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부실하다 보니 병원에 자주 가는 편이었다. 내과 치과 정형외과 안과 등등. 여러 과의 의사들을 한 곳에 모셔놓고 내 몸을 '종합적으로' 진단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기도 했다. 이제는 그 고비를 넘겼는지 병원 순례할 일이 많이 줄어들었다. 이유가 뭘까. 다소 체념한 것도 있고, 내 맘이 좀 편안해진 것도 같다. 역시 사람은 맘이 편해야 하는가 보다, 하는 단순 명료한 진리를 깨닫는 중이다.
딸아이가 영유아기였을 때는 소아과에 자주 갔다. 때 맞춰 예방주사를 맞혀야 했다. 부모님과 떨어져 피붙이 한 명 없는 타향에서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물어볼 곳도 마땅치 않았다. 딸아이가 건강했음에도 나의 조바심에 병원 문턱을 자주 드나들었다. 조금만 열이 나거나 젖을 토해도 소아과에 갔다. 심지어는 이가 흔들려도 치과에 데리고 가서 발치를 했다. 두 아이의 치아는 모두 치과의사가 뺐다. 예전에 우리 부모님은 실로 이를 동여매서 빼주었는데, 나는 그럴 용기도 없었다. 완전 겁쟁이다.
소아과에 가면 간호사나 의사는 나를 '어머니'로 불렀다. 어머니라는 말 앞에 아이 이름을 생략한 것으로 이해하고 특별한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그때는 괜찮았는데 언제부턴가 그게 거슬렸다. 딸아이들이 자라서 청소년기를 지나 청년기가 되니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에 갈 일은 거의 없다. 이제는 내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나 혼자 병원에 갈 일이 많아졌다. 젊은 간호사나 젊은 의사의 어머니뻘 되는 나이가 되었다. 내가 고지식해서인지 간호사나 의사가 나에게 '어머니'라는 말을 하는 것이 마뜩지 않다. 그렇더라도 내가 대놓고 핀잔을 할 거리는 아닌 것 같다.
내 기억으로 내 나이 쉰 살쯤 되었던 것 같다. 목이 간지럽다가 따끔거리다가 몹시 불편하였다. 이비인후과에 갔다. 그날따라 그 의사가 멋져 보였다. 내가 좋아하는 엷은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흰 가운을 입었는데 아주 맘에 들었다. 정성스레 진료를 봐주었다. 거기까지는 다 좋았다. 그런데 그날따라 의사가 나에게 한 말에 맘이 좋지 않았다.
"어머니, 간호사를 따라가서 목 치료받고 가세요."
하는 거였다. 그 어머니라는 말이 내 심사를 불편하게 하였다.
'자기도 머리가 하얘면서 나더러 어머니라니. 참, 나, 내가 보기엔 나랑 동년배인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은 목소리로 만들지는 않았다. 만일 내가 미혼여성이라면, 실제로 아이가 없는 여성이라면, 출산한 적이 없는 여성이라면 어쩌려고. 만일 아이를 낳고 싶었는데 엄마가 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여성이라면 어쩌려고. 별의별 생각이 스쳐갔다. 마치 여성이라면 누구나 결혼을 해야 하고, 결혼을 하면 누구나 아이를 낳고 어머니가 되어야 하는 것처럼. 다 싸잡아 뭉퉁그려 버리는 그 어머니라는 호칭은 적절하지 않다. 그 의사와 정이 든 적은 없었지만 정나미가 떨어졌다. 그래도 아픈 게 잘 나으니까 그 병원을 방문하고는 있다.
그러저러 세월이 흘러 완경이 되고도 정기적인 산부인과 검진을 받는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뼈 빠지게 일했더니 골다공증이 왔다. 갱년기 증상과 자궁의 근종도 관리 대상이다. 동네에서 산부인과를 다니다가 그 의사의 속내를 알고 나서부터 병원을 아예 바꾸었다. 그 사람은 뼛속 깊이 자본주의 의사였다. 그래서 바꾸기로 하였는데, 기왕이면 대학병원이 낫겠다 싶었다. 대학병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검색했다. 나는 젊은 의사보다는 경력이 있는 의사를 선호한다. 진료의뢰서를 들고 병원에 갔다. 홈페이지에서 본 것보다 더 연세가 있어 보였다. 그 의사에게 몇 년 동안 검진을 받았다. 가장 불편했던 것은 자궁경부암 검사다. 산부인과에서 진찰대에 올라가 검사를 받아본 여성이라면 누구나 불편할 것이다. 산부인과 진찰대는 진료받는 여성의 입장이 아니라 진료하는 의사의 편리성만을 고려해서 만든 것이라고 하던데, 맞는 말이다.
1년마다 정기검진을 하러 대학병원을 다녔다. 그런데 그 의사가 어느 날, 껌을 씹으면서
"아줌마, 그 약 먹고 괜찮지?"
라고 하였다. 순간 나는 귀를 의심했다. 아니 어떻게 저런 막말을... 반토막 나는 반말은 그렇다 치고, 나더러 아줌마라니. 아줌마가 틀린 말은 아니나,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를 고려할 때 아줌마라는 호칭은 여성들에게 매우 거부감이 들지 않는가. 나는 의사에게 따지고 싶었으나 괜한 망신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지는 못했다. 1년이 지나 또 그 병원에 갔는데, 진료실 앞 대기 좌석이 꽉 찼다. 어느 여성노인이 진료실 문을 열고 나오더니,
"아니, 뭐 저런 의사가 다 있어? 참 나. 쯧!"
하면서 구시렁댄다. 나는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저 의사는 오래가지 못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나는 의사를 바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대학병원 특성상, 담당교수를 바꾸기 어려울 것 같았다. 아예 신규환자로 등록하려면 진료의뢰서가 필요할 터이다. 동네 산부인과에 갔다. 출신대학을 큼지막하게 광고하는 것을 보고 같은 대학 출신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대학병원의 막말 의사 얘기를 했다. 동네 의사는 막말 의사와 골프를 칠 정도로 가깝게 지내는 듯했다.
"그 교수는 몸이 안 좋아서 그래요. 이제 정년도 얼마 안 남았고요."
짧은 대화 속에서, 그 산부인과 막말 교수는 몸이 안 좋아서 '짜증'을 내는 거라고 짐작했다. 그렇더라도 진료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에게 그러면 쓰나, 이건 경우가 아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다시 정기검진 때가 되었다. 진료의뢰서를 들고 대학병원에 갔다. 앗, 이게 웨일인가. 진료의뢰서가 필요 없게 되었다. 그 막말 의사가 정년퇴임을 했다는 거였다. 얼마나 반갑던지. 다른 사람의 정년퇴임을 이렇게 반긴 것은 처음이었다. 누군가의 퇴임은 축하할 일이고 아쉬움을 남기지만 그 막말 의사가 퇴임하였다는 소식에 내 속이 다 후련했다. 병원 홈페이지에서 보았던 의사로 내 담당의사가 바뀌었다.
"강지영 씨, 그동안 어땠어요?"
하고 진료를 시작한다. 강지영 님,이 아니다. 강지영 님은 왠지 '고객님'과 뉘앙스가 같아서 영혼 없이 들린다. 새 담당 의사는 머리카락도 하얬고, 턱수염까지 하얗다. 이 의사의 처방에 내 몸도 정상을 찾아가는 중이다. 이 의사는 내 얘기를 잘 들어주고 질문에 친절하게 답해준다. 이 분이 오랫동안 대학병원에 근무했으면 좋겠다. 더구나 다행인 것은 자궁경부암 검사를 직접 하지 않는다. 그 불편한 검사는 다른 여성 의사가 한다.
어머니 말고 아줌마 말고 환자분 말고 그냥 이름을 부르는 것, 그게 가장 좋다. 병원에서는.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