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를 읽고-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망했다. 그는 1963년부터 대통령이었다. 그 기간 동안에 나는 세상에 나왔고 국민학교를 다니고 중학교를 마쳤다. 나의 학창 시절을 한마디로 나타내면 '국민계몽시대'였다. 1970년대에 정부 주도로 시행된 지역 사회 개발 운동, 바로 '새마을 운동'이 그 주역이다. '근자협'은 지금도 잊지 못하는 구호다. 근자협이란, 새마을 운동을 펼치면서 내걸었던 근면 자조 협동을 말한다. 국민학교 시험에도 많이 나왔고, 동네마다 가는 곳마다 벽이나 유리창 등에 많이 새겨 넣었던 낱말이다.
'나 때는 말이야.'로 얘기를 꺼내는 이유가 있다. 어린 학생들은 새마을 운동과 더불어 글쓰기를 배웠다. 나는 초중등시절에 국민 계몽 글을 참 많이도 썼다. 글짓기 숙제, 글짓기 대회, 일기 등등. 심지어 일기장 제목을 '애국 일기'라고 했다. 중학교 때 선생님이 그렇게 시켰다. 글의 주제도 다양했다. 쥐 잡기 운동, 불조심, 물자절약, 자연보호, 국산품애용, 저축 장려, 혼식 장려 등등. 여기서 혼식이란, 혼자 먹는 식사가 아니라, 쌀이 귀하니 보리를 섞어 먹으라는 정부 방침이다. 도시락에 보리를 얼마나 섞어왔는지 선생님이 검사를 하였다.
그 당시에는 글쓰기라 하지 않고 '글짓기'라고 했다. 그 차이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내 경험으로 미루어 글짓기는 말 그대로 글을 '지어내는' 공부였다. 이게 감이 안 올 테지만, 글 대부분을 지어냈다. 없었던 일을 있었던 일로 만들어냈다. 선생님이 그렇게 하라고 했다. 교외 글짓기 대회가 있으면 초등 담임 선생님은 내가 쓴 원고지에 빨갛게 첨삭지도를 해 주었고, 그걸 새 원고지에 다시 써서 출품하면 교육청이나 문교부(지금의 교육부)에서 큰 상을 보내 주었다. 운동장에서 조회 시간이면 글짓기 상을 휩쓸었다. 어린 나는 명예심에 눈이 멀었다. 경험하지 않은 일을 실제 일처럼 지어내는 그 소질을 그대로 갈고닦았다면 지금쯤 소설가가 되지 않았을까, 자조(自嘲)한다.
고교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절필'을 하였다. 글짓기에 넌덜머리가 났다. 글짓기가 허위로 느껴졌다. 국민계몽으로 쓰는 글이었으니 내 생각이나 느낌은 없었다. 형식만 갖춘 의미 없는 글, 형해화된 글쓰기에 염증을 느꼈다. 글쓰기를 잘못 배운 탓이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초등교사가 되고, 투병을 했다. 죽을 만큼 아팠는데 남편이 된 한 남자의 극진한 사랑으로 회생하였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사별을 하고 혼자가 되었다. 네 살 아홉 살 두 아이를 키우느라 내 생각이나 내 느낌을 돌볼 여가가 없었다. 글을 쓸 정신이 없었다. 그러던 중, 내 안에 눌러 두었던 글에 대한 관심이 싹트는 계기가 있었다.
2007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빛의 화가 모네 전(展)’에 갔다. 벽에 걸린 여러 그림을 감상하면서도 그다지 감흥을 받지 못했다. 그의 작품 중에는 연못 주변의 풍경을 그린 작품이 많았다. 물기를 머금고 햇빛에 반짝이는 수련의 아름다움이나 잎사귀들의 상큼함에 기분까지 상쾌해지기는 했다. 다른 사람처럼 감탄을 자아내지는 못했다. 몇 걸을 걷다가 벽면 맞은편에 걸려 있는 ‘수련'에 관한 시를 보았다. 시화를 곁들이지 않은 하얀 바탕 위에 써진 시만 읽어도 가슴이 일렁였다. 거기서 깨달았다. 언어 예술만이 내 길이라 생각했다. 다시 글을 소환했으나 쓰기가 아니라, 읽기였다. 읽기에만 빠져버렸다. 읽으면서 썼어야 하는데, 주야장천 읽기만 했다. (시를 적어오고자 하였으나 관람객이 많아서 적을 수 없었고, 사진 촬영도 금지되어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을 접고 뒤돌아 왔다. 그 후 지금까지 그 시를 아무리 검색을 해도 찾을 수가 없다.)
글을 읽으며 감동했고 치유했고 용기를 얻었다. 읽으면서 희망도 생겼다. 누군가에게는 감동을 전하고 싶었고 누군가에게는 용기도 주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허무하게 흘러만 가는 인생에도 의미가 있었음을 증명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그래서 시작했다. 여러 글쓰기 책을 읽었다. 글쓰기 강연도 많이 다녔다. 실상 쓰지는 않고 말이다. 날마다 마당만 쓸고 깔끔한 마당에서 재주를 못 보이는 마당쇠처럼. 손목이 아프도록 연습하는 피아니스트도 있다. 발가락 마디가 불거지도록 연습하는 발레리나도 있다. 허리와 어깨가 아프도록 연습하는 화가도 있다. 그렇게 많은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여 기량을 갖추는데, 나는 글쓰기에 욕심만 있었지 정작 쓰지는 않았다. 책을 읽고 강연을 잘 들으면 언젠가는 될 줄 알았다.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의 한 꼭지 중, '나는 왜 쓰는가'를 읽어보자. 그는 작가가 글을 쓰는 이유로 네 가지를 들었다. 첫째, 순전한 이기심. 똑똑해 보이고 싶은 욕구다.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욕심이다. 자기 삶을 살아보겠다는 재능 있고 고집 있는 사람들이 작가라고 조지 오웰은 진단한다. 돈에는 관심이 적어도 더 허영심이 많고 자기중심적인 부류가 작가라고 한다. 둘째, 미학적 열정.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또는 낱말과 그것의 적절한 배열이 갖는 묘미에 대한 인식을 가진 사람이 작가라고 한다. 셋째, 역사적 충동.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 후세를 위해 보존해 두려는 욕구를 가진 자가 작가라고 말한다. 끝으로 정치적 목적.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망을 가진 자가 작가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조지 오웰은 자신은 주로 정치적 성향 때문에 글을 쓴다고 했다. 조지 오웰은 누구인가.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배할 때, 조지 오웰은 버마에서 인도 제국 경찰 일을 했다. 그는 그게 자신에게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경찰 일을 사직하고 하층계급의 세계에 뛰어든다. 일하면서 그는 노동자 계급 하층민에 대해 큰 관심을 갖게 된다. 빈곤과 좌절을 겪었고 그로 인해 권위에 대한 타고난 반감이 커졌다.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면서 그는 전체주의에 맞서고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글들을 쓰게 되었다. 그가 글을 쓰는 건 폭로하고 싶은 어떤 거짓이나 주목을 끌어내고 싶은 어떤 사실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지 오웰은 기발하게 쓰기보다는 정확하게 쓰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그의 소설 <동물 농장>을 보면 그의 정치적 성향이 녹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동물 농장>은 정치성뿐만이 아니라 예술적으로도 뛰어난 소설이다. 한 수 배웠다. 작가의 글은 작가가 살던 시대를 반영하지 않을 수 없음을. 그리고 글을 쓰는 목적 또한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위 네 가지가 모두 작용할 것이라는 점도.
소설가 김훈의 산문집 <연필로 쓰기>의 '알림'은 책의 서문인데,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나는 여론을 일으키거나 거기에 붙어서 편을 끌어모으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 나의 글은 다만 글이기를 바랄 뿐,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고 당신들의 긍정을 기다리지 않는다. 나는 나의 편견과 편애, 소망과 분노, 슬픔과 기쁨에 당당하려 한다. 나의 이야기가 헐겁고 어수선해도 무방하다. 나는 삶을 구성하는 여러 파편들, 스쳐 지나가는 것들, 하찮고 사소한 것들, 날마다 부딪치는 것들에 대하여 말하려 한다. 생활의 질감과 사물의 구체성을 확보하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았다. 이 책의 출간으로, 나의 적막이 훼손된다면 그것은 전혀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소설이든 산문이든 글에서 대가를 이룬 작가이면서도 이렇듯 겸손하고 덤덤한 글을 본 기억을 끄집어내기 어렵다. 하물며 이제 막 글쓰기에 입문한 완전 초보자가 무엇을 기대하랴. 김훈은 글쓰기에 심혈을 기울이면서도 독자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자유인으로서의 글쓰기를 하고 있는 작가이다. <연필로 쓰기>에서 그의 산문을 읽어보면, 사심없는 글쓰기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일산 호수공원에서 자신이 '산신령'이 된 사연을 읽어보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늙기와 죽기'도 장례식장의 분위기를 묘사하면서 죽음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한다. 문상 온 사람들이 고스톱 치고 흰소리해 대는 것은, 위로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운명을 외면하기 위한 몸짓이라는 것까지 깨닫게 한다. 그의 글에서는 미학적 열정이 느껴진다.
찰스 부코스키의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의 글도 재미있다. '작가'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시의 앞부분을 옮겨 본다.
'작가가 되려고 인내해야 했던 것들을/생각해 본다. 여러 도시의 방들,/쥐도 아사할 음식 찌꺼기로/연명하던 일./ 피골이 상접해 어깨뼈로 빵도 자를/지경인데 자를 빵이 있어야/말이지....../그 와중에도 종이에/끄적이고 또/끄적였다.'
어떤가. 표현이 저돌적이면서도 반항적이고 빈곤쯤이야 가뿐히 넘고 보는 시인이 보이지 않는가.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찬 넓고 큰 기운, 굽히지 않는 용기가 느껴진다. 이런 걸 일컬어 호연지기(浩然之氣)라 하던가.
찰스 부코스키(1920~1994)는 또 누구인가. 책날개에 소개된 내용을 읽어보자. 그는 미국 시인인데, 아버지의 잦은 구타로 인한 고통을 덜기 위해 열세 살 때부터 술을 마셨다고 한다. 엄청난 독서가였고, 오랫동안 하급 노동자로 일하며 미국 전역을 유랑했다. 심각한 궤양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생활한 후인 서른다섯 살에 시를 쓰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그의 책들은 서점에서 가장 많이 도난당하고 있다고 한다. 책값을 지불하기 어려운 가난한 문학애호가들이 그의 주된 독자일 거라고 추측한다. 제목이 특이해서 원문 제목을 찾아보니, 'HELL IS A CLOSED DOOR'라고 한다. 해석하면, 지옥은 닫힌 문이다.
찰스 부코스키의 시집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의 제목이기도 한 그의 시 '지옥은 닫힌 문이다'의 일부분을 감상해 본다.
'배를 곯고 살 때도/나는 출판사의 거절 통지에 개의치 않았다. /편집자들이 참 멍청하구나/생각하고는/계속 글을 쓰고 또/썼다. /그래도 그렇게 행동으로 거절해 주니/다행이라 생각했다. 최악은 텅 빈/우편함이었다. (중략)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배를 곯을 때는/지옥은 닫힌 문이다/가끔 문 열쇠 구멍으로/그 너머가 얼핏/보이는. /젊든 늙었든, 선량하든 악하든/작가만큼/서서히 힘겹게 죽어 가는 것은/없다.'
시인은 빈곤에 시달리면서도 작가로서의 품위와 결기를 시로 승화시켰다. 시인도 생활인인지라 돈도 필요했을 텐데 이를 가뿐히 넘기고 시편으로 고양시킬 수 있는 정신력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나는 이제 막 글쓰기에 입문하면서 너무나 큰 욕심을 부렸다. 좌우 눈치 보기에 바빴다. 자유인으로 살지 못했다. 교사라는 알량한 기득권에 기댔다. 작가라는 명예를 단 것에 기분이 좋았다. 이 모든 것을 반성한다. 조지 오웰과 김훈 그리고 찰스 부코스키에게서 작가로서의 태도에 대하여 배웠다. 사사로운 욕심을 버리자, 내게 주문을 걸었다. 사심(私心)없이 글을 쓰는 것이 진정한 작가의 태도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