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엔 학생과 담임교사를 바꾸지 말자

by 강지영

사람이 사람을 알아 간다는 것이 무엇일까. 평생을 살고도 이 남자(여자)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 저런 면이 있었군, 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20년이나 넘게 아이들을 키우고도 우리 딸이 이런 면이 다 있네, 하고 놀랄 때가 있다. 그건 변화와 성장 때문이리라. 인간은 늘 변화한다. 육체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어제의 내 몸과 오늘의 내 몸은 다른다. 어느 세포는 죽고 어느 세포는 생성되었을 것이다. 어제의 내 마음과 오늘의 내 마음도 다르다. 방금 전의 내 감정과 지금의 감정도 다르다. 감정을 나타내는 말도 수없이 많다. 예일대 감성 지능 센터장인 마크 브래킷 교수가 쓴 <감정의 발견>(북라이프, 2020)에 보니, 감정을 표현하는 영어 단어는 어림잡아 20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이렇게나 복잡 미묘한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를 알고 사용하기만 해도 자기 자신과 남의 감정을 이해하고 조절하기에 유용하다는 것이다. 조금 전까지 읽은 책의 내용이 그렇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우리 학급 학생 24명이 떠올랐다. 나는 우리 반 아이들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머뭇거려진다. 내 기억이 맞다면, 우리 반 아이들과 첫 대면을 한 것이 5월 하순쯤이다. 코로나로 인해 등교 수업이 그때서야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것도 마스크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의 얼굴을 제대로 보기 어려웠다. 급식실에 가서 밥 먹느라 마스크를 벗었을 때에야 얼굴 전체를 보았다. 저 아이가 저렇게 생겼구나, 이 아이는 이렇게 생겼구나. 그러고 나서도 코로나 확진자 수가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내리락했고, 등교 수업과 원격수업이 반복되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1학년은 약 두 달 간은 매일 등교 수업을 했다. 그렇더라도 아이들과 정상적인 학교 수업활동을 하지 못했다. 현장학습(소풍)도, 모둠활동도, 놀이 활동도, 물론 짝꿍도 없었고. 바다 위의 섬처럼 아이들은 떨어져 앉아 있다가 혼밥 하듯이 밥 먹고 하교했다. 이러니 아이들을 제대로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12월이 다 되어서야 조금씩 알아 간다. 알게 되자 이별이라 했던가. 이제 며칠 등교 수업만 하면 아이들은 새 학년을 맞이할 것이고, 새 담임과 만나게 될 것이다. 나 또한 내년에 다른 아이들을 맞이할 텐데, 코로나가 장기화되면 올해 3월처럼 제대로 된 입학식이나 등교 수업 재개를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제안한다. 2021학년도에는 학급 담임과 학급 학생 구성원을 교체하지 말고 그대로 유지하면 좋을 것 같다. 오마이 뉴스 대표기자이며 사단법인 '꿈틀리' 이사장인 오연호가 쓴 <삶을 위한 수업>(오마이북, 2020)에 보면, 교육 선진국이라 하는 덴마크에서는 학생들이 초중등학교에 입학해서 졸업할 때까지 9년 동안 계속 같은 반 같은 담임이라고 한다. 다만 최근에는 9년의 담임 기간이 너무 길고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3년 또는 6년 동안 담임을 하는 학교도 늘어나고는 있다고 한다. 오랫동안 학생들과 담임이 같은 반을 하게 되면 장점이 많을 것이라 여겨진다. 교사와 아이들이 서로 잘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고. 또다시 얼굴을 익히고 새로 파악해야 하는 과정이 생략되니 심리적으로 감정적으로 매우 안정적일 것이라 추측한다.


학생들의 1년간 학교 생활을 기록한 학교생활기록부가 있긴 하지만, 형식적인 면이 많다. 아이들의 피상적인 면 또는 좋은 면만을 부각해 기록해 놓기 때문에 아이들을 파악하기 위한 자료로는 부족한 면이 많다. 내년 3월에도 마스크를 쓰고 새로운 아이들을 맞이할 것을 생각하니 답답하기만 하다. 그러니 올해만이라도 특수한 상황이라 생각하고, 그대로 학년이 올라갔으면 좋겠다. 새로 전출입 가는 교사는 예외로 하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되면 이 불안정한 시국에 그나마 교사와 학생들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년엔 학급 구성원인 학생과 담임교사를 바꾸지 말고 그대로 이어갔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코로나 속, 초등학교는 안전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