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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가 꽃자리

항상 늦은 탄식

by 제이

한동안 소년원을 들락거린 적이 있다.

정문에서 신분증을 맡긴다.
건물 쪽으로 들어가는 운동장 입구에 잠긴 철조망 문.
건물 현관의 닫힌 문.
그리고 다시 건물 문.
누군가가 열어주는 이 문들을 통과하면 나타나는
칙칙한 시멘트 건물 안의 줄지은 원생 방들.
검정고시 공부하는 교실에도 성경공부하는 원생들 방 천장에도 달려있는 cc tv 카메라.
살벌한 그곳에 가는 것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것.

큰길에서 그곳 정문까지 플러더너스 가로수가 줄지어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그 소년원이 조만간 폐쇄되려는 가을 어느 날,
어쩌다 정문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어마나.
이곳이 이런 곳이었구나.
부모가, 학교가, 세상이 버린 아이들이 희망을 잡으려고 갇힌 어두운 그곳.
그 가을날 찍은 사진.
줄지은 플러더너스 가로수 잎들이 투명한 가을 햇살을 받아 금빛을 뿜고 있었다.
황금길.
400번 넘게 정신없이 들락날락했던 그곳이 실상은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었음을 이제는 더 올 일이 없는 그제야 알게 되었다.
얘들아 그동안 힘들었지?
어두운 이곳이지만 이 문을 나서면 나타나는 황금길처럼 이 문을 나가
복된 길이 열리길.
그래서 고난의 이곳이 실상 꽃자리였다고 말하는 날이 오길.

천명에 한 명꼴이 다운증후군.
내 아들이 바로 그 한 명이 된 하늘이 무너지는 좌절감.
세상일 이란 공평해서
살다 보니 그 눈물자리가 꽃자리가 될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 부족한 나를 어미 삼아주시니 황송하다.
때마다 일마다 아름다운 인간 천사도 보내주셨다.
이 아이 아니었으면 놓쳤을 많은 귀한 것들을 잡게 하셨고 귀한 분들을 만나게 하셨다.

넉넉지 못한 시대에 넉넉지 못한 가정 그리고 넉넉지 못한 시가댁.
이런저런 결핍에 좌절도 하고 불평도 했다.
그러나 돌아보니 내가 선 그곳이 꽃자리였다.

산 정상에 올라 마을을 보면 새삼스럽다.
지지고 볶지만 저 아름다운 곳에서 내가 살고 있었구나.
인류 최초로 우주여행에 성공한 우주인 가가린이 말했다.
"우주에서 본 지구는 각가지 색을 섞어놓은 물감 상자처럼 아름다웠습니다."



이삿짐이 다 나가고
이제는 다른 사람의 집이 될 집안을 마지막으로 둘러본다.
곳곳에 깃든 추억들.
헐레벌떡 매일을 살았다.
좀 더 즐기며 좀 더 감사하며 살걸.
이 복된 곳에서...

세월이 지나서야
그곳을 떠나서야
내 곁을 그 사람이 떠나서야
그곳이
그때가
그 사람이
귀한 곳이고 귀한 시절이었고
귀한 이었고
그 자리가
꽃자리였음을 알게 되는 안타까움.


<꽃자리>
구상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자리가 꽃 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 자리니라

나는 내가 지은 감옥 속에 갇혀있고
너는 네가 만든 쇠사슬에 매어있고
그는 그가 엮은 동아줄에 묶여있다



앉은자리가 꽃 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 자리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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