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세상 (아들은 그리고 엄마는 쓴다1)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에요
즐거운 세상 , 이재윤
38년 전 아들이 태어났을 때, 그 애가 지적 장애자라는 걸 안 나는 여러 가지로 슬펐다. 특히 행복의 관점에서.
행복한 삶을 살려면 일단 어느 정도 공부를 해야 한다. 그래야 직장을, 결혼을 할 수 있지.
그런데 이 아이는 네댓 살의 지능으로 제한된단다. 평생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단다. 시작부터 어떤 기대도 할 수 없다. 지금도 의사 표현이 온전치 못하다.
시계 볼 줄도 돈 셀 줄도 모른다.
아들은 IQ 49. 다운증후군 중에도 중증이다.
그런데 지금 아들은 나름 행복하게 살고 있다.
정상인들이 공부하고 군대 가고 직장 다니고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는 그 시간.
그 시간을 가지게 된 것이다.
아들은 생산적인 무엇을 할 능력이 안 되니 자신만의 시간이 많다.
유느님 유재석 씨가 '유 퀴즈 온 더 블록' 프로그램에서 세계적 사진작가 니키 리에게 묻는다.
"유능하시니 일이 많고 돈을 많이 보시죠? 그런데 시간은 없으시죠?
저도 그래요"
그렇다. 아들은 시간을 가졌다.
태권도를 배우고 그림도 그린다.
그림 그리기!
수십 개의 아름다운 색을 다루는 아들의 표정은 마치 맛난 각가지 캔디를 음미하는 사람의 그것 같다.
오랜기간 그린 그림으로 개인전도 열었다.
다음달에는 세번째 개인전이 열린다.
명절 때 처가에 다니러 온, 매형이 슬며시 말했다. "처남은 좋겠네..."
그때 아들은 런던 로열 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 DVD를 보고 있었다.
'그래, 사위는 월급 받는 만큼 할 일이 많겠지. 여유가 없겠지'
어느 여름방학, 가족이 음악회에 갔다.
1부를 마치고 중간 쉬는 시간이 되었다. 공연 중 스마트폰을 보거나 몸을 비틀던 중학생들이 우르르 나가 버렸다. 아마 음악회 가는 것이 숙제였던 모양이다. 아들은 꼼짝 않고 앉아 끝까지 즐겁게 연주회를 즐겼다.
아들은 일반 책은 읽지 못한다.
그러나 많은 동화들이 그림책으로 CD로 DVD로 나온다.
그런 것으로 웬만한 동화들을 즐길 수 있다.
요즘은 알라딘 앱에서 만 원 정도로 산 DVD'명작 영화 10'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본다.
느긋이 앉아 각종 예술을 감상하는 아들이 나도 때로는 부럽다...
나는 새해가 되면 예술의 전당
홈페이지에서 한 해 공연들을 미리 예매한다. 장애인은 물론 보호자까지 할인되니 참 감사하다.
아들은 무엇보다 시간이 많으니 예배 참석도, 성경 테이프 듣기도, 성경 필사 도 여유롭게 할 수 있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인생은 짧고 즐길 것은 너무너무 많다. 그래서 혹시 아들은 '나는 아무것도 못 하는 장애자네' 연기하고 있는 게 아닐까?
사람들은 지능의 IQ만 따졌지 행복의 또 다른 요소인 감성의 EQ도 있다는 걸 생각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의 감성은 결코 부족하지 않다
어느 날
아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한 장에 그렸다.
오즈의 마법사의 에메랄드성, 피터팬의 후크선장, 달타냥까지 낀 삼총사, 장화 신은 고양이, 벌거벗은 임금님, 알라딘의 촛불, 미녀와 야수의 장미, 발레 백조의 호수, 뮤지컬 프로듀스, 헨델과 그레텔, 오페라 아이다 그리고 발레 호두까기 인형 등등.
당신은 이 아이가 여기에 그린 동화,발레,뮤지컬들을 다 아시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 재미있는 것들을 엔조이할 시간도 없이 너무 바쁘게 살아오신거다.
지능이 정상이시라.
성경 룻기 1장.
엘리멜렉과 아내 나오미, 그리고 두 아들은 흉년이 들자 약속의 땅인 베들레헴을 등진다.
이방 땅 모아브로 이민을 떠난다.
그러나 거기서 세 남자를 여위고 고향으로 돌아오며 나오미가 하는 말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비어 돌아오구나 "
온 가족이 살아있을 때는 흉년의 고난만 보였다. 가족의 귀중함은 보이지 않았다. 가족들을 여윈 지금 생각하니,
그때가 풍족한 시절이라고 때늦게 한탄한다.
왜 우리는 있는 것은 무시하고 없는 것에 애달파 하는가.
행복한 이는 있는 것을 사랑하고
불행한 이는 없는 것을 사랑한다.
없는 IQ(장애) 한탄 말고
있는 EQ(시간) 누리며 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