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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Aug 30. 2024

너무 비싸 그냥 공짜

무가지보

너무 비싸 그냥 공짜.

무가지보之寶

너무 귀해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
福을 나누어 받다.

지난 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 전시회에 다녀왔다.
기증관 1실이 2년간의 새 단장을 마치고
'나눔의  가치를 발견하는 공간'
이란 이름을 가지고 개관되었다.

114명이 기증한 1671점의 유물에 새롭게 풍부한 스토리텔링을 입혔다.
유물들이 주제에 맞게 조화롭게 배치되었다.
최신 영상을 활용하여 더 흥미롭고 효과적인 감상 공간을 마련했다.
토기, 목가구, 기와들을 비롯해서 손기정 선수가 기증한 청동투구도 있다.
무엇보다 국보 세한도가 1월 12일부터 5월 5일까지 한시적으로 전시되었다.



세한도 歲寒圖


추운 시절을 그리다.​
1884년, 제주도에 유배 중이던 추사 김정희의 그림.
권력의 중심에서 유배지의 죄인이 된 추사.
그에게 끝까지 의리를 지키고 헌신했던 역관 이상적에게 준 그림.
 23 ×69.2cm 크기로 국보 180호.
한 채의 집을 중심으로 좌우에 네 그루 나무가 대칭으로 그려져 있다.

주위는 텅 빈 여백이다.
겨울의 스산함, 절제와 단순함.
그림과 함께 청나라 문인, 제자 등의 이어진 댓글이 두루마리로 표구되어 총길이는 15m가 되었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 문인화.​​




한겨울 날씨(세한)가 되어야 소나무 측백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비로소 알겠네.
사람은 한겨울 추위 같은 고난을 겪을 때라야 비로소 늘 푸른 소나무 같은 지조와 인격의 고귀함이 드러난다네.

그림도 그림이지만 전시관 여기까지 온 이 그림의 일생이 드라마틱하다.
일제강점기 때, 추사 연구의 일인자인 후지쓰카가 이 그림을 일본으로 가져갔다.
1944년, 한국의 서화가 손재형이 이 그림의 진가를 알고 무작정 일본의 후지쓰카를 찾아간다.
그는 두 달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 일본인을 찾아가 간청해, 결국 이 그림을 받아 한국으로 가져온다.
이 그림이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후지쓰가 연구소는 미군의 습격으로 불타버렸다.
하마터면 없어질 뻔했다.
그러나 손재형은 세한도를 받았으나 정치자금으로 재산을 탕진하면서 이 그림도 처분해 버렸다.
다행히 세한도는 개성 갑부 손세기의 소유가 되었다.

2018년 그의 아들 손창근 씨는 문화재 304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그때도 세한도는 기증에서 제외했다.
그만큼 애착하던 그림.
2020년 손창근씨는 외아들 같은 세한도를 결국 기증하셨다.​

사람들은 돈을 벌고 더 많은 돈을 이루려고 투자를 한다.
땅을 사고 빌딩을 산다.
어떤 이는 미술품을 산다.
이른바 미술품을 샀다가 팔 때 시세차익을 내는 아트테크.
미술품의 진가는 액수로 나타난다.
이 세한도의 액수는 얼마쯤 될까?

無價之寶! 란다.
값이 없단다. 너무 귀하기에 값을 매길 수 없단다.

사람 사는 건 어디나 같아서 영어에도 이 말이 있네.
가치 value, 귀중한 valuable, 가치 없는 valueless,
가치를 매길 수 없이 귀중한 invaluable.

자식같이 귀하고 값진 이 미술품들을 포기하고 기꺼이 나라에 기증하신 분들.
그들은 평범함 속에 파묻힌 비범함을 보는 안목을 가진 이들.
그들은 자신의 귀한 물질을 치르고 이것들을 사서 모았다.
이것들이 너무 귀하기에 귀하지 않은 돈으로 차마 바꿀 수 없었다.
대신 많은 이에게 기꺼이 내어 놓았다.
기증했다.
안복(眼福)을 나누었다.​
그런 분들의 가슴이 이번 기증 1관을 이루었다.

"와서 보시오, 그냥 공짜입니다."

이번 2년간의 기증관 새 단장 이유는 평생 모은 유물을  선뜻 국가에 내놓은 기증자들의 큰 뜻에도 불구하고 관람객들이 적어서란다.
안타까왔단다.
기존의 기증관에 간 적이 없는 나는 어쨌든 이번 관람이 너무 흥미로웠고 감사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무엇을 기증할 수 있을까...
가진 게 별 없는데.
그러다 문득 든 생각.
무가지보들을 찾아가 감상하는 것.
그것이 기증자들의 뜻이 아닐까?
계산할 수 없는 보물을 뵙는 것은 계산할 수 없는 부자가 되는 것.
그것을 누리는 그 순간은 오로지 그 보물이 나의 것이니.

하나님이 세상 사람들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그분의 대체불가한 무가지보인 외동아들을 포기하고 세상에 기증하셨다.
빌딩을 사도 몇 채를 살 미술품들을 포기하고 기증했는데도 사람들은 각자 일에 바빠 보러 가지 않듯이
나는 이 세상 일로 바빠 하나님의 외아들을 외면한다.
하늘의 그 아들 대신 속절없이  이 땅을 내려보며
좌절하고 실망하고 슬퍼한다.

안목을 주소서.
그 앞에서 즐길 수 있게 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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