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된 불행

by 강지영

글 제목을 '이야기된 불행'이라고 달았다. 이성복 시인의 책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가 품은 문장, 이야기된 불행은 불행이 아니다. 그러므로 행복이 설 자리가 생긴다. 서점에 가서 책을 펼쳤을 때, 이 문장이 왠지 가슴을 뛰게 하여 바로 구입한 책이다. 이성복 시인님, 죄송합니다. 허락 없이 시인님의 말씀을 인용하였네요. 다시, 나는 오늘 확인했다. 내가 옛 친구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아, 지나온 삶이 더 이상 불행이 아니라는 것을. 지나온 삶을 이야기하고 나면 그 자리에 행복이 들어올 자리가 생긴다는 것을. 미욱한 나에게 확신을 주듯 요약하면, 불행을 견뎌내니 행복이 오는구나. 지영아, 잘 살아냈구나.


태풍이라고 했다. 어떤 이는 가을장마라고도 했다. 아이들이 하교한 교실이 서늘해진다. 교실 냉방기를 끄고 창문을 열었다. 지상의 모든 것들이 축축이 젖어 있는 것으로 보아 한참 전부터 비가 내렸음이 분명했다. 보도블록 틈새로 기어 나온 지렁이가 더 이상 꿈틀대지 않는다. 가지에 붙어 있는 나뭇잎들은 비와 바람에 축 늘어졌다. 푸른 대추알은 나뭇가지를 더욱 아래로 끌어내린다. 바닥에는 아직 떨어지기에는 이른 푸른 잎들이 낙엽처럼 뒹군다. 모두 비바람이 벌여놓은 풍경이다. 떨어지기에는 이른 푸른 잎들이라, 너무 이른 시기에 꺼져가는 생명에는 숙연한 마음이 든다.


무언가 따뜻한 것이 필요했다. 맞다, 나에게는 수국차가 있었지. 집에서 준비해 온 보온병을 열고 차를 마신다. 입안부터 뱃속까지 따스함이 전해진다. 끝맛이 달큼하다. 참 좋다. 휴대폰을 열었다. 오랜만에 대학 동기로부터 카톡이 왔다. 벌써 서너 명의 글들이 오고 갔다. 대학 졸업하고 이삼십 년은 지나서 찾아온 반가운 사람들이다. 나도 합류했다. 어찌나 설렜던지 문자로는 마음을 다 전달할 수 없었다. 전화통화를 한다. 변하지 않는 다정한 목소리. 옛 추억이 새록새록한다.


학창 시절 얘기와 함께 졸업 후, 지나온 얘기로 넘어간다. 교사에서 교감으로 직을 옮겨간 친구. 교감에서 교장으로 자리를 바꾼 친구. 건강이 안 좋아 이미 퇴임을 한 친구. 자신의 꿈을 찾아 교단을 떠난 친구. 부모님 간병을 위해 학교를 그만둔 친구. 시인으로 여럿 시집을 내면서 교육청에서 장학관으로 있는 친구. 여러 사연을 듣는다. 나는 여러 말을 하기가 어려웠다. 아직도 내 얘기를 하자면 가슴이 뜨거워지고 목이 메어 오기 때문이다. 그렇긴 해도 지나온 얘기를 하느라 한 시간을 넘겼다. 친구가 물었다. 남편은 잘 있냐고. 대학 때 사귄 그 사람과 결혼한 것을 친구들이 다 안다.


남편은 오래전에 이 세상을 떠났다. 나는 자주 소식을 주고받는 친구 외에는 그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사람이 떠난 것이 나의 잘못인 것 같았다. 젊어서 홀로 된 나를 사람들이 가여워하는 것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어쩌면 용기가 없다기보다는 남들로부터 동정을 받기 싫은 오만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왜일까. 오늘은 친구가 물어오는데 순순히 대답했다. 남편 죽은 지 이십 년이 되었다고. 그간에 있었던 일을 얘기하고 나니 이렇게 후련할 수가. 괜히 꼭꼭 숨기고 살았나 싶다. 나도 나이가 들었나 보다. 세월은 나를 편안하게 해 준다.


내 삶에 태풍처럼 몰려왔던, 친구들에게 못다 한 이야기를 여기에 한 자 한 자 새겨보고자 한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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