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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지영 Oct 16. 2023

정신건강의학과에 입원한 사연

- 검사 결과,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 원장님, 그럴 리가 없어요. 분명히 내 몸에 이상이 생긴걸요.

- 내과적으로는 정상입니다. 위장은 제2의 뇌와 같아서 심리적인 요인이 있는 것 같군요. 정신건강의학과에 한 번 가 보세요.


  거의 두 달간 내과의원을 일주일 간격으로 다녔다. 처음엔 가슴이 답답하였다.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의사는 과호흡증후군 증상이라고 하며 안정을 취하라고 하였다. 링거를 맞으면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며칠 후 더부룩한 증세가 있었다. X-레이를 찍었는데 위에 음식물이 가득 찼단다. 강력 소화제 처방을 받았다. 유동식을 먹으란다. 어느 날 출근을 했는데, 갑자기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나도 모르게 다리가 접힌다. 주저앉고 말았다. 구급차를 타고 달려가니, 의사는 탈진이라고 했다. 링거를 맞았다. 이젠 병원 가는 것도 지쳤다.


  내 몸이 왜 이렇게 된 걸까.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가장 많은 것이 스트레스였다. 이상하다. 내 신변에 특별한 일이 없는데.  순간, 두 달 전부터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 뿌지직 삐지직. 삐끄끅. 가슴이 벌름벌름 뛴다. 바로 저 소리 때문이다. 쇠붙이가 맞부딪쳐 나는 소리. 나는 밖으로 나갔다. 소리가 멎었다. 자려고 다시 누웠다. 까무룩 잠이 들려는데 또 그 소리가 난다. 세상 고요한 밤 11시부터 12시 사이 잠드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그 소리에 잠에 들 수가 없다. 딸아이는 이어폰을 꽂고 공부 중이다. 요즘 아이들은 공부할 때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공부한단다. 말하면 신경 쓰일까 봐 그만둔다.


  다음 날, 그 소리가 또 난다. 현관문을 열고 밖을 나가보니 엘리베이터에서 나는 소리 같기도 하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가서 얘기했더니 기사가 와서 점검을 해 보았는데 이상이 없단다.  삐끄 삐끄끅 그 소리가 또 난다. 현관 밖으로 뛰쳐나갔다. 소리를 따라가보니 위층이다. 위층 집 현관에 귀를 바짝 대 보니, 바로 거기였다. 노크를 하니, 파자마 바람의 청년이 나온다. 담배 냄새가 난다.  

- 있잖아요. 저 삐지직 소리가 안 나게 좀 해 줘요.

 나는 가슴을 움켜쥐며 말했다.

- 저 소리 때문에 제가 힘들거든요.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그 청년은 그 소리가 무엇인지도 몰랐을 것 같다. 이상한 여자가 와서 소리 때문에 아프다니. 환청이라도 들리는 환자인가 보다 생각했을 것 같다.


 그 후에도 그 소리는 가끔 들렸고, 나는 자주 가슴 통증을 느꼈다. 수 차례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얘기했더니 어느 날, 직원 한 분이 우리 집에 와서 한 시간 가까이 소파에 앉아서 그 소리가 날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던 중에 그 소리가 들렸다.

 - 저 소리예요. 저 소리.

 - 위층이네요. 가 봅시다.

   관리사무소 직원과 함께 올라가 보았다. 처음으로 그 집 거실에 가 보았다. 우리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거실 발코니 쪽에서 송아지만 한 개가 짖어댔다. 그 개는 낯선 방문객을 보고 철책을 뛰어넘으려고 했다. 목줄과 철책이 부딪쳤고 철책이 타일 바닥과 마찰해서 내는 소리가 요란했다.  

 - 아랫집 아주머니가 저 소리 때문에 힘들어하는군요.

 - 저 소리가 어떻다고 그래요.

 - 여기서는 이렇게 들리지만 아래층에서는 저 소리가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 이 바닥이 우리 집 천장이잖아요. 저 소리가 아래층에 울리면 더 크게 들여요. 잠도 못 자요.

 - 아니, 그렇게 예민해서 어떻게 살아요.

 - 네, 제가 예민한가 보군요. 부탁드릴게요. 저 소리가 안 나게 좀 해 주세요.

 - 에잇, 참 나.


  그렇게 하고 왔는데도 그 소리는 끊이질 않았다. 나는 아파트관리사무소에 정식으로 민원신고서를 제출했다. 한시도 우리 집으로 들어가고 싶지가 않았다. 갈 곳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병원이었다. 나는 정신건강의학과에 접수하고 그 간의 일을 의사에게 얘기했다.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나는 입원을 할 수 없냐고 했다. 의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는 입원을 간절히 요청했다. 다행히 입원을 하게 되었다. 5인실이었는데, 병상 두 개가 비어 있었다.


 한 명은 우울증이 심해서 여러 번 입원을 했던 분인데 나이는 60이 다 되었다. 한 분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입원한 중년부인이었다. 또 한 사람은 나보다 더 젊은 사람이었다. 전화하는 내용을 들으니 자녀가 고교생인 것 같았다. 암 수술을 한 지가 얼마 안 되었고 항암제 주사 치료를 받는 중인데, 그로 인해 입원을 한 거였다. 그분은 화장실 출입도 자유롭지 못했다.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갑자기 고통을 호소해서 나는 간호사실로 달려가기도 했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입원한 분에게는 빈 식판을 치워주는 일로 돕기도 했다.


  어느 날, 심한 우울을 겪는 분이 창가를 내다보고 있었다. 이어폰을 꽂고 있었다.

 - 여기 경치가 참 좋네요.

 - 애기 엄마, 이거 들어봐.

 하면서 이어폰 한쪽을 내 귀에 꽂아 준다. 라이브 가수로 유명한 박강성의 ‘문밖에 있는 그대’라는 곡이었다. 나도 참 좋아하는 노래다.

 - 이 노래네요. 저도 이 노래 너무너무 좋아해요. 그리고 이 가수 노래 다 좋잖아요.

 - 맞어. 나는 말이지. 이 사람 노래가 너무 좋아.(웃음)

  나는 그분과 함께 박강성의 여러 곡을 들었다. 노래를 듣는 그분의 표정이 너무 행복해 보였다. 물론 나도 참 좋았다.


  나는 병원 곳곳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큰 병원이라서 그런지 작은 미술관도 있었다. 예배실도 있었다. 나는 종교를 갖지는 않았으나 성모마리아상을 보니 마음이 평안해지는 기분도 들었다. 아래층으로 가니 친환경채소과일을 파는 곳이 있었다. 수경재배라고 한다. 나는 그것도 사다가 식사시간에 병실 사람들과 나눠 먹었다. 미용실도 있었다. 나는 앞머리도 잘랐다. 재미있었다. 해주는 밥 먹고, 독서하고, 잠도 잘 잤다. 어느 날 저녁에는 병원야외공연장에서 환우와 내원객들을 위한 작은 음악회도 열렸다. 나는 옷을 두껍게 챙겨 입고 스탠드에 앉아서 관람을 했다. 노래가 울려 퍼졌다. 김광석의 ‘일어나’ 노래는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나는 뜨듯한 눈물이 흐르는 것을 닦지 않았다. 그냥 흐르게 놔두었다. 1주일 후 퇴원했다.


  아파트관리사무소 회의실. 층간소음분쟁위원회가 열렸다. 구청에서 온 담당공무원 한 명, 관리소장, 부녀회 2명, 나 그리고 위층 아저씨가 참석한 자리였다. 먼저 관리소장이 말했다.

 - 602호 입주민께서 층간소음문제로 인해 열린 회의입니다. 먼저 민원을 제기하신 분의 말씀을 듣기고 하겠습니다. 원하는 것도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 네, 저는 그 소리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사할 생각도 했습니다.

 - 아니, 그건 아주머니가 예민해서 그런 거죠.

  얄미운 위층 아저씨는 내가 예민해서 그렇다고 말했다.


  관리소장이 그 말에 이렇게 응답했다.

 - ooo 씨,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누군가 나 때문에 힘들다고 하면 사과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관리소장의 말에 위층 아저씨는 고개를 숙였다. 여러 말이 오간 끝에 꼭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해서 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그렇지만 이 아파트를 분양받고, 입주 전까지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몰라요. 모든 마감재를 가장 좋은 것으로 했고요. 또 살아보니 주변 환경이 좋아서 오래 살고 싶어요. 그래서 이사는 안 하기로 했어요. 얼마 전 병원에 입원해서 지내보니 아주 평안했어요. 그간 내가 힘들었던 이유는 소음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내가 원하는 건 한 가지뿐입니다. 철책 소리만 안 나게 해 주시면 됩니다. 개가 짖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그건 자연의 소리이니 어쩔 수 없구요. 철책 소리만 안 나게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그럼, 위층에서는 철책에 헝겊을 감아주시든지 아니면 철책 바닥에 뭔가를 까시던지 소리가 나지 않게 조치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아파트에서 그렇게 큰 개를 키우시는 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날 밤 이후로 그 소리는 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한 달 정도가 지난 후였던가, 엘리베이터에서 위층 아저씨를 만났다.

 - 개를 팔았습니다.

 - 저 때문에요?

 - 꼭 그렇다기보다는 뭐, 사료값 대기도 힘들고, 씻기기도 어렵고… 여러모로 키우기 힘들어서요.

 - 네. 그러셨군요.

  나는 개를 팔게 된 것에 미안한 마음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다만 개가 아파트가 아닌 일반 단독 주택에 갔기를 바랐다. 가서 마음껏 짖으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을 일기장에서 보고, 옮겨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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