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예전 집이다. 옛 집은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는 우리 오 남매의 기억 속에나 자리한다. 엄마는 이부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있다. 곁에는 아버지와 큰언니 그리고 내가 있다. 오랜만에 만난 셋째 딸을 멍하니 한참이나 바라보기만 하는 엄마. 아버지와 큰언니는 그런 엄마를 주시한다. 어떤 간절한 바람을 담은 눈빛이다. 시간이 지나도 엄마의 눈빛에는 변함이 없다. 바라보는 세 사람의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하다. 입 속에 고였던 침이 목구멍으로 다 넘어가고 다시 침이 마를 때쯤, 엄마는 힘없이 고개를 떨군다. 내 눈은 큰언니를 향한다. 엄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눈빛으로 물어본다.
"엄마가 인지장애래."
며칠 전 꿈속에서 엄마를 만났다. 엄마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건 인지장애 때문이 아니다.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엄마의 정신은 또렷하셨다. 엄마는 살아계시는 동안, 한 번도 정신을 잃은 적이 없다. 꿈속에서 엄마가 나를 알아보지 못한 것은 순전히 나 때문이다. 엄마가 나를 잊은 게 아니라 내가 엄마를 잊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엄마가 돌아가신 지 이십 년이 넘었다. 엄마의 기일이 이십 번이 넘었는데, 그중에서 내가 기일에 참여한 것을 세려면 열 손가락이면 충분한 것 같다. 이럴 수가.
보름이 지나면 엄마의 기일이다. 얼마 전 언니와의 통화에서 언니가 나에게 물었다.
"지영아, 이번 엄마 제사에 올 수 있어?"
"응 갈 거야. 가고 싶어."
"그래, 무리하지 말고 형편대로 해. 그래도 괜찮아."
이번 기일은 토요일인 것이 다행이었다. 퇴근 후 미용실에 들러 염색을 하고 머리를 다듬었다.
"원장님, 이쁘게 해 주세요. 내일 친정에 가거든요."
결혼해 부모형제를 떠나온 여자들은 안다. 친정에 갈 때는 최대한 잘 차려입고 가고, 시집에 갈 때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차를 가지고 갈까 고속버스를 타고 갈까 기차를 타고 갈까 여러 가지로 궁리를 하였다. 며칠 전부터 내리는 장마 때문이다. 차를 가지고 가면 장을 봐서 여러 가지 실어 갈 수 있으니 좋다. 고속버스나 기차를 타고 가면 여행 가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차 안에서 잠을 잘 수도 있어 좋기는 하다. 결정을 못 내리고 텔레비전을 켰다. 비가 많이 내려서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다. 토사가 도로로 쏟아져 차량을 통제하고. 철로에도 토사가 밀려 나와 일부 노선은 운행을 정지했다. 충청권에 비가 많이 내렸다. 내 고향 충남 지금은 세종시. 마음이 심란하였다.
이곳 김포에는 비가 오기는 했으나 세종시만큼 많이 오지는 않았다. 영상이나 사진이 없으면 세종시의 수해 상황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일단 고속버스를 타기로 결정했다. 결정하고 났는데 큰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논산에서 가는 중인데, 지영아 너는 안 왔으면 좋겠다. 비가 너무 많이 온다. 오지 마라."
세종시에 사는 작은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막 집에 도착했어. 근데 너는 오지 마. 비가 너무 많이 온다. 도로 사정도 안 좋고."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누나, 비가 너무 많이 오니까 안 오는 게 좋겠어. 내가 제사 잘 모실게."
"알았어. 여러 사람이 오지 말라는데 내가 걱정 끼치면 안 되지. 어쨌든 미안하다. 나중에 꼭 갈게."
토요일 일요일 아무 일도 못하고 마음이 안정이 안 되었다. 텔레비전을 보니 수해를 입은 사람이 아주 많았다. 자연재해마저도 그 피해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크게 온다. 집 안까지 가득한 흙탕물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촌로가 내 어지러운 마음을 가라앉힌다. 가족을 잃고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도 있는데 고향에 가지 못한 것 때문에 실의에 빠져 있는 것은 얼마나 속 좁은 태도인가. 다시 일어나서 딸을 위해 식사준비를 하였다. 딸이 좋아하는 닭가슴살 샐러드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꽃게 넣은 된장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