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디킨스, 이인규 옮김, <위대한 유산>(민음사, 2012)
지금,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 1>을 읽고 있다. 누나 부부와 함께 살고 있는 핍(주인공)은 슬픈 이별을 앞두고 있다. 누나는 투박하지만 동생을 '손수' 길러냈다. 아마도 어렸을 적부터 키워온 것 같다. 매형은 대장장이이다. 처남인 핍을 살뜰하게 보살펴준다. 핍을 대장장이로 키워내고 싶어 한다. 주변 사람들은 대장장이를 하찮게 여길는지 몰라도 매형인 조는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핍도 매형과 매형이 하는 일을 좋아한다. 어느 날, 핍은 부유한 미스 해비셤이라는 부인의 집에서 아름다운 아가씨를 보고 한눈에 반한다. 가난한 핍을 멸시하는 데도 그 아가씨에 관심을 갖는다. 이제 핍은 물질적 부에 관심을 갖게 된다. 자기의 가난이 부끄러워진다. 그런 즈음에 자기에게 막대한 유산을 주고 싶다는 제안을 받게 된다. 핍은 큰 기대와 희망을 갖는다. 그 유산을 받기 위해서는 누나, 매형, 그리고 자기가 살던 터전을 떠나야만 한다. 여기서 핍은 심적 갈등을 겪는다. 짧은 고뇌를 거쳐 핍은 이별을 하기로 맘먹는다. 핍의 앞날은 어찌 펼쳐질까. 오늘은 여기까지 읽었다. 이별을 앞둔 핍을 보면서, 나에게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 순간이 생각나서 더 이상 책을 읽을 수가 없다. 인간은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이 더 오래 기억된다. 잊고 지내다가도 어떤 자극이 오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인생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때는, 내가 결혼을 하루 앞둔 저녁이었다. 멀리서 온 친척들로 집안은 북적였다. 집안 어르신들은 그동안 언제 이렇게 커서 결혼까지 하게 되었느냐고 나를 매우 대견스러워하였다. 나는 스물일곱 살, 뭐가 그리 좋다고 그렇게 빨리 결혼을 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래도 그때는 결혼을 하게 된 것이 얼마나 가슴 벅차고 기대에 찼던가. 그때 나는 어르신들의 말씀대로 다 큰 줄 알았다. 부모님과 동생과 떨어져 살게 되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가 더 컸으므로 다가오는 결혼에 큰 설렘을 안고 있었다. 그렇게 결혼을 하루 앞두고 깊어 가는 밤이었다. 그이가 찾아왔다. 내일이면 결혼할 신랑감이다. 그는 나를 데리러 온 것이다. 시가 쪽 친지들이 '맨 얼굴'을 보고 싶단다. 결혼식 날은 신부화장으로 나의 본모습을 볼 수 없다는 이유였다. 나는 불쾌했다. 엄마에게 그 얘기를 했다. 엄마는 매우 섭섭해하셨다. 안타까워하는 엄마를 보니 더욱 화가 났다.
"내일이면 볼 텐데, 뭘! 그냥 오늘 밤은 편히 쉬게 두지..."
"그러게요. 죄송합니다. 장모님!"
그이는 매우 난감해했다. 어머니는 나에게 가보라고 했다. 그 대신 바로 오라고 하시면서. 우리 집과 시가의 거리는 걸어서 십 분 정도다.
나와 그이는 우리 집을 나섰다. 중간쯤 거리에서 우리는 크게 다퉜다. 걸어가면서도 내가 많이 투덜댔기 때문이다. 그이는 이 결혼, 그만두자는 얘기까지 했었다. 순간, 잠시, 아주 잠시 그러고도 싶었다. 나를 배려하지 않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시가 쪽 어른들이 야속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결혼식 전 날부터 시월드를 싫어하게 되었다.
다시, <위대한 유산> 책으로 돌아와서, 자신의 꿈을 찾아 정든 곳을 떠나는 핍의 앞날에 펼쳐질 일들이 순탄하지는 않을 것 같다. 쉽고 간단한 일이라면 문학작품이 아니니까. 수많은 사건이 일어날 터이고, 고뇌가 따를 것이다. 핍이 어떤 사람으로 성장해 가는지 궁금하다. 다만 내가 믿는 것은, 고통은 인간을 성장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