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에 알람을 설정해 놓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일어난다. 아니, 그냥이라기보다는 '대장'에서 신호를 보낸다. 어제 먹은 내 몸속의 찌꺼기들을 버리고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더 자고 싶어도 더 잘 수가 없다. 비틀비틀 현관문을 열면서 그날의 기온을 체감하고, 종이 신문을 들고 화장실로 향한다. 차가운 변기에 앉으면서 잠이 깬다. 내 몸의 어제와 오늘이 이렇게 이어진다. 신문을 펼친다. 어제의 일들이 다가온다. 나는 신문을 뒤에서부터 읽는 버릇이 있다. 사설과 칼럼부터 읽는다. 어제의 세상 일들이 오늘로 이어지는 순간이다. 하루의 '역사'가 시작된다.
이제 비웠으니 채워야지 않겠나. 정수기에서 2단계 500밀리리터-1단계는 120ml, 3단계는 1000ml-를 냄비에 받는다. 냉장고에서 계란 세 개를 꺼내 전기레인지 위에 올려놓는다. 1부터 12까지의 화력 중에서 6에 맞춘다. 시간을 13분으로 세팅해 놓으면 알맞은 반숙 계란이 된다. 사과를 꺼내 씻은 후, 한 입 크기로 잘라서 플라스틱 통에 담는다. 큰딸아이 방에서는 드라이어 소리가 요란해지다가, 잔잔한 음악이 울려 퍼진다. 머리를 매만지고 화장을 하는 거다. 족히 50분가량은 걸린다. 나 같으면 한 숟가락이라도 밥을 먹으면 좋으련만, 딸아이는 '꾸미기'에 바쁘다. 한때다 싶어 이젠 나도 받아들였다. 나는 밥을 먹는다. 바쁜 현대인들은 빵이나 우유 등으로 간편 식사를 한다지만, 나는 꼭 밥을 먹어야 한다. 뼛속까지 촌사람인가 한다.
소풍을 가듯이 보조가방에 따뜻한 물, 삶은 계란, 사과 등을 싸 가지고 집을 나선다. 차 안에서 '김현정 뉴스쇼'를 듣는다. 어쩌면 그렇게 맛깔나게 시사와 교양을 잘 전해주는지, 인터뷰를 그렇게 매끄럽게 진행하는지 감탄하면서 라디오를 듣는다. 조수석에서는 큰딸아이의 아침 식사가 진행된다. 딸아이를 지하철역에 데려다주고 나는 나의 일터인 학교로 향한다. 교문에서 교통정리를 해주는 보안관님-경비실 직원-과 목례를 나누고 교문에 들어선 후, 교실로 향한다. 컴퓨터를 켜면 교내 메신저에 대여섯 개의 업무 관련 문자가 올라와 있다. 주로 그 날의 주요 업무다. 학교 일의 중심은 수업인데, 수업보다는 다른 업무에 대한 메시지로 학교생활이 시작된다. 수업 중에도 메신저에는 마구마구 업무 메시지가 날아온다. 다 읽을 시간이 없어서 프린트를 해 놓거나 파일로 온 것은 바탕화면에 저장해 놓는다. 수업이 끝나면 읽으려고...
수업 도중에도 언제 어떻게 돌발사태가 일어날지 가늠할 수가 없다. 다투는 아이를 불러서 화해시킨다. 물 먹다 책상이나 교실 바닥에 물을 흘리는 아이에게 괜찮다고 '위로'한다. 가위질을 하면서 장난을 치지는 않는지 신경이 곤두선다. 종이에 손가락을 베어서 오는 아이에게 일회용 밴드를 붙여 준다. 그냥 둬도 되는데 아이들은 그거라도 붙여야 안심이 되나 보다. 교실 문에 부딪혀서 아프다고 울면서 오는 아이의 머릿속을 헤집어 보고, 피가 안 난다고 말하면 울음을 그친다. 여덟 살 아이들은 피를 제일 무서워한다. 위로만으로 안될 만큼 아픈 아이는 보건실에 보낸다. 보건 교사의 처방에 따라서는 학부모에게 전화해서 '조치'를 취해야 할 때도 있다. 11시쯤 되면 우리 반 아이들은 배가 고프다고 징징댄다. 수업은 뒷전이다. 나도 배가 고프다고 '공감'해 주다 보면 점심시간이 된다.
가방을 메고 인사하고 교실문을 나서는 아이들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후훗! 와이티엔 뉴스를 틀어 놓고 교실 청소를 한다. 힘든 하루지만 뉴스 속에 나오는 갖가지 사건 사고에 비하면 교실 청소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쯤이야 가볍게 해결할 수 있지 않나. 청소가 끝나고 아침에 프린트 해 놓은 업무 과제를 읽고 처리한다. 업무포털에 접속해서 나에게 온 공문은 없는지 확인하고, 없으면 땡큐다. 유뷰브에 들어가 재즈 음악을 틀어 놓고 책상 위를 정리한다. 다음 날 수업 준비를 마치면 이젠 제1차 내 시간이다. 교사 강지영이 아닌, 인간 강지영으로 살 수 있는 시간이다. 재수가 좋은 날은 퇴근 전 두세 시간은 내 자유다. 독서를 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때로 '필'을 받으면 글쓰기도 한다. 그런 날은 퇴근 시간을 훌쩍 넘기기도 한다. 누가 보면 엄청난 '교육 연구'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퇴근 시간이 된다. 교사의 퇴근 시간은 4시 30분이다. 초보 교사 때, 나는 퇴근 시간이 왜 빠른지 궁금했다. 다른 직장인에게 왠지 모를 미안한 생각을 한적도 있다. 여기서 밝히자면, 아이들과 있는 동안은 쉬는 시간이 없다. 어쩌다 보면 오전 내내 화장실을 가지 못한다. 그래서 교사가 방광염에 잘 걸린다는 얘기도 있다. 쉬는 시간은 아이들의 쉬는 시간이지, 교사에게는 생활지도 시간이다. 점심시간도 급식지도 시간이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음식 맛도 모르면서 먹곤 하니까.
교실 문을 나서기 전에, 딸아이들에게 먹고 싶은 것이 있는지 문자를 보낸다. 먹고 싶은 거 주문하라고. 마트에 가면 왜 그렇게 배가 고픈지. 시식하라고 마련해 놓은 음식을 먹고 싶지만 게걸스럽게 먹고 있는 것을 학부모나 아이들 눈에 띌까 봐 그냥 패스한다. 지나친 자기 검열인 것 같지만, 사지도 않고 여기저기 돌면서 먹는 것은 얌체라는 생각이 내 '신념'이다. 온라인 쇼핑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지만 나는 직접 마트에 와서 쇼핑하는 게 즐겁다. 특히 유제품 코너에 가면 늘 신상품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갖가지 우유와 요구르트들. 참 재미지다.
집에 와서 식구들과 저녁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하고, 밀린 빨래나 간단한 집안 뒷정리를 하면 집안일도 끝. 뉴스를 보면서 남들 사는 얘기, 하루의 사건사고를 보다가 9시쯤에 내 책상에 앉으면, 제2차 완벽한 내 시간. 잠자는 시간조차 아까운 내 시간. 독서를 하고, 체력이 되면 글쓰기도 하고. 늦은 밤, 딸아이들이 와서 끌어안고 스킨십하고 한바탕 '애정공세'를 하고 나면 잠자리에 든다. 이렇게 나의 하루가 저문다. 빈 옆자리가 애달프다. 먼저 간 남편 생각을 하다 보면 운 좋게도 꿈속에서 남편을 만난다. 그런 날은 운수대통의 날이다. 여보, 꿈속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