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은 나답게

켄트 하루프, 김재성 옮김, <밤에 우리 영혼은>(뮤진트리, 2016)

by 강지영

"지영아, 아픈 건 좀 어때? 좋아졌어?"

오랜만에 걸려온 친구의 전화다.

"응, 어디가 아프다고 했지? 손가락은 다 나았고. 으음, 몸살 났던 것도 좋아졌고..."

"지난번에 팔 수술했다고 했잖아."

"아, 그거 이젠 통깁스 풀고 보호대 하고 있어. 그래두 많이 좋아졌지, 뭐. 쉴 때는 보호대도 풀고 있으니까."

늘 '아픔'을 달고 사는 나이기에 친구의 안부 전화를 받으면 이와 같은 말들이 오가기도 한다. 작년부터 아팠던 팔이 잘 낫지 않았다. 1년 넘게 이 병원 저 병원에서, 이 치료 저 치료를 받았다. 급기야는 수술까지 받았다. 팔꿈치에 있는 힘줄, 인대가 손상되었다고 했다. 다친 것은 아니다. 사고도 없었다. 팔을 많이 써서 그렇다고 의사가 말했다. 내 식대로 말하면, 삶의 무게라고나 할까.


딸아이들은 다 컸고, 나는 퇴직까지 했으니 집 안에서 할 일은 별로 없다. 집안일은 끝이 없지만 팔까지 불편하고 보니 의도적으로 일을 하지 않는다. 생존을 위한 식사 준비와 청결을 위해 씻는 정도만 한다. 팔이 아프니 인간으로서 하는 일이 제한적이다. 사람의 몸 어디 하나 중요하지 않은 곳이 없다. 무릎이 아팠을 땐 무릎만 나으면 세상 곳곳을 돌아다닐 것 같다. 배가 아플 땐 죽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힘들다. 팔이 아프면 팔만 나으면 세상 일 다 할 것 같다.


이젠 혼자 지내는 데 특화된 것 같다. 오랫동안 몸이 아프다 보니, 혼자 지내는 데도 불편하거나 외롭지 않다. 간혹 친구들이 전화를 걸어와 외롭지 않냐고 묻는다. 괜찮다고 말한다. 오히려 혼자 있는 시간이 소중하고 즐겁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앞으로 이런 시간은 더 늘어날 것이다. 낮 동안에 나는 독서, 장보기, 요리하기, 산책하기 등으로 채워진다. 저녁엔 식구들과 이야기하고 식사하고 쉬면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밤늦게까지 이 책 저 책 뒤적이기도 하고, 공책에 끄적이기도 한다. 그런데 걱정이 되기는 한다. 더 나이 들어서 시력이 안 좋아져서 책 읽기도 힘들고, 자판으로 글쓰기도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나이 들면 잠도 줄어든다는데 긴 밤을 어떻게 보낼까?


어느 날 밤에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 인터넷을 켰다. 흥미로운 책을 발견하였다. 도서관에 자료검색을 해 보니, 소장하고 있단다. 어서 내일이 왔으면 하고 잠을 청했다. 다음날 이른 아침을 먹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손에 넣었다. 주인공이 여성 노인과 남성 노인인데, 동화 한 편을 읽은 느낌이었다. 다 읽고 나니 세상이 한결 아름다워진다. 내가 읽은 책은 켄트 하루프의 <밤에 우리 영혼은>이다. 켄트 하루프는 1943년 미국에서 태어난 작가인데, 내게는 그의 책이 처음이다. 70대 여성인 애디는 홀로 산다. 사고로 죽은 딸을 가슴에 묻었다. 남편과는 사별했고, 결혼한 아들은 따로 산다. 70대 남성인 루이스도 혼자다. 부인과는 사별했다. 두 사람은 한 마을에서 이웃해서 산다. 노년을 각각 살고 있는 두 사람 얘기인데, 전혀 슬프지도 절망적이지도 않다. 혼자 산다고 다 외롭고 쓸쓸하고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


그러던 어느 날 애디 무어는 루이스 워터스를 만나러 갔다. 오월, 아직 완전히 어두워지기 바로 전의 저녁이었다.(p. 7)


그렇다. 소설이 시작되기 전부터 애디는 루이스를 눈여겨봐 두었다. 소설의 시작과 함께 애디는 용기를 낸다. 마침내 애디는 루이스의 집으로 간다. 가서 정중히 말한다. 밤에 자기의 집에서 같이 이야기 나누고 같이 자자고. 성적인 호기심이나 단순한 욕망이 아님을 알고 루이스는 기꺼이 동의한다. 그렇게 하여 둘 만의 밤의 여정이 시작된다. 두 사람은 그간 살면서 가슴 아팠던 일, 즐거웠던 일 등을 말한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심정을 털어놓기도 한다. 남녀, 한밤중, 침대... 육체를 떠나 정신적인 교감을 나눌 수 있음에 감탄한다. 그런데 이 둘의 만남을 방해하는 사람이 등장하다. 바로 애디의 아들이다. 그는 두 사람의 밤에 대하여 편견과 불쾌함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애디는 받아들이고 겪어낸다. 루이스도 마찬가지. 재밌는 것은, 루이스보다도 애디가 둘의 관계를 리드해나간다는 점이다. 그런 애디가 발랄하다. 애디는 이웃들의 수군거림도 개의치 않는다. 눈치 볼 것 같았으면 시작도 안 했다는 태세다. 자기 인생을 자기 행복을 주도적으로 선택하고 실행한다는 점에서, 나는 애디에게 매력을 느꼈다.


특이하게도 이 소설에는 큰 따옴표가 없다. 대사와 지문이 구별되어 있지 않아 읽기에 다소 불편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읽다 보니 작가의 호흡에 맞춰졌다. 따옴표와 같은 문장부호도 작가가 글을 쓰는 데에 군더더기로 여겨질 수도 있을 거라는 추측을 해 본다. 복잡다단한 우리네 삶을 좀 더 단순하게 하고픈 작가의 열망인지, 아니면 살 수 있는 날보다 살아온 날이 길어짐에서 오는 시간상의 애틋함인지. 이 책에서 큰따옴표 없이 써진 예를 들어 보자. 우선, 상황을 소개한다. 애디가 길을 가다가 미끄러져 골반을 다쳤다. 병원에 입원했는데 루이스가 문병을 왔다. 애디의 아들이 루이스의 방문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자신의 엄마에게 5분간의 면회만 허용하고 나간다. 이제 애디와 루이스 둘만의 시간이다.


앉지 그래요. 그녀가 말했다.

루이스가 의자 하나를 끌어와 그녀 곁에 앉았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잡고 거기 입을 맞췄다.

그러지 말아요. 그녀가 말하며 손을 거두었다. 지금 이 한순간뿐이에요. 그게 우리에게 허락된 전부예요. 그녀가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내가 여기 있다고 누구한테 들었어요?

제과점에서 그 작자한테서요. 그자가 내게 도움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괜찮아요?

그럴거예요.

내가 도와주도록 허락할래요?(p. 188)


늙어서도 누구에게 기대지 않는다. 누군가가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된다. 내 감정 내 감각 내 생각에 충실하되 노욕에 찌들지 않는다. 노년이 되어 몸은 쇠락할지언정 품위 있는 언행과 용기를 잃지 않는다.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은 더해간다. 생명을 사랑하고 자연을 추앙하는 정신이 성숙한다. 이런 노년을 나는 꿈 꾼다. 자기의 인생을 스스로 가꾸어 나가는 사람의 영혼은 언제나 빛난다. 책의 제목 '밤에 우리 영혼은'에 말을 이어 본다. '밤에 우리 영혼은 빛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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