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바꾸려면 뭐라도 해야지

-드라마 <D.P.>의 명대사-

by 강지영

(사진 출처 : 네이버 인터넷)


지난주에 연극 공연을 보러 혜화동 대학로에 가는 중이었다. 지하철 환승을 위해 역내에 들어갔다. 벽보에도 기둥에도 넷플릭스 드라마 <D.P.> 포스터가 붙어 있다. 지상으로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버스 옆구리에 씌어 있는 드라마 광고도 보았다. 한 글귀가 내 머릿속에 꽂혔다.

"뭐라도 바꾸려면 뭐라도 해야지."

다음 날 드라마 기본정보를 검색했다. 'D.P.(Deserter Pursuit)란, 군을 이탈한 병사나 군 간부들을 체포하는 군사경찰부대. 다른 말로는 사복헌병. 볼까 말까 망설이다가 머릿속에 들어온 그 글귀의 의미를 알고 싶어서 드라마 시청을 결정했다.


문득, 대학 시절 어느 날이 떠올랐다. 30여 년 전 일이다. 교대 여대생들이 인근 군부대를 견학하였다. 연병장 스탠드에 앉아서 군간부의 강연을 들었다. 우리들은 군복을 갖춰 입고 헬멧을 쓰고 들었다. 군인들이 쓰는 전투헬멧이 그렇게 무거운 줄 처음 알았다. 너무 무거워서 강연을 듣는 내내 두 손으로 받쳐 들었다. 사격 훈련도 받았다. 지금 기억하기로, 총알 세 발을 쏘았다. 엎드려 총자세로 쏘았는데 총소리가 너무 커서 놀란 나머지 나도 모르게 방아쇠를 당겼다. 나중에 보니 모두 과녁을 빗나갔다. 총소리가 한동안 귀에서 맴돌았다.


드라마 <D.P.>는 시즌1에서 6화, 시즌2에서 6화, 총 12화로 구성되었다. 오늘로 시즌1 시청을 완료. 군탈체포조(軍脱逮捕組)인 이등병 안준호(정해인 분)는 탈영병을 쫒으면서 군대와 군대 밖 사회의 부조리를 목도한다. 탈영을 하게 된 배경에 관심을 두게 되면서, 안준호는 군생활에서 병사들이 겪는 고충을 깊이 알게 된다. 언어폭력 신체폭력 성추행 성희롱 등. 누워 있는 병사에게 방독면을 씌우고 물을 붓는 행위, 병사의 음모를 왁싱하는 행위, 일부 신체를 놀려대는 행위, 괜한 트집을 잡아 집단 폭행하는 행위 등등. 죽음을 생각하게 할 정도의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탈영을 하는 병사들의 얘기가 펼쳐진다.


몇몇 탈영병의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조석봉(조현철 분) 병사의 이야기다. 조석봉은 전직이 유도선수였다. 그러나 사람을 때린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진로를 바꾸었다. 애니메이션을 창작하고 애니메이션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군입대 전, 학생들은 조석봉을 '봉디쌤'이라고 불렀다. '봉디'란 석봉과 간디의 합성어. 그만큼 학생들이 따르던 사람이었다. 유순했던 조석봉은 군대에 들어와 여러 가혹행위에 시달린다. 죽고 싶을 만큼. 자신을 괴롭히던 황장수(신승호 분)가 전역하자 다른 상관이 또 괴롭힌다. 바지를 내리게 하고 자기 앞에서 자위행위를 하라는 것. 이전에도 그 짓을 여러 차례 시킨 것이 분명했다.


어느 날, 조석봉은 미친 듯이 상관을 구타하고 탈영한다. 자신을 괴물로 만든 장수를 찾아갔다. 장수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자기를 괴롭혔냐고. 그러자 장수는 이렇게 말한다.

"그냥, 그래도 되는 줄 알았어."

세상에, 선량한 한 사람을 산지옥에 몰아넣은 이유가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니. 조석봉의 분노는 더욱 거세졌다. 조석봉은 장수를 죽이고자 했다. 자수를 권하는 DP조의 설득에, 조석봉은 이렇게 말한다.

"뭐라도 바꾸려면 뭐라도 해야지."

조석봉을 에워싼 특수임무대. 일촉즉발의 순간, 장수를 쏘려던 총구는 조석봉 자신에게 향한다. 무얼 바꾸기 위해서 조석봉은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는가. 그 후로 병사의 인권은 잘 지켜졌는가. 시즌2에서는 인권이 잘 지켜지기를 기대한다.


조석봉의 이야기를 보면서 지난 학기 우리 교실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2학년 교실. 친구의 바지를 잡아내리는 행위를 수차례 반복하는 학생이 있었다. 왜 그렇게 하는지 묻는 내 말에 그 학생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냥요. 장난으로요."

때려주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일었으나, 나는 두 손을 뒤춤에 대고 꾹 참았다. 몇 마디 훈계를 하고 학부모에게도 알렸다. 다음 날 등교한 학생에게 물었다. 부모님께 많이 혼났느냐고. 내 바람과는 달리 그 학생은 이렇게 대답했다.

"아뇨. 다음부터는 하지 말라고만 했어요."

학부모가 강하게 훈육하기를 바랐건만. 부모는 자녀의 행위가 얼마나 심각한지 모르는 것 같아서 원망의 마음이 일었다. 그 후로도 그 학생은 다른 학생의 바지를 슬금슬금 내렸다. 속옷의 허리 부분이 보일 정도로. 마치 그래도 되는 것처럼. 따끔하게 혼내려다 보니 감정조절이 힘들었다. 감정조절이 안되어 내가 사고를 칠까 봐 더 이상은 훈육하지 못했다. 크고 작은 장난꾸러기 이 학생을 어떻게 지도할지 고민이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오면 좀 성숙해지기를.


괴롭히는 사람과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 그 차이는 얼마나 큰가. 일상적으로 괴롭히는 사람은 장난으로 재미로 그런 행위를 한다지만, 그걸 당하는 사람의 심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학교와 군대는 집단생활이라는 점에서 같다. 학교에서 학생들끼리 일어나는 크고 작은 괴롭힘을 많이 보아왔다. 더 크게 일이 번지지 않기만을 바라는 마음일 뿐, 강하게 제지할 방법을 찾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해결방법을 찾기보다는 방관자에 가까웠다는 사실에, 마음에 상처를 입은 학생들에게 미안하다. 2학기에는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뭐라도 바꾸려면 더 큰 용기가 필요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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