도시에 간다.
오래된 그 도시 전체와 호텔이 위치한 호수의 벚꽃이 장관이기 때문.
그야말로 울긋불긋 꽃대궐.
벚꽃은 어느 날 슬며시 폈다가 후다닥 떨어져 버린다.
대략 개화시기는 있지만 해마다 언제 필지는 누구도 모른다.
꽃샘추위로 비바람이라도 오면 끝난다.
호텔을 예약하고 그날 꽃 피기를 기다릴 뿐.
어느 해 4월 초.
여행 시기와 개화 시기가 기막히게 맞물렸다.
북쪽인 우리 동네에서도 벚꽃 망울이 터지기 시작했다.
<차 안에서>
거진 3시간의 운전이 전혀 힘들지 않았다.
늦게야 장만한 스마트폰.
그것으로 차 안에서도 들을 수 있는 음악- '봄날은 간다'
아들은 뒷좌석에서 나름 잘 놀고 있고
남편은 운전을 하는데
나는 그 음악 메들리를 스마트폰으로 검색 들려준다.
오리지널 가수 백설희에 이어 조용필 나훈아 장사익 심수봉 주현미 이미자...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이 곡을 부른다.
같은 곡 다른 느낌.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서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꽃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딸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아아 ~봄날이 가고 있다.
내 청춘의 봄은 반세기 전에 이미 가 버렸지만
오늘 이 시간의 이렇게 아름다운 봄도 가고 있구나.
때로는 흘러간 봄의 애틋함이,
때로는 흘러가고 있는 봄의 안타까움이,
또는 언젠가 우리 중 누군가 떠난 후 이 눈부신 봄날에 남은 이들이 가질 그리움이
이 노래를 듣는 우리 마음속에 깃들어 있다.
3년 전 딱 이때 아버지가 코로나로 소천하셨다.
마지막 얼굴도 못 뵙고 밀봉되어 관 채로 병원에서 인계받은 시신.
화장되고 한 줌 흙이 되신 아버지를 안치하고 돌아오는 길, 온 세상이 벚꽃.
우리에게 오가며 맘껏 꽃구경 하라고,
해마다 벚꽃 필 때 당신을 기억하라고
아버지는 딱 이때 소천하셨을까...
<호반 길을 걸으며>
벚꽃들이 꽃구름을 이루었다.
올 때마다 들리는 순두부집의 이층 창가 너머로도 벚꽃이 만발하다.
해지는 벚꽃거리를 걷는다.
이젠, 차 안에서 익힌 노래를 연습해 볼 시간.
꽃구름 아래로 가족이 걸으며 부부의 버전으로 불러본다.
어둑한 초저녁,
꽃구름 아래 호수 수면에 봄의 꿈 조각인 듯 연분홍 꽃잎이 떠다닌다.
계곡에는 지나간 청춘의 아름다운 추억들이 꽃잎이 되어 둥둥 떠내려간다.
길가에도 연분홍색 카펫이 깔렸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린다.
<노래방에서>
오래간 만에 노래방.
대부분의 시간은 아들 차지.
동요 복음성가 만화영화 주제가...
아들이 다음 노래를 선택하는 틈을 타서 나는 얼른 '봄날을 간다'를 선택했다.
충분히 들어서인지 기적적인 100점이 나왔다. 야호!
오늘 밤 꿈을 꾼다면 그건 당연히 연분홍 색깔.
아마도 청노새 딸랑대는 소리도 들릴 것이다.
이렇게 봄의 하루가 간다.
이 노래를 만드신 분과 맛깔나게 부르신 오리지널 가수님께 감사!
이 노래가 없었다면 우리의 봄 묘미는 절반도 안 될 터.
이 노래가 봄이 봄 되게 한다.
https://youtu.be/Hm_bg7 Vosds? si=2 rB0 fVUqE2 O21 VZ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