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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명탐정, 아들의 장결핵

안개속의 병명 찿아 삼만리

by 제이

아이가 태어났을 때 의사는 말했다.
"선천적으로 전체적 면역이 약한 다운증입니다.
감기가 들면 바로 폐렴으로 발전하고요.
시력, 청력, 심장들을 잘 체크하셔야 합니다.
수명은 평균 십 년 정도고요..."

무서운 의사의 예언에도 아들은 스무 살 넘어까지 자잘한 병으로 병원은 무시로 다니나 나름 잘 자라고 있었다.

아들이 언젠가부터
계속 체중이 줄어들고 있었다.
잘 먹지도 않고 먹으면 계속 설사.
동네 여기저기 병원을 가봐도 원인불명.
잠들면 땀 흘리는 야간 발한 증상에 혹시 결핵?
일반 종합 건강검진을 했다. 폐도 정상이고 별문제가 없다.(청소년이라 장 내시경은 생략)
점점 더 야위어가는 아들.
원인을 모르니 몸을 보하기라도 하려고 한방 병원에 가서 약을 지었다.
한약을 먹은 아이는 이젠 토하기까지 한다.
'결국 이렇게 아이가 가는가 보다.' 아들 장애인 친구 중, 어느 날 속절없이 하늘로 떠난 아이들이 생각난다.
'아니다. 큰 종합병원에 가 봐야지.'
대학병원에 갔다. CT로 폐를
찍은 의사가 더 큰 종합병원으로 가라고 한다.
결핵성 장염을 의심한다.
결핵? 결핵은 폐에나 생기는 게 아닌가?

장 내시경 검사를 했다.
어른들도 고통스럽고 불편한 검사.
난리를 피우면서 준비하고 실시한 내시경 검사를 마치고 나온 의사의 말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결핵이면 괜찮은데요..."
아니, 결핵이라 해도 기가 막힐 판인데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
크론 씨 병.
입에서 항문까지의 모든 소화기관 점막에 궤양이 생기는 병. 약이 없는 불치병.
결핵은 난치병. 장기간의 투약이 힘드나 약은 있다.
조직 검사로는 결핵과 크론 씨 병 구별은 안된다. 일단 결핵 약 투약을 어느 정도 한 후, 예후를 보고 구별한단다.
한 움큼 약들을 먹으면서 혹 크론 씨 병일까 봐 나름 다른 대책을 알아본다.
수소문해서 난치병 자연요법 치료하시는 분을 멀리 찾아갔다. 결핵성 장염증이나 크론 치유법은? 고개를 흔든다.

알아보니 갖가지 결핵 동우회가 있었다. 그야말로 온몸 부위마다 결핵이 생길 수 있다. 폐, 대장, 뼈, 입술, 성기에 이르기까지.
그래도 결핵이라면 약만 제대로 먹으면 낫는다. 문제는 증상이 나아 보여도 9개월간 먹어야 한다. 약이 워낙 세어 위, 간 등에 천공이 생길 수 있어 계속 검사를 해야 한다. 임의로 중단하면 거진 불치병이 된다.

기가 막히지만, 옛날이면 시름시름 앓다가 죽을병인데 병명을 알고 약도 있으니 감사하다.
예전에는 주위에서 자녀가 의대 진학하면 내심 부럽기만 했는데 이젠 감사하다.
열심히 공부해 의술을 베풀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게 된다.

일단, 그 양과 질이 징그러운 결핵 약을 먹이며
갖가지 야채, 고기 삶은 물로 죽을 만들고 소화가 쉬운 두부를 빠뜨리지 않게 식단을 짰다.
한 달 후.
그 힘든 장 내시경을 다시 했다.
장이 깔끔해졌다.
걱정했던 크론이 아니라 결핵이다.
다행히 간과 위도 괜찮다.
내시경으로 보이는 장은 깔끔하나 균을 다 없애려면 약을 9개월 먹어야 한다. 괜찮다고 약 복용을 임의 중단하면 재발 시 약효가 듣지 않는단다. 아이고 무서워라.
2021년 통계로 우리나라 청소년 결핵 발병률이 OECD 국가 중 1위란다. 놀라운 일이다.

법적으로 규정된, 수많은 이름도 생소한 불치병과 난치병이 있었다.
하루하루 그냥 살아가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 인지...
다행히 이런 희귀병들은 보험 혜택이 크다.
아들의 장결핵약 부담도 얼마 되지 않았다.
오랫동안 힘써 공부하신 의사 선생님이 계심이 감사하다.
나라의 의료시술 시스템과 지원이 새삼 고마웠다.
그리고 그 징그러운 약을 "싫어" 하면서도 9달간 먹어준 아들이.

아들이 계속 오른쪽 빰이 아프단다.
엔간히 아프지 않고는 아픈 기색을 안 하는 아들이 아프다면 꽤 아픈 거다.
요사이 좀 피곤해 하긴 했다.
병원에 갔다.
"작년에도 와서 x-ray, 사진 찍었네요.
그때 별것 없었네요."
사진상 괜찮다지만 아이는 아프다는데...
대학병원에 갔다.
그곳에서는 다시 치과 전문 종합병원으로 가 보란다.

치과 종합병원에서 이런저런 검사로 드디어 아들 빰 통증의 원인을 찾았다.
왼쪽 빰 뼈가 기형.
음식 등을 먹을 때 움직이는 뼈관절이 선천적으로 기형이었다. 그래서 아팠던 것.
그. 랬. 구. 나. 가슴이 아프다...
다행인 건 그래도 더 이상 진전은 안된단다.
해결책은 없지만 그래도 엄마 탐정은 아들의 통증 범인을 찾아내었다!

여느 아이들은 돌 때쯤 걷지만 그때 아들은 겨우 기어만 다녔다. 너덧 살까지 안고 다녀야 했다.
때로는 온몸에 발진이, 수시로 충혈되는 눈, 때로는 밤새 구역질을, 계속되는 설사.
귀안이 기형이라 계속 치료.
허긴 태어날 때 양손이 세 개씩 붙어있어 세 차례 수술도 받았다.
요즘은 체중이 줄었다가 늘었다가 하는 갑상선 기능 이상이 생겼다.
태어날 때 예상은 했지만 이런저런 약한 몸이다.
그러나
평균수명 10년이었던 다운증 아들이 이렇게 마흔이 넘도록 살아있다!
태권도장을 다닐 정도로 아들이 오늘도 건강하게 살고 있음은, 의학의 발달과 좋은 의사 선생님들과 그리고 탐정인 엄마 때문이 아니겠는가?

엄마는 탐정이다.
아들을 해치는 병이라는 범인을 잡으러 온갖 병원을 찾아 헤매는.

요즘 아들의 배 둘레는 나날이 굵어지고 있다.
예전 투병 때를 생각하면 행복한 고민인가?
그래도 스타일은 영 아니다.


최근 왼쪽 가슴이 아프단다.

구역질을 한다.

몇몇 병원을 데리고 갔다.

원인 불명.

엄마의 인터넷 폭풍검색. 찿았다!

위역류성 식도염.


지난주부터 아들이 밤에 땀을 뻘뻘 흘린다.

엄마는 다시 탐정 모드.

인터넷 검색도 들어가고 이 병원 저 병원에 데려 가 본다.

안개 속의 범인을 찿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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