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꽃의 시인

-이창훈, <너 없는 봄날, 영원한 꽃이 되고 싶다>(꿈공장, 2020)

by 강지영

‘종이에 그리면 그림이 되고, 마음에 그리면 그리움이 된다.’는 말을 어떤 이에게 들었는데, 이 말이 내 머릿속에 들어와 당최 나가지를 않는다. 이에 더하여 다른 어떤 이는 ‘가슴에 그리면 사랑이 된다.’고 한다. 최근 나는 마음에도 그리고, 가슴에도 그린 그리움과 사랑의 시를 담은 시들을 읽으면서 오랜만에 문학적 깊이에 푹 빠졌다. 이창훈 시인의 시집, <너 없는 봄날, 영원한 꽃이 되고 싶다>를 마주했다.

이창훈 시인의 시를 읽다 보면, 그리움과 사랑의 정서가 가장 먼저 일어난다. 나는 이창훈 시인에 대하여 아는 바가 거의 없다. 그가 시인, 남성, 고교 문학 교사, 브런치 작가 정도로만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의 시를 읽다 보면 매우 가까운 지인처럼 느껴진다. 그의 시편들이 내 마음에 와닿는 결이 같아서일까. 어떤 점이 같은 결로 다가오는 것일까.


‘사랑’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문학을 비롯한 여러 예술 갈래에서 다루어 왔다. 사랑을 제외하고는 예술은 아무것도 아닌 듯한 인상마저 준다. 그럼에도 요즘의 사랑은 예전의 사랑과는 다르게 무언가 가벼워지고 무언가 변질된 느낌이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 은수(이영애 분)가 헤어지자는 말에 상우(유지태 분)는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말한 대사가 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세상 모든 것이 변한다는 진실이라고도 한다. 정말 그런지, 시인의 시를 읽어보자.


플라토닉 러브

-

사랑의 이데아는 오직

사랑

사랑이 어떻게 변하냐고?


변하는 건

사랑이 아니야

사람이지


사랑을 했던 그

사람의 마음이지


라고 명확히 밝혔다. 그렇다.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이 변한 것이지. 그래서 시인의 사랑은 시인이 아닌 사람의 사랑과 다르게 다가온다. 시인의 사랑은 영원하다. 그렇다면 위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시인의 사랑!’이라고. 그래서 시인의 시집에 있는 사랑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언제나 어디서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어떤 ‘믿음’이 생긴다.


흔히들 시가 어렵다고 한다. 나도 시가 어렵다. 왜 사람들은 그렇게 느낄까. 아마도 이제까지의 학교 교육에서 시에서 주제 찾기 등과 같은 문제 풀이를 많이 해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이 시인이 말하려고 하는 게 무얼까, 이 시의 주제가 뭘까, 이 시의 문학사적 가치는 뭘까, 와 같은 문제들 말이다. 그렇다면 그런 문제 풀이식의 시 감상에서 벗어나면 될 일이다.


하여 나는 이 시집의 시편들을 읽으면서 이 시인이 무엇을 말하려고 할까, 와 같은 생각은 버리고 시 자체로 읽고 느끼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시 감상을 공부로 하지 않으려고 마음먹고 다가가니 마음도 가볍고, 시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이별, 그리움, 고독과 같은 나의 심정을 위로해 주고 토닥여 주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친밀한 친구를 만난 것 같았다.

가장 앞에 수록된 시를 옮겨 보면,


음악

-

먼 곳의 너를

더 이상 볼 수 없어

듣는다

눈 감고 너를 듣는다


존 레넌의 노래 ‘Love’에, 사랑은 진실한 것이고, 사랑은 느끼는 것이고, 사랑은 터치라는 노랫말이 있다. 인간의 오감 중에서 촉각을 말한다. 촉각을 느끼려면 사랑의 대상이 실재해야 한다. 그런데, 시 ‘음악’의 화자에게는 사랑의 대상이 가까이에 없다. 터치할 수가 없다. 너무나 먼 곳에 있어서 볼 수도 없다. 그래서 청각에 의지한다. 모든 감각을 소외시킬 수밖에 없다. 음악을 들으면서 대상을 터치하고 대상을 시각화하는 상상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다음의 시 ‘서러움의 이유’에서도, 시인은 서러운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 내가 이렇게 아픈 건/네가 없어서가 아니다/너는 없어도/네가 준 마음이/내 속에서 여전히 속삭이기 때문이다...’

시인이 서러운 건 마음속에 남겨진 사랑 때문이다. 마음속에 새겨진 이별의 정한 때문이다.


시인은 현직 고등학교 문학 수업을 하는 교사다. 그의 시 중에는 교실 현장에서 쓴 시들도 다수 수록되어 있다. 그중 ‘섬’이라는 시를 감상해 보았다.


섬 _교실일지

-

긴 연휴 끝나 맞이하는

첫 문학시간


“샘~ 어디 좀 다녀오셨어요?”


연휴 내내 독서실에서

수능 문제집들과 씨름하다 온

아이들이 묻는다


“섬에 좀 다녀왔다. 혼자서~”


“우와~ 좋았겠다. 무슨 섬요?”


“샘이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섬

그러나 어쩌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섬”


“그 섬이 어딘데요?”


“그럼에도”와 “일어섬”

...


이 시를 읽어보면 시인이 교사로서 학생들과 평소에 얼마나 깊은 교감을 나누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우리말을 얼마나 자유자재로 재치 있게 부릴 수 있는지도 깨닫게 한다. 섬 이름이 ‘그럼에도(島)’와 ‘일어섬’이라니, 나는 이 말에 웃음을 그치기 어려웠다. 시인이 자기소개에서 학생을 ‘어린 벗’이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시인은 학생을 벗처럼 친구처럼 가깝게 지내고 있음이 상상된다. 젊은 영혼과 자유로운 대화를 할 수 있는 시인은 영원히 젊은 시인이 될 것 같다. 영원한 꽃이 될 것 같다.


KakaoTalk_20231014_152324748.jpg 이창훈, <너 없는 봄날, 영원한 꽃이 되고 싶다>(꿈공장 플러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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