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속, 초등학교는 안전한가

by 강지영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이 있다. 한나 아렌트가 유대인 말살에 앞장선 아이히만에 대하여 제시한 개념이다. 1960년 당시 아이히만이 체포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가 매우 포악한 악인일 것이라 추측했지만, 그를 검진한 정신과 의사들은 지극히 정상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그가 저지른 유대인 학살은 지금 생각해도 인류가 저지른 만행 중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잔혹하다. 아이히만뿐만이 아니라 나치 치하에서 유대인을 학살하는데 독일 사회 전체가 이 인종차별주의에 동조하는 분위기였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인간의 '협력' 본성이 인류 문명을 이루고 지상의 동물 세계를 평정하게 되었다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도 있건만, 반대편에는 인간이 인간을 이렇게까지 혹독한 가해를 했던 것을 떠올려보면 참으로 인간 존재란 알 수 없는 존재다.


요즘 참으로 어수선한 시국이다. 이 시국에 나는 왜 이런 극단의 얘기가 생각나는 걸까. 바로 코로나 19에 대응하는 초등학교 등교 문제를 거론하고 싶다. 올해 초 3월에는 초중고 아이들 모두 등교를 시키지 못했다. 세상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들 앞에서 지구 상 모든 이들이 우왕좌왕했다. 지금 기억이 맞다면, 5월 중순쯤에 초등학교 1학년이 첫 등교를 했다. 전화로 목소리만 듣던 아이들을 처음으로 맞이하는 순간, 참으로 반가웠다.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과 아이들을 맞이하는 반가운 마음이 둘 다 겹쳐서 다가왔다. 아이들 상호 간에도 낯설었다. 당연히 서먹서먹한 분위기에서 조용히 제 할 일들을 했다. 나는 조용히 필수 내용을 수업했고, 아이들은 아직도 초등학교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1교시, 2교시... 수업에 임해야 했다. 짝꿍이 뭔지도 모르고 띄엄띄엄 앉아 수업에 임해야 하는 아이들이 안타까웠다.


그렇게 여러 날이 흘러 지나갔다. 바로 끝날 줄 알았던 것이 롤러코스터처럼 확진자가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했다. 아이들은 등교 수업을 했다, 원격수업을 했다를 반복했다. 교사들은 등교 수업은 수업대로 하고, 원격수업에 대비하여 '학습 꾸러미'를 제작 배부했다. 나는 유튜브에 올릴 동영상을 찍기도 했다. 세상에 내가 유튜버가 될 줄이야. 가정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학부모들이 아이들의 학력을 걱정하고 가정 돌봄에 피로도가 증가하면서 '국민 청원'이 생겼다. 학부모는 등교 수업을 원했고, 특히 초등학교 1학년 학부모가 더 요구했다. 급기야 초등학교 1학년은 매일 등교라는 '교지'가 떨어졌다. 내 기억이 맞다면, 8주간은 매일 등교를 했던 것 같다. 교사들은 가끔 평상시로 돌아간 듯한 착각도 하였다. 우리 교실 옆에는 '돌봄 교실'이 있다. 하루 종일 한 교실에서 지내야 하는 아이들은 나름대로 떠들고, 나름대로 장난치고, 나름대로 즐겁게 부대끼며 지낸다. 학교에 오면 조용히 공부만 할 거라는 믿음은 학교를 과대평가한 일이다. 지금까지 코로나 관련,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은 기적에 가깝다.


아이들은 친구와 대화하고 노는 것이 점점 더 즐거워졌다. 복도에서 뛰는 것도 가능할 정도로 배짱도 늘었다. 친구들과 몸을 부대면서 장난치는 것도 재미있다. 교사들은 '거리 두기'를 강조한다. 협력의 본성대로 서로 학용품도 빌려주고 빌려 쓴다. 서로 사이좋게. 교사들은 그러면 안된다고 조목조목 설명은 하지만 잘 먹혀들지가 않는다. 나는 화를 냈다가, 수업 시간이 되면 웃으면서 수업을 진행한다. 화난 상태로는 수업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교사는 마음을 고쳐 먹고 감정 조절을 한 다음에야 수업을 할 수 있다. 이젠 급식실에서도 밥 먹으면서 재미있게 대화도 할 정도로 아이들 사이의 친분이 두터워졌다. 교사들은 밥도 먹지 못 먹고 아이들의 밥 먹는 모습을 이리저리 다니면서 지도한다. 조용히 밥만 먹으라고. 그럼에도 급식실에는 130명가량의 학생이 동시에 밥을 먹는다. 여기저기 떠드는 소리를 잠재울 수가 없다. 방송에서는 50인 이상 모이지 말라. 10인 이상 모이지 말라. 모여서 밥 먹지 말라, 몇 평 이하 음식점에서는 취식이 금지된다, 규제가 생겼다고 한다. 이렇듯 방역에 대한 조치와 규제가 심해지는데, 왜, 어째서, 어떤 견지에서, 어떤 배짱으로, 초등학교 급식실에서는 130명이나 되는 아이들에게 동시에 밥을 먹게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급식을 하는 이유는 뭘까. 급식실에 투명 칸막이를 한다고, 한 자리 띄워 놓고 밥을 먹으면 된다고, 그렇게 하면 괜찮을 거라는 생각인지, 그렇게 믿고 싶은 건지, 알고는 있는 건지, 교육부 당국에 묻고 싶다. 이러한 사정을 알고나 있는지. 알면서 묵인하고 있는지, 알면서도 모른 체하는 것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이러한 사정을 눈뜨고 매일 목격하면서 가만히 아무 일 없는 듯이, 학교의 모든 이들이 잘하고 있는 것처럼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이렇게 글을 쓴다. 가만히 있자니, 나치의 명령대로 고분고분 따르기만 했던 '충복' 아이히만이 생각난다. 내가 아이히만이 된 것 같다.


최근 확진자가 700여 명 가까이 늘어나고 있다. 얼마 전부터 중학교 고등학교는 전원 원격수업으로 들어가고, 초등학교는 1/3 등교를 한다. 돌봄 공백을 우려해서란다. 참으로 걱정스러운 일이다. 이제 팔다리에 힘이 생기는 아이들이 교사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차게' 뛰어다니기도 한다. 우리 반에 유난히 뛰기를 잘하는 아이가 있다. 어느 날 화장실에서 나오던 아이가 교실 문을 나선 나와 마주쳤다. 물론 힘차게 뛰다가.

"oo아, 제발 뛰지 마라. 위험해서 그래. 그러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냐.'

"한 번도 안 넘어졌어요."

"뭐라고, 그럼 넘어질 때까지 뛸 거야?"

한 번도 넘어지지 않은 것에 대하여 아이는 당당한 태도였다. 그리고 안 넘어지고 잘 뛰는데 왜 자꾸 혼내는지 이상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다가 넘어질 때까지 뛸 거냐는 나의 호통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듯했다.

내가 왜 이 에피소드를 꺼냈겠는가. 인근 학교의 예를 들자면, 확진자가 나오면 자가 격리하고, 원격수업으로 전환한단다. 최근에는 확진자 문자 메시지가 수도 없이 날아든다. 확진자가 늘어남에 따라 우리 주변의 위험지역이 점점 좁혀온다. 두렵다.


지금은 학교에 대하여 방치하는 느낌이 든다. 교육부가 시키는 대로 출근을 하고 위험 속에서 수업을 하고 급식 지도를 하는 내가 마치 아이히만이 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힘없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학교의 학생과 교사의 안전을 존중하지 않는 교육부에 화가 난다. 아직 초등학교에서는 대규모 확진자가 나오지는 않아서 다행이지만 언제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이 상황이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초등학교의 학생과 교사를 대하는 교육부의 태도를 거론하고 싶어서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자판을 두드리는 일 말고는 없다는 현실이 참 가혹하다. 두려움 속에서도 수업이 시작되면 나는 태평한 듯이 수업을 진행한다. 이 두려움은 마스크 속에서 계속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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