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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지영 Oct 23. 2023

나무, 가을 나무

  날씨가 꽤 쌀쌀해졌다. 하루가 다르게 주변의 나뭇잎이 노랗게 붉게 물들어 간다. 누군가는 인생의 황혼기를 낙엽에 빗대기도 한다. 붉게 물든 가을 잎을 고이 주워서 책갈피에 꽂는 이도 있다면서. 늙는다는 것은 이처럼 귀하다며 늙어가는 인생을 위로하기도 한다.


  좀 두꺼운 옷을 꺼내 입고 집을 나섰다. 시청 앞까지 가는 길 양 옆에 도열해 있는 메타세쿼이아가 오늘따라 높이 자란 듯이 보였다. 큰 도로 옆에 있는 건물이 8층 9층이나 되는데 그 건물 높이까지 닿는다. 참 잘도 자란다. 얼마나 생명력이 강한지 경계석을 뚫고 나온 뿌리도 보인다. 잘못 걸으면 넘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무를 좋아한다. 우선, 나무는 이름부터 순하다. '나무!' 발음하기도 좋고 쓰기도 쉽다. 예전에 한글을 가르치는데, 아이는 '가'와 '나'를 가장 빨리 습득했다. 받침도 없으니 얼마나 쉬운가. 누가 이름을 붙였는지 참 잘도 지었다고 생각했다. 초등 저학년 아이들에게 풍경을 그리라고 하면 희한하게도 나무를 꼭 그린다. 상상 속의 풍경에도 나무가 꼭 자리한다.


  나무는 소박하다. 탐욕적이지 않다. 스스로 양분을 만들어 산다. 물, 햇빛, 공기, 그리고 흙만 있으면 된다. 그에 비해 인간은 다른 무언가의 생명을 먹어야만 산다. 먹이를 찾아 장소를 이동해야 한다. 식물은 그렇지 않다. 씨가 떨어진 장소에서 소박하게 산다. 자생하는 나무든 사람이 심은 나무든 나무는 먹이를 찾아 이동하지 않는다.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산다.


  나무는 긍정적이다. 여름이 되어 무성하게 자라다가 가을이 되면, 다음 해를 기약하고 잎을 떨어뜨리고 겨울을 날 채비를 한다. 슬퍼하지 않는다. 떨어진 잎은 나무에게 거름을 주고, 겨울을 난 나무는 다음 해에 싹을 틔우고, 열심히 물을 빨아들이고 햇빛을 받아 영양분을 만들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이러한 순환과정을 거치면서도 이별을 슬퍼하지 않는다.


  나무는 배려할 줄도 안다. 햇빛을 찾아 줄기를 타러 오는 담쟁이를 위해 곁을 내준다. 벌레에게 잎도 내준다. 나무 꼭대기에 새들이 집을 지어도 된다. 심지어는 새들이 나무를 쪼아 집을 지어도 놔둔다. 열매를 만들어 새에게 사람에게 보시한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책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집에 와서 컴퓨터에 사진을 저장하다가, 뜻깊은 사진을 발견했다. 같이 근무하던 선배 선생님이 학교 뒤편 풍경을 찍어서 보내 준 것이다. 너무나 고와서 간직해 두었다. 그렇게 하길 잘했다. 저 낙엽을 나도 밟아본 적이 있다. 낭만을 아는 주무관님이 낙엽을 쓸지 않고 그대로 두어서 고마웠다. 이 사진을 찍은 선배 선생님은 예전에 5년간이나 유화를 그렸다고 했다. 사진이 '그림 같다.' 어렸을 때, 소 12마리를 돌본 적이 있다고 했다. 오랜 전에 정년 퇴임을 했다. 전원주택을 둘러보러 다닌다고 했는데, 맘에 드는 곳에서 평안히 지내기를!

오, 나무여! (인천목향초등학교의 건물 뒤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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