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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지영 Oct 17. 2023

우울 권하는 사회에서 살아남는 법

-에릭 메이젤의 <가짜 우울>을 읽고-

  우울한 시대다. 정치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개별 인간들도. 요즘, 정치가 실종되었다고 한다. 여야 공방은 치열하다. 출생률이 낮아서, 사교육비가 높아서, 취업이 안 돼서, 결혼을 안 해서 등등의 사회문제가 연일 논쟁거리다. 젊은이들이 심한 경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고 심하면 극단의 선택으로 치닫는다. 철학자 한병철은 '피로사회'라고 했고, 사회심리학자 김태형은 '풍요중독사회'라고 했다. 번아웃이 올 만큼 자기를 희생시켜 죽도록 일한다는 피로사회. 사회를 화목하게 만들지 못하는 물질적 풍요가 개인과 사회에 해롭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무턱대고 풍요만을 추구한다는 풍요중독사회. 이에 나는 '우울 사회'라고 명명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얼마 전, 조카가 군대에 갔다. 사정이 있어 밥 한 끼 해먹이지 못하고 보내서 미안하다.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조카가 군대에 가기 싫어한다고. 조카가 조금은 야속했다. 철이 없다고 여겼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건 오해였다. 조카의 가까운 친구도 영장이 나왔는데,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고 군입대를 면제받았다는 것이다. 뉴스에서만 접하던 일을 바로 곁에서 겪고 보니, 당연히 자신의 군입대에 대해서 불만을 가졌던 것이다. 그간 자기가 알고 있는 공정이 착각이었다는 자각이 일었으리라. 몸도 마음도 건강해서 군대에 가는 것이 훨씬 좋은 게 아니겠냐고 말은 했지만, 마음이 불편한 것은 감출 수 없었다. 이 일로 인하여 또 우울했다.


  몇 년 전, 두 달여간 지속된 층간소음 문제로 촉발된 불면증과 불안장애로 우울증 진단을 받은 적이 있다. 화들짝 놀라서 의사에게 물었다.

  "교수님, 근데 이런 우울증이 있는 사람이 직장에서 일을 해도 될까요? 직업윤리상 잘못된 건 아닐까요?"

  "아닙니다. 이 정도는 매우 가벼운 편입니다. 요즘은 이 증상으로 치료받는 사람이 많아지는 추세입니다. 오히려 치료받지 않고 숨기다가 악화되는 게 문제죠."

  그 이후로 우울증에 관한 관심이 생겼더랬다. 우울증은 특별한 사람만이 걸리는 질병이라 생각했고, 인생에서 일어나면 큰일이라고 여겨왔다. 그런데 막상 나 자신이 그런 진단을 받고 보니, 그런 생각은 편견이고 오만임을 깨달았다. 


  의사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 인간에 대해 더 이해하게 되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질병, 누구나 앓을 수 있는 증상. 병원문을 나오면서 더 겸손해지기로 했다. 우울증, 그건 자신의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 인간의 몸은 신비롭다. 특히 정신의 세계는 더욱 오묘하다. 저기 저 웃고 있는 사람도 내면에서 꿈틀대는 정신적 고통을 우리는 온전히 알기 어렵다. 사실, 나도 나를 모르지 않는가. 어제의 나, 오늘의 나, 그리고 내일은 내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시시각각으로 상황도 바뀌고 감정도 변한다.  


  가난한 사람은 먹고살기 위해 일하느라 힘들고, 부자는 풍요로움 속에서 권태를 느끼고, 일상은 반복되고. 한 번이라도 우울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이뿐인가. 전쟁과 질병에 대한 공포, 인간의 유한성, 우주 속 하찮은 존재라는 자각에 드는 순간에는 실존적 우울에 빠지기도 한다. 의식을 가진 인간만이 느끼는 이 우울감. 우울감을 가지고 의사를 찾아가는 순간, 환자가 되고, 우울감은 우울증이라는 질병이 된다. 정신의학과 의사는 약물을 처방한다. 이 약물은 항우울제라는 것인데, 바로 약효가 나지 않고 15일 정도 꾸준히 잘 먹어야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러고도 재발이 잘되므로 최소한 6개월가량 지속적으로 먹어야 한다고 단단히 일러준다. 6개월 만에 재발할 수 있는 병이라면 그건 치료라기보다는 임시방편, 내지는 증상 완화 정도일 뿐이다. 항우울제의 작용 기전을 알기는 어려우나, 항우울제는 사람을 몽롱한 상태로 만들어 우울감, 슬픔 등의 감정 자체를 둔하게 만든다.


  가족의 질병이나 이별, 사별 등으로 인한 극심한 슬픔은 견디기 힘든 정신적 고통이다. 이 슬픔이 정신질환이나 정신장애는 아니다. 우울하다고 하여 약을 먹고 증상이 호전된다고 하여도 가족의 질병이나 이별, 사별 등은 해결되지 않는다. 일상의 반복이나 권태로 우울하여 약물을 먹고 증상이 호전된다 하여도 일상의 반복이나 권태가 해소되지 않는다. 누가 보아도 인생이 즐거워 보이고 주변 상황이 좋아 보여도 인간은 실존적 슬픔을 느끼는 존재다. 바로 인간의 생명이 유한하다는 사실 말이다. 개인에 국한하여 아무리 좋은 환경에 놓여 있다 하여도 조금만 관심을 돌려 보면 지구 저편에서 굶어 죽어가는 사람이 있고, 지구는 점점 병들어 가고, 사회적인 부조리와 전쟁 등도 사람을 슬프게 만든다. 인생 자체가 슬픔의 연속이다. 그래서 인생은 고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인생이 고해라는 말은 인생이 허무하고 허망하니 아무렇게나 살자는 말은 아니다. 너나 나나 고해의 바다에서 살고 있으니 서로 가엾게 여기고 서로 배려하며 서로 도우며 살아가자는 뜻이다.


   우울증에 대한 관심은 관련 도서 읽기로 이어졌다. 그러던 중, 심리치료사이면서 창의력 전문가인 에릭 메이젤이 쓴 <가짜 우울>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흔히 겪게 되는 우울감을 ‘가짜 우울’이라고 한다. 진짜는 ‘슬픔’이라는 감정이다. 슬픔의 감정은 의식이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감정인데, 이 슬픔의 감정을 우울증으로 둔갑시켜서 슬픈 사람을 우울증 환자로 만든다고 비판한다. 의료계, 제약회사, 그리고 광고사 등이 합작하여 우울을 권하는 모양새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바로, 슬픔의 의료화. 에릭 메이젤은 허술한 논리와 부도덕한 이윤 추구를 결합해 매년 수천만 명의 환자들을 양산해내고 있다고 일갈한다. 우울하다고 하여 약물에 의존하다 보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다. 우울에 빠져 자신의 기분에만 신경을 써야 할까. 아니다. 자신의 실존적 문제에 집중하여 불행을 최소화하자고 저자는 제안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의 일상에 ‘의미’를 담자고 주장한다.


  에릭 메이젤의 말을 더 들어보면, 불행의 실체를 인정하는 것은 불행이 삶의 중심에 있다고 단언하는 것과는 다르다. 실은 그와 정반대다. 불행이라는 인간의 공통적인 경험을 어둠 속에서 끄집어내고 그 존재를 인정함으로써 우리는 불행의 힘을 줄여나가기 시작한다. 실존 프로그램을 통해 기분보다는 의도와 목적에 집중함으로써 암울한 어둠을 걷어내자고 저자는 제안한다. 그 실존 프로그램(일상 의미화 전략)은 20가지나 된다.


  1. 자신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본다.

  2. 의미란 무엇인지 파악한다.

  3. 중요한 존재가 되기로 결심한다.

  4. 의미 창조자로 자신을 임명한다.

  5. 자긍심의 원칙에 따라 의미를 만든다.

  6. 욕구와 필요, 가치를 고려한다.

  7. 삶의 목적이 담긴 문장을 만든다.

  8. 실존지능을 활용한다.

  9. 기분보다는 의미에 집중한다.

  10. 개인적 문화적 최면을 벗어난다.

  11. 자신의 현실을 고려한다.

  12. 자신만의 의미 어휘를 익힌다.

  13. 의도를 지지하는 문장들을 되뇐다.  

  14. 아침마다 그날의 의미 계획을 세운다.

  15. 의미를 어디에 투자할지 결정한다.

  16. 의미 기회의 열네 가지 예

  17. 의미 위기에 대처하는 방법

  18. 실존적 자기 돌보기에 힘쓴다.

  19. 인지적 자기 돌보기에 힘쓴다.

  20. 행동적 자기 돌보기에 힘쓴다.


  위 20가지 중에서 2번과 9번에 대하여 말하려 한다. 저자가 말하는 20가지의 실존 프로그램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개념은 ‘의미’다. 저자의 말대로 “의미란 우리가 가치를 두는 것이자 삶의 목적을 해석하는 수단이며, 실존적 사실들을 이용해 만들어내는 것으로, 이는 철저하게 주관적인 문제다.” 사람에 따라서는 같은 시간이라도 의미를 다르게 부여할 것이다. 같은 시간에 같은 일을 하면서도 사람에 따라 느끼는 의미는 다르다. 예를 들어, 요리를 할 때도 어떤 사람은 한 끼 때우자는 가벼운 생각으로 초간단 요리를 할 수도 있다. 어떤 이는 생존뿐만이 아니라 건강을 생각하여 좋은 식재료로 공들여 건강식 요리를 할 것이다. 또 다른 이는 생존이나 건강이 아닌, 가족 간의 즐거운 시간을 갖기 위해 요리를 할 수도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생존 건강 즐거움을 모두 생각하면서 요리를 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어떤 일을 하면서도 자기만의 의미를 찾자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일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무리다. 또 그렇게 24시간 내내 의미 있게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머리가 터져 버릴 수도 있다. 


  자기가 찾은 의미 있는 시간에는 사람들은 자기의 기분을 생각할 여가가 없다. 예를 들어 그림 그리기에 몰입해서 붓질을 하는 순간에는 자기 기분이 어떤지 살피지 않는다. 그림을 다 그린 후에 피로가 몰려오거나 허기를 느낀다면 자기 기분이 저조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그림을 완성해 놓고 나빠진 기분을 챙기면서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그림을 완성한 보람은 날아가고 공허가 몰려올 것이다. 즉 지나치게 자기 기분에 매몰되지 말자는 것이다. 기분이란 시시각각 변한다. 변화무쌍한 기분을 쫓다 보면 정작 자기의 성취감이나 행복을 느낄 마음의 여유가 없어질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딱 필요한 만큼의 의미를 만들고, 인생의 나머지 시간은 기어를 의미 중립에 놓은 채 신나게 질주하게 두는 것이다."


  이 광대한 우주 속에서 나 개인의 존재는 하찮은 미물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나라는 존재가 없다면 우주의 하찮음 조차 느낄 수 없다. 그러므로 나 개인의 존재는 가치롭다. 이 우주에서 나만큼 중요한 존재는 없다. 이것은 자기중심적 사고와는 다르다. 자기중심적 사고는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심리에서 일어나는 사고방식이다. 내가 중요하다는 실존 프로그램은 나 이외의 사소한 것들에 얽매이지 말자는 얘기다. 내가 중요해지기로 결심하는 순간, 흐린 날씨도 나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내가 중요해지기로 결심하는 순간, 나를 모욕하는 몰상식한 사람들에게서 상처받지 않는다. 내가 중요해지기로 결심하는 순간, 외모에 대한 불만이 없어진다. 내가 중요해지기로 결심하는 순간, 온갖 소식과 뜬소문에 마음을 뺏기는 일도 줄어든다.


  우리 가곡 '목련화'의 노랫말이 떠오른다. 끝부분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에릭 메이젤의 <가짜 우울>을 읽고 우리 삶의 '의미'에 대하여 생각하다가 떠올랐는데, 이 순간에 이 노래가 떠오른 것은 스스로 생각해도 신통방통하다. 책을 읽고 노래를 다시 들으니 노래의 의미가 새롭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던가.


그대처럼 우아하게
그대처럼 향기롭게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나 값있게 살아가리

오- 내 사랑 목련화야 그대 내 사랑 목련화야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나 값있게 살아가리라


'값있게'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일까. 바로 '의미 있는' 삶이 아닐까. 아, 봄을 알리는 목련화처럼 우아하게 향기롭게 살고 싶다.


에릭 메이젤, 강순이 옮김, <가짜 우울>(마음산책,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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