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사랑은 별이 되고
-영화 <타이타닉>을 봄-
오랜만에 젊은 시절로 돌아갔다. 비디오 대여점에서 여러 차례 빌려 보았던 영화 <타이타닉>을 극장에서 보았다. 영화의 배우 말고도 나의 젊은 시절이 떠올랐다. 오래전 내가 40대의 나이쯤이었을 때, 아이들이 모두 잠든 밤, 혼자 보았던 비디오였다. 나는 보아도 또 보아도 좋았다. 아마 대여섯 번은 보았을 것이다. 1998년 2월에 개봉했던 영화 <타이타닉>을 재개봉한다고 하여 극장에 갔다. 1998년 2월이면 내가 만삭의 임산부였으니, 극장에 갈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간에도 재개봉을 몇 번 했다고 했는데, 그건 모르는 일이다.
3D영화라 특수안경을 끼고 보았다. 평일 낮이어서 그런지 관객은 그리 많지 않았고, 두 쌍의 연인으로 보이는 사람 말고는 대부분 여자들이었다. 영화 내용을 말하자니, 식상하지만 그래도 혹시라도 만에 하나 모르는 사람을 위해 간단한 줄거리를 짚어본다.
실제로 '타이타닉호'는 1912년 4월 영국에서 출항하여 미국 뉴욕으로 가는 여객선이었다. 타이타닉호는 빙산에 부딪쳐 침몰하고 만다. 구명정은 턱없이 부족했고, 승선한 사람은 약 2200명이었는데, 이 사고로 약 1500여 명이 목숨을 잃는 참극이 되고 만다. 한없이 별이 빛나는 밤이었다.
우연한 기회로 승선할 티켓을 얻은 화가 '잭'(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 잭은 자유로운 영혼이다. 출항 5분 전에 티켓을 얻고 간신히 3등 칸에 승선을 하게 된다. 이와는 반대로 막강한 재력을 가진 남자의 약혼녀인 '로즈'(케이트 윈슬렛 분). 진실한 사랑을 꿈꾸는 로즈는 그의 처지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비인간적이고 사치와 허영과 형식, 관습, 체면 등의 허울 좋은 자본가의 무례함에 치를 떠는 로즈. 마음에 전혀 들지 않는 남자지만 친부모의 강압에 못 이겨 결혼해야만 하는 로즈는 죽을 결심을 하고 배의 난간에 선다. 깊고 푸른 바닷물을 보며 생을 마감할 찰나에 잭의 눈에 로즈가 들어온다. 침착하게 로즈의 극단적 선택을 막아낸 잭은 로즈와 함께 양손을 잡고 날아갈 듯한 황홀감과 환희에 젖는다. 로즈는 살고픈 희망에 가득 찬다. 미국에 도착하는 순간 둘 만의 사랑과 자유를 찾아가자고 약속한다.
로즈는 잭과 함께 배 안의 맨 아래 칸까지 가본다. 화려한 1등 칸에서는 맛있는 음식과 술로 파티가 열리고 있으나 아래 칸에서는 많은 배 안의 노동자들이 배를 움직이고 있었다. 둘 만의 공간에서 짧은 사랑을 나눈 두 사람. 로즈의 약혼자는 둘의 관계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방해하지만 둘을 떼어 놓지는 못한다. 배가 침몰하기 시작하자 아이와 여자들 먼저 구명정에 오르게 한다. 로즈는 구명정에 탈 수도 있었는데, 잭을 찾으러 배 안으로 들어간다. 우여곡절 끝에 잭과 함께 배 안을 탈출하여 바다 위에 떠 있게 된 두 사람. 잭은 떠다니는 문짝 위에 로즈를 태우고 로즈가 안전하게 구명정에 오를 때까지 지켜 준다.
차가운 대서양의 바다 한가운데에서 두 사람은 긴 이별을 하게 된다. 잭은 로즈에게 살아서 돌아가라고, 돌아가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할머니가 되어 오래오래 살다가 편안히 죽음을 맞이하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구사일생으로 로즈는 구명정을 만나 목숨을 건진다. 배는 두 동강이 나서 가라앉았지만 잭과 로즈의 사랑은 영원히 가라앉지 않았다.
배가 가라앉을 당시 배 위에서는 바이올린과 첼로 등의 악기가 연주된다. 악사들이 불행에 빠진 사람들을 위로하는 연주다. 밤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떠 있었다. 바다에서 죽은 이들 1500명의 별들이 보태져 더 많은 별들이 밤이면 대서양 바다를 비출 것이다.
배를 탈 때도 인간은 계층을 나누어 탄다. 목숨이 코앞까지 와서 구명정에 오를 때에도 1등 칸 여자와 아이 먼저 태우려고 한다. 인간은 태어날 때나 살고 있을 때나 심지어 죽음에서까지도 계급이나 계층을 나눈다. 슬픈 현실이다.
죽음의 순간까지 로즈를 지켜내고자 한 잭의 깊은 사랑을 보면서 여기저기서 관객들은 훌쩍였다. 언뜻 세월호가 떠오른 것은 나뿐일까. 차가운 바닷속에 짧은 생을 마감한 많은 사람들. 청소년들. 10.29 이태원 참사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 지구에서 살다간 사람들은 죽으면 모두 별이 된다고 한다. 지금은 산업화 도시화가 되어 밤하늘에서 별을 보기가 어렵다. 그만큼 죽은이를 잊고 살아가는 것일까. 아등바등 사느라 죽음을 잊고 살지는 않는지 뒤돌아볼 일이다. 사느라 바빠서 고개들어 별을 볼 시간도 없다는 변명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