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보니까, 오른손잡이는 바지를 입을 때도 오른쪽 발을 먼저 집어넣는다. 오른쪽을 먼저 넣을까 왼쪽을 먼저 넣을까 생각 없이 늘 하던 일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걸 의식하게 된 사연은 이렇다. 샤워를 하고 파자마를 갈아입는 중이었다. 오른쪽 다리를 넣고 왼쪽 다리를 넣으려고 보니 일이 진행되지 않았다. 뭔가 어색했다. 왼쪽 발을 넣으려다가 살짝 비틀거렸다. 보니까 파자마의 가랑이 부분에 난 커다란 구멍 때문이었다. 간략히 말하면 오른쪽 발이 파자마 가랑이에 난 구멍 속으로 들어간 거다.
나의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 수련회 때 산 파자마니까 대략 10년은 되었다. 면 100%, 러닝셔츠보다는 약간 두께감이 있고, 운동복보다는 얇아서 사계절 내내 입어왔다. 그러니 이젠 닳고 닳아 자연스레 작은 구멍이 났다. 지난주부터 구멍이 났다고 딸아이가 나에게 말했다. 나는, 꿰매 입어,라고 말하고는 지나쳤다. 그 작은 구멍이 시간이 흘러 흘러 이젠 내 발이 들어갈 만큼 커진 것이다. 곧바로 실과 바늘을 꺼내서 박음질로 꿰맸다. 바느질을 마치고 보니 감쪽같았다. 작은 성취감이 차올랐다.
딸아이에게 위의 '파자마 펑크 사건'을 얘기하고 한참이나 웃었다. "아, 맞다. 바지가 뜯어졌는데..."라고 하더니 지난달에 산 바지를 가지고 나온다. 바지 한쪽이 뜯어져서 늘어져 있다. 딸아이는 수선집에 맡기자고 한다. "야, 이걸 무슨 수선집에 맡기냐? 집에서 꿰매면 되지." 실과 바늘을 가지고 와서 꿰매 보라고 하니, 못하겠다고 한다. 알고 보니 딸아이는 바느질을 할 줄 몰랐다. 학교 실과 시간에 배운 줄 알았더니 안 배웠다고 한다. 그럴 리가 없는데... 하긴 학생은 모르면 안 배웠다고 잡아떼니까. 나는 딸아이를 데리고 바느질을 가르쳐 주고 싶었는데, 나중에 나중에 하겠다고 한다. 언제?
이 작은 일마저도 스스로 할 줄 모르다니, 어느덧 우리 사회는 거대한 '대리 사회'가 되었다. 수선집, 배달음식, 청소업체, 하수구 뚫어 주는 일, 도배, 등등의 많은 일들을 남에게 맡기며 산다. 예전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는 그 모든 일들을 자력으로 했다.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 <오베라는 남자>를 보면, 오베는 가정 내 모든 일을 스스로 해결한다. 때로는 이웃의 일들에서도 '해결사'가 된다. 묵묵히, 나서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오베. 말보다는 실천이 앞서는 삶.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사는 삶. 이제는 이런 것들이 쉽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얼마 전에 읽은 <오베라는 남자>를 다시 꺼내 보았다. 이 부분에 밑줄이 쳐져 있다.
"사람들은 모두 품위 있는 삶을 원해요. 품위란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무언가를 뜻하는 거고요." 소냐는 그렇게 말했다. 오베와 루네 같은 남자들에게 품위란, 다 큰 사람은 스스로 자기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뜻했다. 따라서 품위라는 건 어른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게 되는 권리라고 할 수 있었다. 스스로 통제한다는 자부심. 올바르게 산다는 자부심. 어떤 길을 택하고 버려야 하는지 아는 것. 나사를 어떻게 돌리고 돌리지 말아야 하는지를 안다는 자부심. 오베와 루네 같은 남자들은 인간이 말로 떠드는 게 아니라 행동하는 존재였던 세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pp. 370~371)
그러니까 내가 파자마 구멍과 바지단 수선을 마치고 느낀 그 성취감이 어른으로서의 품위를 지켰다는 느낌인가. 이 느낌,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