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가 되려고 결혼한 건 아닌데

by 강지영

"결혼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열등감이었어."

최근 종영된 드라마 '펜트하우스'에서 청아 재단 이사장이 된 천서진(김소연 분)의 대사가 생각난다

재벌집 딸인 천서진이 시골 출신의 가난했던 의사 남편에게 하는 날 선 한마디다. 마음에 차지 않는 결혼을 이렇게 간결하게 나타낸 말은 참 오랜만에 들어 본다. 신선하다. 재벌집 장녀로 태어나 부와 명예를 거머쥔 천서진은 의사와 결혼한다. 어떻게 하여 결혼한지는 드라마에서 보지는 못했다. 다만 그 의사 남편의 집이 가난하여 며느리 집에서 경제적으로 많은 도움을 준 것 같다. 천서진의 성정으로 보아 보통의 며느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의사라는 타이틀이 좋아서 결혼을 했는지, 정말 좋아서 결혼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천서진은 결혼이 성에 차지 않는다. 그럼에도 개인의 명예에 이혼이라는 것이 흠결이 될까 봐 이혼도 안 한다.

천서진의 아버지는 재벌이다. 나의 아버지는 가난한 농부였다. 천서진의 아버지는 다정하지 않았고 늘 냉정했다. 나의 아버지는 다정했고, 그 옛날에도 딸 아들 차별두지 않고 키우셨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언제나 내 편이었고, 나를 귀히 여기셨다. 늘 친절하시고 다정하고 자상하셨다. 추운 겨울날, 학교에 가게 되면, 아버지는 내 털신을 아궁이 앞에다 놓아서 따뜻하게 해서 신겨 주셨다.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했을 때, 어머니는 생리대와 화장지를 가슴속에 품어서 나에게 주셨다. "냉기나 가셨나 모르겄다." 차가운 것이 행여 아픈 딸의 살갗에 닿을까 염려하신 거다.

학교생활도 충실히 하여 모범 학생으로 인정받고 지냈다. 부모님은 그런 나를 늘 자랑으로 여기셨다. 없는 살림에도 학용품은 늘 좋은 걸로만 사 주셨다. 그 옛날 '왕자 파스'라는 크레파스가 있었는데, 다른 아이들은 10색이나 12색을 쓸 때 나는 36색이나 48색을 썼다. 스케치북, 공책 등을 넉넉히 사주셨다. 저녁이면 아버지는 내 옆에서 연필을 깎아주셨다. 옛날 연필은 품질이 안 좋아서인지, 내가 힘 조절을 잘못해서인지, 연필이 자꾸 부러졌다. 아버지는 연필을 깎아주시면서, 글씨를 참 예쁘게 잘 쓴다, 라고 칭찬하셨다.

친구들과도 잘 지냈다. 방과 후에 친구들과 함께 놀러 나가면 저녁때가 되어서야 집에 들어갔다. 친구네 집에 가서 숙제를 하기고 하고, 친구를 우리 집에 불러와 놀기도 하고, 들로 산으로 다니며 신나게 놀았다. 내 주변엔 늘 친구가 많았다. 동네 언니 오빠들을 쫓아다니기도 했다. 언니 오빠들은 칡뿌리를 캐주기도 하고 밤을 따주기도 했다. 나는 그런 동네 오빠들이 너무 좋았다. 그들도 내가 귀엽다고 했다.

그렇게,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동네에서도 늘 '좋은' 소리만 듣고 자랐는데, 막상 결혼이라는 걸 하고 나니, 나는 아주 '못난' 사람이 되었다. 반찬도 못하고, 일찍 일어나지도 않고, 집안 청소도 잘 안 하고, 시부모에게 살갑게 대하지도 않고, 시집의 어른들에게도 상냥하지도 않고. 맞벌이를 하면서도 시부모 용돈도 충분히 안 내놓고, 등등. 여러 가지로 나는 '별로인' 며느리였다. 반면에 시누이는 음식도 잘하고, 상냥하고, 힘도 세고, 용돈도 많이 드리고, 살림꾼이었다. 어느 날은 시어머니가 '너는 왜 그렇게 애교가 없니?'라고 하셨다. 남편에게 말하니까, '하하, 엄마가 뭘 모르시는구먼, 네가 얼마나 여우인지. 히힛'

드라마에서 천서진은 악녀로 나온다. 자기의 부와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주변 사람을 무시한다. 시집이 가난하다고 남편까지 무시한다. 그런 악녀가 한 말을 명대사라고 여겨도 되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그 대사를 듣는 순간, 나의 결혼 후 느꼈던 나의 불쾌한 감정이 '열등감'이라는 걸 알았다. 물론 천서진이 느낀 열등감과 내가 느낀 열등감의 종류는 다르다. 그렇더라도 자신의 능력보다 잘 보이려고 하다가는 자칫 열등감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사는 것은 불행을 자초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혼 후, 5년 쯤인가 10년쯤인가, 아마도 큰딸 낳았을 무렵이니까, 거의 10년간을 기죽어 살았던 것 같다. 어느 날, 그게 너무 힘들었다. '그래, 나 집안일 못해. 그래도 학교에서 아이들은 잘 가르쳐.' '그래, 나 음식 못해. 그래도 남편과 식구들은 식성이 좋아서 모두 잘 먹어. 그러면 된 거 아닌가?' 등등으로 위안을 하면서 살았다. 배짱이 늘었다. 그러고 나니, 시집에 가서도 당당해졌다. 너무 잘하려고 스트레스 받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 준다는 것이 이렇게 편할 줄이야. 근데,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그게 억울하다. 하마터면 좋은 며느리가 될 뻔했다. 지금은 아주 편안해졌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내가 사랑해 준다. 그래, 지영아, 잘했어. 잘 살았어. 대단해!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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