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나는 입원을 하였다. 4인실 병실에 배정되었다.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어 보호자 없이 지냈다. 충분히 가능했다. 내가 입원한 6일간, 병상 하나는 늘 비어 있었다. 내 옆의 병상에는 두 사람이 하룻밤씩 단기로 머물다 가서 어떤 사람이 어떤 사유로 입원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내 앞에 있는 병상에 계신 어르신은 나보다 먼저 입원한 터였다. 그 어르신은 매우 위중하였다. 어르신은 말이 거의 없으셨고, 말소리가 매우 작아서 간병하는 딸과만 대화를 하였다. 아침저녁으로 여러 진료과의 의사들이 다녀갔다. 검사 결과와 앞으로의 진료 계획에 대한 얘기였는데, 예후가 좋은 것은 아닌 것 같았다. 하루에도 한 두 가지의 검사를 하느라 병실을 비우곤 하였다. 어르신은 걷지를 못하셔서 시트에 누운 채로 간호사들이 침상에서 침상으로 옮겼다. 화장실 출입도 못하셨다. 내가 입원하고 있는 동안에 그 어르신은 한 번도 식사를 하지 못하고 늘 금식이었다. 링거로 영양공급을 하고 있었다. 때로는 수혈도 하였다. 모두 수술을 위한 준비과정 같았다. 의사들은 어르신의 신체 상황과 고령에 대해 매우 걱정을 하였다. 수술 후의 치료과정을 잘 해낼 수 있는지도 심각한 고려 사항이었다.
어르신의 막내딸이 간병을 하고 있는데, 어머니에게 어찌나 상냥하고 다정한지 참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따뜻한 물로 수건을 적셔와 세면을 해 드리고, 향기 좋은 로션을 발라 드렸다. 머리에는 분홍색 구르프를 이용해 머리를 정갈하게 해 드리곤 했다. 구르프를 풀면 자연스러운 파마머리가 되었다. 어느 날 새벽, 나는 화장실을 가느라 잠이 깼다. 그때 그 딸은 조용히 흐느끼고 있었다. 내가 깬 것을 느꼈는지 잠시 울음을 그쳤다. 내가 병상에 눕자, 그는 화장실에 가서 수돗물을 한참 동안 틀어 놓았다. 수돗물 쏟아지는 소리에 자신의 울음소리를 묻어버리는 중인 것 같았다. 어머니 곁을 잠시도 떠날 수 없고, 병원 어디에도 터져 나오는 울음을 울 곳이 없었을 터이다. 그녀가 가여웠다. 그런데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 가까이 가서 토닥여주고 싶지만 코로나 시국이라 그럴 수도 없었다. 나는 그냥 자는 척하다가 아침을 맞이했다. 그날 새벽, 나는 그 어르신의 투병과 딸의 슬픔을 보면서 인간의 죽음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인간의 생명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엄중한 사안이다. 누구도 누구의 생명에 대해 간섭해서는 안 되는 영역이다.
인생에 대해서 아직도 모르는 게 많은 나로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막상 내가 죽음에 맞닥뜨리게 될 때를 상상해보았다. 완치하기도 힘들고, 치료하기도 힘든 병이라면 그대로 받아들여야겠지. 나의 병으로 인해 나의 딸들이 잠 못 이루고 흐느끼는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하나. 내 고통도 슬프지만 딸들에게 주어질 슬픔을 나는 어떻게 견뎌야 할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생을 이어가기만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인생이 꼭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단정하여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더라도 입에 음식을 넣어 씹어먹고, 제 몸속 장기로 소화시키고, 배설하는 기본적인 인간의 삶이 망가진다면 어떻게 살아갈까. 거기에 ‘사고하고 판단’할 수조차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면 그게 제대로 된 인간의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럴 경우엔 영원한 휴식에 들어가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생명이 스러져 가는 어르신을 앞에 두고 이런 생각을 하다니, 나 자신이 참으로 인정머리 없고 모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있던 병실 창에서는 바깥 야산이 아주 잘 보였다. 나는 틈나는 대로 창밖을 바라보곤 했다. 그 야산에는 상록수는 없었다. 나무들은 지난 가을에 잎사귀를 거의 다 떨구고 겨울을 나고 있는 중이었다. 간혹 나뭇가지에 붙어 있는 메마른 잎은 쪼그라진 채로 간당간당하게 붙어 있었다. 좀 더 세찬 바람이 불거나 눈이 오거나 비가 오거나 그것도 아니면 새싹이 돋아나올 무렵이면 그 마른 잎은 땅에 떨어져 거름이 될 것이다. 생명을 다한 그 잎이 죽음을 앞둔 나약한 인간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제때 낙엽이 되지 못하고 혼자 매달려 있는 돌돌 말린 잎이 안쓰러웠다. 내가 퇴원하는 날에도 그 어르신은 수술 날짜도 받지 못했다. 여러 가지 수치가 정상이 아니었다고 했다. 어르신은 곤히 잠들어 있었고, 딸은 곁에서 자리를 비우지 않고 잠든 엄마의 손을 쓰다듬고 있었다. 퇴원한다는 나의 말에 그녀는 어머니 곁에서 잠시 나왔다. 서로의 건강을 빌며 작별 인사를 했다. 퇴원하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