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진, 아름다운 사람

by 강지영

내 수첩 속 깊은 곳에 남편의 사진이 들어 있다. 지금 살아 있으면 머리가 하얗게 세었을 테고, 주름도 있을 테지만, 사진 속 남편은 늘 그대로 젊다. 이 사진을 보니, 나도 덩달아 젊어진 것 같다. 신혼 때의 추억에 젖게 된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언제 찍은 사진인가 찾아보니, 1997년 인천여자고등학교 졸업 앨범 속에 들어 있다. 사진관에서 졸업 앨범에 들어갈 사진을 본인에게 서너 장씩 준 것이다. 3학년 3반 담임 선생님이라고 써져 있다. 박oo 선생님! 남편은 이 사진을 찍고, 4년 후 세상을 떠났다.

사진 속 옷을 보니, 그 날이 생생히 떠오른다.

“내일 졸업 앨범 사진을 찍는 데 뭘 입고 가지?”

평소 옷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 졸업 앨범 사진이라니까 잘 입고 가고 싶었나 보다. 나는 미리 사 둔 양복을 꺼냈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궁금해할 터인데, 우리 남편은 옷에 정말 관심이 없었다. 내 기억에는 본인이 옷을 사러 간 적이 없다. 그냥 사다 주면 입었다. 옷가게 아저씨가 사이즈를 물으면 나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모르니까. 사이즈를 내가 재 본 적도 없고 기억이 안 나니까, 아예 입던 옷을 가지고 가서 사이즈를 보여주는 편이 좋았다. 색상만 내가 고르고, 사이즈는 “이 옷 사이즈로 해 주세요.”하고 사 가지고 오곤 하였다. 저 사진 속 양복과 넥타이도 그때 그렇게 해서 사온 거다. 저녁에 남편은 옷을 입어 보고 아주 마음에 든다고 좋아하였다. 와이셔츠까지도 입던 옷을 가지고 가서 사다 주곤 하였다. 그러면 그 사람은 무엇에 관심이 있느냐, 오로지 학교 수업과 학생 지도에만 관심이 있었다. 고3 담임을 오래 하던 그였다. 자기 건강을 돌보지도 못하고 학교일에만 열심이었다.

그 당시에는 휴대폰이 아니라, 집전화만 있을 때였다. 저녁에도 학생들에게 전화가 많이 오곤 하였다. 한 번 학생이랑 전화를 하면 20분, 30분, 때로는 1시간가량이나 전화를 하곤 하였다. 매일 만나는 학생인데도 뭐가 그리 할 말이 많은지. 학생들에게 전화하는 내용을 들어보면 얼마나 다정한지, 조금은 질투가 나기도 하였다. 학생들이 남편에게 보내온 손편지를 지금도 나는 간직하고 있다. 읽어보면 어찌나 재미있는지. 어떤 학생은 ‘멀리서 선생님을 보고 인사하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편지로 대신합니다.’ ‘선생님의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가 너무 재미있어요.’ ‘상담을 잘해 주셔서 공부하는 데 힘이 납니다.’ 등등.

그렇게 학생들에게 충실했던 남편이었다. 인천여자고등학교가 동인천역 근처에 있을 때였다. (지금은 인천의 연수구로 이사를 갔다.) 그 옛날에는 학교에서 남자 교사가 숙직을 했었다. 나는 저녁 식사를 준비해 가지고 그를 찾아 학교로 갔다. 그가 과학실에서 실험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멋지게 보였던지. 누구나 자기 일에 몰입할 때가 가장 멋있는가 보다. 나는 그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였다. 주메뉴는 돼지고기 볶음과 상추쌈이었다. 집에서 보는 남편과 밖에서 보는 남편은 뭔가 달라 보였다. 식사를 마치고 남편은 나를 교문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러는 동안, 학생들이 인사를 했다. 나는 쑥스러워서 고개만 숙이며 답례를 하였다. 그렇게 남편이 학교에서 하는 모습을 직접 본 이후로 남편이 더 존경스러웠고, 밤늦게 오래 전화한다고 뭐라 하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 이 사진은 참 ‘아름다운’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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