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한 가난
1988년경, 아들이 특수유치원 '안당의 집'에 다닐 때였다.
유치원 자모 몇 명이 리따선생님 댁을 방문하기로 했다.
그녀는 미국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마치고 한국에 오셔서 이 가톨릭 특수유치원에서 최저 생계비만 받고 교사로 봉사하시는 흑갈색 머리의 미국인 아가씨.
재가수녀님.
반갑게 맞아 주시는 리따 선생님의 안내로 들어간 곳은 변두리 주택가의 이층 골방이었다.
부엌 겸 현관으로 쓰이는 어둑한 곳에는 연탄이 쌓여 있었다.
"아니, 리따선생님, 연탄불 갈 줄 아세요?" "네, 잘해요, 그리고 주인 아줌마 도와주세요."
한 명이 이럭저럭 잘 수 있을 방 안에는 조그만 앉은뱅이 책상 하나.
벽에는 유치원 우리 꼬마들과 찍은 사진들과 미국에 두고 온 가족들 인듯한 사진들,
한 켠에는 단정하게 갠 이불.
미국 사람이 사는 곳이라 적어도 소파 정도는 있어 그 곳에서 품위있게 담소를 나눌 것이라는 나의 예상은 어이가 없는 것이었다.
그 좁은 방 안에서 너댓 명의 여자들이 옹기종기 몸 부딪치며 앉아서 계속 웃음 꽃을 피웠다.
며칠 전, 지인의 호사로운 집들이갔다가 시샘과 불평으로 참패 당했던 나의 마음에 다시 감사가 돌아왔다.
연탄은 커녕,스위치 만 누르면 냉난방이 되는 아파트에 살면서도 불평 불평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고 누구에겐가 죄송해진다.
어쩌다, 남편 연수차 잠시 미국 땅 피츠버그에 살게 되었다.
시즌마다 예쁘게 장식되는 그림 같은 집들.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을 그냥 벌컥벌컥 마실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신선한 놀라움이었는지.
광대하고 아름다운 자연에 한껏 도취되다가 가끔 리따가 생각났다.
그녀는 왜 이 곳을 떠나 남의 나라 한국에 갔는가?
그 어려운 한국말을 배워가면서 그것도 장애아 유치원으로.
괴성을 지르며 책 걸상에 오르는 애, 잠시 눈 팔면 앞에 놓인 것을 몽땅 뒤집어 엎어 버리는 애, 체구는 크나 똥 오줌 기저귀를 갈아주어야 하는 애, 아니면 아예 걷지도 못하는 애. (이런 우리 아이들에게는 리따의 우람한 체구는 적격이다.)
그런 아이들을 도와주기 위해 아니 사랑하여, 불편한 나의 나라에 가 있는 리따를 생각하면 나는 부끄러졌고 그리고 자유로워졌다.
한국에서 6 ,7년 근무를 마치고 리따는 뉴욕에 와 있단다.
그해 성탄 휴가 때, 아이오와주의 본가로 가는 길에 피츠버그 우리집에 하룻밤 묵고 가시겠다는 반가운 전화가 왔다.
우리에게 줄 선물을 준비했다며 선물 포장을 푸는 그녀를 보며 내심 부담이 갔다. '여기서도 거의 보수를 받지 않으실 텐데 무슨 돈으로...'
앞에 펼쳐진 딸 애의 선물은 아름다운 흰 스웨터.
'꽤 비싸겠는데..'
"바자회에서 2불 주고 샀어요"
'휴, 안심이다.'
그녀가 가장 먹고 싶다는 김치찌개가 부엌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고, 리따는 내 아들을 무릎에 안고 영어로 된 성탄책을 한국말로 옮겨 들려주고 있다.
그녀가 역시 바자에서 아들 선물로 사 온 책.
"... 그래서 세 박사님은 말구유에 있는 아기 예수에게 '세배'를 했어요..."
딸애와 나는 킥킥 웃으나, 진지하게 듣고 있는 내 아들과 리따.
그 두 사람은 결코 한국말을 능통하게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경배'를 했다는 말이나 '세배'를 했다는 말이나 그 무슨 문제랴?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누추한 말구유에서 태어나신 '그 현장'에 그들은 들어가 있었다.
일반 학교에서는 한 교실에 수십명의 학생들에게 교사들은 지식을 가르친다.
아니 학원에서는 백명 이상도 가능하다.
빨리 빨리, 많이 많이...
그러나 장애아 교육현장에서 나는 또 다른 세상을 보았다.
영어 단어를 가르치고 수학을 가르칠 것인가?
정상인 일반 사람들이 보면 참으로 답답한 교육이다.
몇 개월을 걸려서 양말 신는 법을 배운다. 수십번은 교육을 해서 자기 이름을 부를 때 '네"하고 대답하면 잘 했다고 난리가 난다.
온 방바닥에 밥을 수십번 흘리고 난 후에야 숟가락으로 음식을 입으로 넣게 되는 법을 배운다.
아들이 그곳 특수학교에 다닐 때, 한 퇴직간호사 할머니가 매 주마다 아들 한명을 위해 오셔서 도와주셨다.
바쁜 현대생활에, 경제적, 능률적이라는 말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참으로 비생산적이고 계산이 맞지 않는 이상한 세계!
그런 세상도 있다.
왜 선교사님들은 문명의 쾌적함을 마다하고 빈곤하고 불편한 오지로 기꺼이 떠나나?
믿음의 길을 간다는 내가 그들을 이해 할수 없거늘, 어찌, 영광 그 자체의 하늘나라를 포기하고 죄악덩어리의 지구 땅을 선택하여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것도 셀 수 없이 많은 밤 하늘 별 아래 서면, 먼지보다 작게 느껴지는 나를 위해 오셨다니...
모자라는 우리 아들로 인해 가끔씩 만나는 아름다운 이들.
가난을 선택한 자. 불편을 선택한 자.
모자르지 않으면서도 모자란 생활을 선택하여 자유롭게 사는 이들.
귀한 분들을 만나는, 삶의 보너스를 주는 모자라는 귀한 나의 아들.
아름다운 꽃의 계절에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