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있으면 현장체험학습일이다. 나는 이 현장체험학습, 또는 현장학습이라는 말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소풍'이라는 예쁘고 좋은 말이 있는데, 어째서 '학습'이라는 말을 붙여야 하는지. 소풍! 한 번 발음해 보자. 이응 자음의 여운이 공기를 가르고 퍼져나가잖는가.
준비물과 주의사항 등을 적어두었다가 사전 지도를 하였다. 문제는 교사들의 도시락이었다. 학년 연구실에 모였다. 처음엔 김밥을 사 오자고 하였다. 8시 30분까지 출근해야 하는데, 그렇게 일찍 김밥을 파는 가게는 주변에 없다. 이를 어쩐다? 잠시 침묵의 시간이 지났다. 3반 선생님이 자기가 김밥 도시락을 싸 오겠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은 우리들은 그건 안될 말이라고 하였다. 아침 출근 시간에 큰 부담을 줄 수는 없다고. 된다 안된다 괜찮다 등의 말이 오가다가, 3반 선생님께 부탁하기로 했다. 그 얘기를 듣고 나도 그냥 있을 수 없었다.
"그럼, 후식은 내가 준비할게요."
나는 내가 좋아하는 과일을 떠올리며 과일을 준비하기로 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먹을거리는 과일이다. 특별한 조리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먹을 수 있으니까. 종류는 또 얼마나 많은가.
1반 선생님은
"돗자리는 내가 준비할게요."
5반 선생님은,
"으음, 커피와 음료는 내가 할게요."
등으로 자연스레 역할분담이 되었다.
마치 우리들이 소풍 가는 것 같아 즐거웠다.
그간 코로나19로 인하여 현장학습을 가지 못했다. 아이들도 교사도 신이 났다.
"저기 냉장고에 구운 계란이 있는데, 그것도 가져갈까요?"
"맞아요. 옛날엔 소풍 갈 때 삶은 계란도 꼭 가져갔어요."
"그럼 사이다도 가져가야 해요. 하하."
"사이다는 칠성사이다로 해야겠네요. 하하."
"아뇨. 옛날엔 킨 사이다도 많이 가져갔어요. 요즘도 킨사이다가 나오나?"
"못 본 것 같아요."
현장학습을 앞두고 교사들이 모여서 협의를 하다가 옛 추억담을 소환했다. 여행 가는 날보다 여행 가기 전, 준비하는 시간이 즐거운 것처럼 우리들은 한참 동안이나 옛날의 '소풍'에 관한 얘기에 푹 빠졌다. 동심으로 돌아가는 시간이었다.
지금이야 김밥집도 여기저기 많이 있지만,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김밥을 파는 집이 없었다. 가정에서 김밥에 들어가는 속재료를 준비하기도 쉽지 않았다. 김밥은 소풍 때나 먹을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이었다. 대부분이 가난한 시골 살림이었으니까. 오랜만에 김밥을 싸느라고 엄마는 새벽부터 일어나서 김밥 쌀 준비를 했다. 나의 엄마는 김 한 장을 반으로 갈라서 김밥을 쌌다. 숫자를 늘리기 위해서다. 아버지, 언니, 동생 여러 식구가 먹을 수 있게 하려는 엄마 나름의 아이디어였다. 가난했지만 선생님의 선물은 꼭 챙겨 주셨다. 담배 한 갑, 또는 스타킹 하나.
여러 해 교사 생활을 했지만, 현장학습을 가는 교사 당사자가 다른 동료 교사의 김밥 도시락까지 손수 싸가지고 오는 일은 이번 말고는 없었다. 오래도록 추억이 될 것 같다. 3반 쌤, 고마워요. 잘 먹었어요.
(참고로, 저 위에 있는 사진 속 과일은 내가 준비한 6인분 과일이랍니다~^^ 3반 쌤의 김밥 도시락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이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