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보는 클래식 음악
십여 년 전 어느 날, 가족이 클래식 연주회에 갔었다.
연주가 시작돠고 발달장애인인 아들도 나름 연주를 즐기고 있었다.
정상인 중학생 네댓 명이 우리 가족 앞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연주가 시작되자 그들은 지겨운 듯 몸을 비틀어대더니 중간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우르르 퇴장.
아마 음악 숙제로 음악회에 왔나 보다.
지능이 낮은 아이도 즐길 수 있는 그 아름다운 음악이 그들에겐 고문이 된 듯하다..
1990년대 어느 날,
지인이 아들에게 생일선물로 비디오테이프 한 개를 선물했다.
무려 60여 년 전 1940년, 디즈니사에서 나온 애니메이션 'Fantasia'
그 당시 아들은 디즈니 동화 시리즈 책들은 물론 카세트테이프들도 하나씩 거진 다 사 모았다.
언젠가부터 디즈니 dvd가 나오면서 다시 컬렉션이 시작되었다.
생일 때 받은 '환타지아'도 으레 디즈니 컬렉션 중의 하나려니 나는 심상히 생각했고 아들은 그것을 보기 시작했다.
장애인의 특권 중 하나ㅡ비교적 시간이 많은 것.
나는 집안에서 이 일 저 일하느라 바쁜데 아들은 느긋이 앉아 영상 감상.
이상하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는 클래식 음악이 배경음악으로 흔히 쓰인다.
그런데 이 애니메이션에서는 고급진 클래식들이 계속 흘러나오네.
나도 앉아 화면을 본다.
와우~
어여쁜 아기천사들.
신화적인 반인반수 남녀들의 사랑,
날아다니는 귀여운 공룡들...
아름다운 색감의 영상들.
스토리의 대사는 없고
연속되는 클래식음악들.
과히 환상적 fantastic 하다!
아름다운 영상과 재미난 스토리를 따르다 보니 그 유명한 클래식 거장들의 어려울 수도 있는 음악들이 저절로 귀에서 아름답게 녹는다.
그 아름다움에 빠진다.
바흐, 차이콥스키, 뒤카, 스트라빈스키, 베토벤, 폰키엘리, 무소륵스키, 슈베르트.
클래식 음악.
세월을 이겨낸 인류의 유산.
좋은 줄은 알지만 모두에게 열려있지는 않은, 어렵고 지루할 수도 있는 음악.
알아야 보이듯이 알아야 들린다.
배운 만큼, 들은 만큼 즐길 수 있다.
그런데 요즘같이 공부, 게임에 바쁜 아이들은 클래식 음악에 접할 기회가 드물다.
1998년 인문고에서 음대 진학을 준비하던 딸아이.
2학년부터는 아예 음악 시간이 없어졌다.
실기는 물론 음악 감상의 교육 기회조차 없어졌다.
이런 한국의 예술교육 환경...
그런데 지능이 낮은 아들이 클래식 음악의 벽을 사뿐히 넘었다.
클래식을 즐기는 복된 자가 되었다.
인생 애니메이션인 디즈니의 'Fantasia'이 하나의 비디오테이프 덕분에. 그 비디오를 감상했을 뿐이다.
재미있으니 보고 또 본다.
수십 번을 보다 보니 테이프가 늘어났다.
비디오테이프에 이어 이젠 dvd로 본다.
어려울 수도 있는 거장들의 음악이 동요처럼 친근해지는 기적.
역시 어려운 내용도 접근법이 좋으면 어린이도 (지능이 낮은 아들도) 학습이 된다.
사순절시즌에 공연되는 바흐의 마태수난곡, 요한수난곡.
두 시간 이상 빽빽한 가사 때문에 아예 성악가들이 의자를 가져다 놓고 섰다 앉았다 하면서 공연한다.
나는 가능한 회피하려는 이공연을 아들은 손꼽아 기다린다.
연말의 헨델의 '메시아'공연도.
판타지아 1940
디즈니사가 1940년 만든
'눈으로 보는 클래식 '
청각언어인 음악을 시각언어인 영상, 그것도 아이들도 이해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으로 풀어낸 디즈니의 창의력이라니.
레오폴드 스토코브스키가 지휘하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8개의 위대한 클래식 음악을 영상화했다.
1.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
2.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3. 뒤카의 마법사의 제자
4.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5.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
6. 폰키엘리의 시간의 춤
7. 무소륵스키의 민둥산의 밤
8.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
이것이 만들어진 60년 후 2000년에 판타지아 2000이 만들어졌다.
베토벤, 레스피기, 거슈윈, 쇼스타코비치, 생상스, 뒤카, 엘가 그리고 스트라빈스키의 곡 8개가 나온다.
미국에서는 아직 저작권이 유효하나 한국에서는 저작권이 소멸되어 싼값으로 구입할 수 있다.
알라딘 중고에서는 3~4천 원부터이고
판타지아가 포함된 디즈니 5종 시리즈는 만 삼사천 원부터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세상의 많은 아름다운 음악들.
찬송가, 가요, 팝, 트롯, 재즈, 록...
그러나 우리 아이들에게 클래식의 아름다움을 소개하는 건 그들이 어려서부터 신앙을 접하게 하는 일처럼 귀한 부모의 특권이 아닐지.
모든 학교의 음악시간에도 필히 애들에게 보여주었으면...
어쩌다 클래식 음악세계에 눈을 뜬 아들.
오늘도 음악을 들으며 그림을 그리거나 성경필사를 하는 너란 아이는 정말 복된 아이구나.
사람들은 너를 부족한 장애자라고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