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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지영 Oct 26. 2023

선생님, 시인이 되고 싶어요

"선생님, 시인이 되고 싶어요. 시인이 되려면 무슨 대학을 가면 되나요?"

수업 중에 들려온 초등2학년 학생의 말이다. 너무나 또렷이 들은 질문이어서 귀를 의심하지 않았다. 평소 생각이 깊은 학생이어서 허투루 듣고 넘길 말이 아니었다.

"시인이 되고 싶구나. 시인은 누구나 될 수 있어. 대학을 가지 않고도 충분히 가능해. 다만, 시나 글쓰기를 많이 배우는 학과가 있기는 해. 국어국문학과나 문예창작과가 있어. 근데, 시를 좋아하고 시 쓰기를 즐기면 누구나 될 수 있어. 꿈을 가져봐. 꼭 시인이 아니어도 돼. 너의 꿈이 의사였잖아. 시 쓰는 의사, 어때? 멋지지?"

 

  요즘, 시 단원을 공부하면서 마음속에 일어난 시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로 하는 질문이었다. 시의 맛을 알게 된 것 같아 기쁘기도 했지만,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는 선생님의 말을 믿고 시를 쓰는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나를 원망하면 어쩌지? 이 땅에서 예술가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작가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더구나 시를 쓰면서 생활은 가능할지. 별별 걱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지난 두 주간은 아이들과 함께 '시'에 푹 빠져 살았다. 학급 아이들에게 시에 대한 감수성을 주려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하였다. 도서관에서 동시집을 23권 대출받아 와서 교실에 두고 읽게 하였다. 가을에 관한 시를 찾아보자, 엄마와 아이가 겪은 일을 표현한 시를 필사해 보자, 친구와의 경험을 표현한 시를 찾아서 친구에게 읽어 주자, 웃음이 빵 터지는 재미있는 시를 찾아보자, 좋아하는 시를 찾아 외워 보자, 등등의 활동을 했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 반 아이들이 가장 좋아해서 외울 수밖에 없는 시는 '가장 짧은 시'였다. 역시 시는 짧아야 하나보다.


  한 주 동안 시를 감상하고, 읽어 보기를 마친 후에는 시 바꾸어 쓰기를 했다. 나름대로 잘했다. 국어 교과서도 잘 만들어져 있어서 단계별로 따라 하면 무리 없이 할 수 있었다. 그다음으로는 본격적으로 시 쓰기를 했다. 시를 쓰기 전에 아이들에게 시를 쓸 만한 경험을 주기 위해 여러 가지 활동을 기획했다. 두레생협에서 팝콘을 사다가 모둠별로 앉아 먹게 했다. 교과서에 팝콘을 만들어 먹으면서 쓴 시가 나온다. 그 시를 좀 더 잘 감상하기 위해서였다. 팝콘을 만들어 먹으면 더 좋으련만, 여건상 그러기에는 무리가 있어서 그냥 먹어보기만 했다. 친구들과 함께 먹는 모습이 귀엽다. 가을 동산을 꾸며 보자, 하면서 종이접기를 했다. 전 날 유튜브를 보면서 내가 먼저 종이접기를 연습한다. 다음 날, 학생들과 함께 종이접기를 한다. 코스모스 접기, 허수아비 접기, 새 접기. 유튜브에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종이 접기가 나오는데, 가장 쉬운 것으로 했다. 그래야 우리 반 아이들이 쉽게 따라 배울 수 있으니까.


  그다음으로 가장 많이 공을 들인 게, 가을 동산 둘러보기였다. 우선 가까운 학교 뜰부터 산책을 하면서 여러 가지를 관찰하였다. 구절초. 이건 쑥부쟁이와 많이 닮았는데, 꽃은 쌍둥이처럼 구별하기 어렵다. 다만 잎을 보면 구별이 쉽다. 이름처럼 쑥부쟁이 잎이 쑥처럼 생겼다고 생각하면 큰 오류다. 구절초 잎이 쑥처럼 생겼다. 몇 걸음 걸으니 아네모네가 보인다. 이름이 예쁜 아네모네. 어렸을 적에, 아이들은 '아, 네모네.'라고 친구를 놀렸다. 놀림을 당한 친구는 화를 내지 않고 되받아쳤다. 얼굴이 네모나다고 서로 장난말을 한 거다. 아네모네를 실물로 본 것은 여기가 처음이다. 학교 밖을 나가보니, 코스모스가 피어 있다. 그 옆에 프렌치메리골드도 자리했다. 아이들은 선생님은 어떻게 꽃이름을 많이 아느냐고 한다. 사실은 전 날에 휴대폰으로 꽃검색을 해서 아는 것인데. 선생은 늘 아이들에게 잘난 척을 하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


  다시 학교로 들어와 모퉁이를 돌자, 모과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아직 노랗게 익지는 않았다. 봄에 본 모과랑 뭐가 달라졌냐고 물으니, 크기가 커졌다고 대답들을 한다. 고마운 말이다. 커다란 화분에서 자라고 있는 배추와 무, 그리고 고추도 보인다. 울타리에 매달린 호박도 있다. 물들어 가는 낙엽과 담쟁이까지, 아이들과 함께 가을을 감상했다. 여러 가지 활동을 마치고 교실로 들어와 시 쓰기를 했다. 아이들의 시에 아네모네, 구절초, 담쟁이 등의 꽃이름, 식물 이름이 구체적으로 등장했다. 또 고마운 일이다. 앞으로 시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왜냐하면, 시를 가까이하는 사람은 향기로운 사람일 테니까.

아네모네와 코스모스
구절초와 프렌치메리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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