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지영 Aug 02. 2023

뭣이 중허냐고요!

-영화 <다음 소희>를 봄-

(사진 출처 : 김포 장릉의 연잎)


 한겨울, 혼자서 춤연습에 매진하는 고3 '소희'. 땀에 젖도록 연습하던 소희는 친구를 만나 곱창집으로 간다. BJ를 하는 친구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중에, BJ를 비하하는 다른 테이블의 남자에게 강하게 항의한다. 소희는 발랄했고 당찬 학생이었다. 특성화고등학교에서 애완동물 관리과였던 소희에게 학교 선생님이 콜센터 현장실습을 추천한다. 이게 영화 <다음 소희>의 도입부다.


  콜센터는 단순한 고객 응대 서비스 차원이 아니었다. 헤드셋을 낀 다수의 여직원들이 해지를 원하는 고객의 요청을 막는 일을 하는 곳이었다. 극심한 감정노동의 현장이었다. 전화를 걸어오는 고객 대부분은 처음부터 불만이 가득한 상태. 폭언과 성희롱적 발언 등. 게다가 회사는 실적 올리기에 급급. 직원 교체가 잦을 수밖에 없다. 고3 실습생으로서는 과도한 업무임이 분명했다. 어차피 오래 근무하는 직원이 드문 형편이니, 실습생을 고용하는 것이 사측에서는 유리했을 것이다. 콜센터는 저임금으로 실습생을 이용했다. 실습생이라는 이유로 인센티브까지 부당하게 대우하는 회사. 소희는 그만두고 싶었으나 그마저 쉽지 않았다. 학교는 취업률을 높여야 했다. 콜센터는 실적을 올려야 했다. 콜센터를 그만두고 싶어서 찾아간 학교 선생님도 소희의 퇴사에 부정적이었다.


 힘든 실습생활에서 그나마 소희를 이해해 준 사람이 팀장이었다. 그러나 팀장마저 사측의 실적 압박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소희는 힘들고 외로웠다. 새로 온 팀장은 소희를 괴롭혔다. 모욕적인 언행과 교묘한 술책으로 소희를 못. 살. 게. 굴었다. 결국 소희는 추운 겨울, 저수지에 몸을 던졌다. 소희 다음의 희생양은 누가 될까. 우리 사회 일터 곳곳에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끊이질 않는다. 먹고살려고 일터에 나가는데 그곳에서 죽어서 돌아오는 사람들이 잇따르고 있다.


  알고 보니, 영화 <다음 소희>는 실화를 소재로 했다고 한다. 2017년 1월, 전북의 어느 특성화고등학교에 다니던 홍수연 양의 사건. '전주 콜센터 현장실습생 자살 사건'이다. 영화를 보면서도 충분히 일어날 법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하니 더욱 마음이 아프다.


   어느 책에서 읽은 내용에 기대 보면, 폭언으로 인해 마음이 상처를 받을 때와 폭력으로 인해 신체적 상처를 받을 때 느끼는 뇌의 부분이 같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에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심하면 생명까지도 위협한다고 하니 세상을 살면서 타인에게 상처 주는 일은 없도록 해야겠다.


   최근 35도를 웃도는 폭염이 지속되고 있다. 거의 매일 폭염 경보와 주의보가 날아온다. 며칠 전에는 어느 대형 마트에서 쇼핑카트 정리 업무를 하다가 온열질환으로 사망한 청년(29세)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인터넷에 올라온 세계일보(2023. 7. 31.)에 고인의 아버지가 밝힌 내용에 따르면, “아들이 그날(6월 17일) 12시에 출근해서 1시간 연장근무까지 하면서 밤 10시에 일을 끝냈는데 10시까지 4만 3000보, 26㎞를 무거운 철책 카트를 끌고 다니면서 작업"했다고 한다. 근무 환경을 좀더 좋게 해줬으면 아까운 생명이  스러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경영하는 사람 말고 임금을 받는 사람은 모두가 노동자이다. 몸 하나 가지고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 말이다. 이미 무르익은 자본시장은 최소한의 임금으로 최대의 실적을 올리려는 것이 목표겠지만, 실적을 올리려는 도구로만 인간을 대하는 것이 이런 비극들을 가져온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학교 현장도 마찬가지다. 교사를 인격체로 대하지 않고 한낱 도구로써 취급해서 발생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먹고 있는 쌀은 과일은 채소는 농부의 노동이다. 내가 사용하는 이 물건은 노동자의 땀이다. 내가 입고 있는 이 옷은 공장 노동자의 노고다. 내 자식이 이만큼 성장한 것도 교사의 가르침 덕분이다. 어찌 사람을 존중하지 않을 수 있는가.  우리나라는 절대 빈곤에서 탈출한 지 오래되었다. 한마디로 먹고살만하지 않은가 말이다. 탐욕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사람을 이용하는 것을 멈추어야 한다. 사람을 귀히 여기고, 사람을 아끼는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뭣이 중헌디!

작가의 이전글 엄마와 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