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
<오십 년 넘은 엄마의 화장품통>
엄마가 돌아가셨다.
구순이 넘으신 엄마.
아무리 멋을 내도 할머니.
사위라도 방문할라치면 머리에 구르프를 감고 화장을 하시고 멋을 내신다.
이 나이에 뭐 필요하냐 하면서도 때마다 딸이 이런저런 화장품을 사 드리면 좋아하신다.
인권의 약자-아이, 여자, 동성애자, 장애자 그리고 노인.
그래서, 할머니가 할머니지 웬 화장이야? 은근히 하는 이 생각도 인권을 무시하는 처사다.
어느 드라마에서 할머니 김혜자가 친구와 피부과에 가는 장면이 나온다. 젊은이들이 두 할머니를 보면서 수군거리는 장면이 나온다.
할머니는 예뻐지는 권리도 없다는 무시. 무얼 얼굴에 발라봐도 쭈글쭈글 할머니고, 머리에 구르프를 감아봐도 파뿌리 같은 윤기 없는 성긴 머리칼에 뒷머리가 휑한 할머니인 걸 웬 치장?이라는 무시함.
칠순이 다 되어 가는 나도 내 딸도 은근 그런 친정 노모를 흉봤다. (용서하세요, 엄마)
딸이 말했다. "엄마, 할머니는 이 나이까지 저렇게 멋을 내시니 돌아가실 때도 '잠깐, 화장 좀 하고'하시고 돌아가실 거예요."
이건 흉보는 거다. 여자가 여자에게. 그 세월까지 살아 보지 않는 여자는 결코 알 수 없는 늙은 여자의 마음.
그렇게 멋을 내는 엄마가 밤새, 주무시듯 돌아가셨다.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달려갔지만 엄마는 이미 만나지 못할 곳에 가 계셨다.
발인하는 날 아침, 마지막으로 엄마를 뵐 수 있는 시간.
관 속에서 주무시고 계시는 엄마.
발인 예배를 마치고 가족 한 사람 한 사람 엄마를 만났다. 내 순서가 되었다.
공무원 박봉으로 다섯 자녀와 아빠를 수발하느라 평생 종종거리며 사셨다. 세탁기도 청소기도 없는 시절, 아침마다 연탄 불로 너덧 개의 도시락을 싸셨다. 그것도 가게를 하시면서.
나이 드시고서는 허리가 좋지 못해 너무 힘들어하셨다.
그러다가 손이 떨리셨고 치매로 섬망에 시달리셨다.
끝내는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생활할 수 없으셨다.
그러셨던 엄마.
엄마, 이제는 모든 것 놓으시고 그곳에서 편안하세요.
아픈 허리도 떨리는 손도 이젠 그곳에서 아프지 않으시겠지요. 고생하셨어요, 사랑해요, 엄마.
엄마 얼굴에 내 얼굴을 가져다 대었다.
단단하고 차가운 감촉.
그런데 화장이 되어 있었다!
손녀 말이 맞네, 할머니 돌아가실 때도 화장하실 분이라는 말.
그런데 인생의 마지막 화장은
본인이 아닌 타인이 해 주신 것이었다.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