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을 보기 위해 대학로에 갔다. 마로니에 공원에 들어서니 '예쁜 말'이 화단에 설치되어 있다.
너를 사랑해
네가 최고야
혼자가 아니야
잘하고 있어
사랑을 잃었거나 사랑을 갈망하는 이에게는 '너를 사랑해'가 마음에 와닿겠지. 남에게 칭찬받기를 유달리 좋아하고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는 이라면 '네가 최고야'가 좋겠지. 힘든 일을 하고 있거나 외로움에 지쳐 있는 사람에게는 '혼자가 아니야'라는 말이 위로가 될 수도 있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잘 되고 있을지 걱정인 사람에게는 '잘하고 있어'가 격려로 다가오기도 하고.
저 넷 중에서 '잘하고 있어'가 내게로 왔다. 집안 살림 제쳐 두고 연극 공연을 보러 온 것이 잘한 것인지, 껄쩍지근하던 참이었다. 일주일 동안 청소도 안 했다. 아침 설거지도 안 해서 싱크대에 빈 그릇이 가득했다. 그걸 다 미뤄두고 연극을 보러 갔다. 그런 내게 저렇게 '좋은 말'이 반겨주니 신이 날 수밖에. 잘하고 있다는 격려의 말을 들으니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내가 보러 간 연극은 <고도를 기다리며>였다.
무엇이든 아이들과 함께 즐겁고 새로운 활동을 알려주기를 좋아하는 교사의 특성상, 이 예쁜 말을 지나칠 리가 없다. 수업에 활용하기로 했다. 예쁜 말 사진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우리들도 '예쁜 말'을 지어보자고 했다.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쓰자고 했다. 열심히 글자를 꾸미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다.
아이들을 하교시키고 난 후, 글자 꾸민 것을 보니, '넌 할 수 있어'가 가장 많았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많아서 응원의 말을 듣고 싶은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한 아이의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편히 쉬어'
아니, 이게 뭐지? 아홉 살 아이가 듣고 싶은 말이 '편히 쉬어'라니, 내 상식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았다. 연세가 좀 드신 분이거나 은퇴를 하신 분이거나 힘든 일을 한 사람에게 하는 말이지 않은가. '편히 쉬어'는 우리 반 조안나(가명)가 쓴 글귀다. 어쩐지 안나가 요즘 말이 없고 노는 것이 활기차지 않았고 친구들과 트러블이 많았다. 뭔가 힘든 점이 있음이 분명했다. 그간에 담임교사로서 눈치도 못 채고 상담도 하지 않은 것이 미안했고 마음에 걸렸다. 학부모에게 전화라도 해서 물어봐야 하나, 집에 무슨 일이 있나, 안나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겼나, 혹시 아동학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큰일이구나 싶었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어서도 자꾸 안나가 쓴 말 '편히 쉬어'가 아른거렸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편히 쉬고 싶을까.
다음 날, 아침이 되어 안나가 등교하기를 기다렸다. 오늘따라 일찍 교실문을 열고 들어온다. 인사를 나누었다. 안나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고개를 숙인채 영혼 없는 인사를 한다. 가방을 놓고 정리하기를 기다린 후, 안나를 불렀다.
"안나야, 듣고 싶은 말을 예쁘게 꾸몄더라. 색칠도 꼼꼼하게 하고."
"네!"
칭찬을 했는데도 시큰둥하다.
"근데 안나야, 왜 편히 쉬어라는 말이 듣고 싶어?"
"..."
"아니, 그냥 궁금해서 그래."
"요즘, 학원 다니기가 너무 힘들어서요."
"아, 그랬구나. 그건 안나가 엄마랑 의논해 봐야겠는데?"
안나의 얘기를 듣고는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너무 깊이 생각한 나머지 마음을 졸인 게 쪼끔은 억울했다. 소심하게도. 그렇지만 안나가 얼마나 학원 공부가 힘들면 편히 쉬고 싶다는 말을 다할까, 생각하니 안쓰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