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다운 행동은 뭘까

by 강지영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대학 시절 동기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함께 가는 중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왜 그런 말을 하게 되었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다. 아마도 우리들의 직업병에 관한 것으로 생각한다. 오랜 시간 학생을 가르치면서 생긴 병. 특히 "학생 가르치는 것처럼 남편도 가르치려 들지 마."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 하여 같이 웃었다. 나는 작년 여름에 있었던 일에 대하여 말했다.


요즘 사람들이 옆집에 누가 사는지, 위아래 층에 누가 사는지 모르고 사는 아파트 살이들이 많은 듯하다. 나도 여느 사람처럼 앞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지냈다. 작년 여름, 이사온지 두어 달이 지났을 때였다. 주말 아침에 운동을 하러 현관문을 나섰다. 그런데 승강기 문 옆으로 10리터나 되는 음식물쓰레기봉투가 있는 게 아닌가. 꽉꽉 눌러서 야무지게 묶어 놓은 틈새로 라면 가닥인가 국수 가닥인가가 삐죽 나와 있었다. 나는 혹시 앞집에서 바로 나오지 않나 싶어 잠시 기다렸다. 나올 기미가 없어서 그냥 나 혼자 승강기를 타고 내려갔다. 한 시간 가량 산책도 하고, 단지 내에 있는 운동기구로 스트레칭을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내가 사는 층으로 올라왔다. 승강기에서 내리는 순간, 바깥 운동 후의 상쾌함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한 시간 전에 있었던 그 음식물 쓰레기봉투가 그대로 있는 게 아닌가.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앞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저기 쓰레기봉투 말이에요. 치웠으면 좋겠네요."

"아, 그거요? 방금 치우려고 내놓은 거예요."

이 말을 할 때까지 그 여자는 웃음기를 머금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무슨 소리예요. 내가 운동하러 나갈 때도 저기에 있었는데요. 내가 본 것만 해도 한 시간이나 되었구먼."

그 여자는 웃음기를 금세 거두고는 빠른 말로 이렇게 말했다.

"치울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내 목소리도 격앙되었다.

"지금 치워요. 여름이라 냄새도 나니까."

"아니, 이웃끼리 이래도 되는 거예요?"

"이웃끼리 지킬 건 지키고 삽시다."

하고 나는 들어왔다. 가슴이 콩닥댔다. 그 후, 이삼일 동안 앞집 여자를 마주칠까 봐 마음이 불편하였다. 나가기 전에 현관문에 붙어 있는 콩알만 한 구멍으로 밖을 살펴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승강기를 같이 타게 되었다.

"지난번에 내가 미안했어요. 그 일 있고 나서 후회했어요. 내가 좀 참을 걸, 내가 좀 더 기다릴 걸, 하고요."

"별말씀을요. 제가 잘못한 거죠. 죄송했어요."

이렇게 하여 화해하고, 지금은 만나면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동행하는 친구에게 이 일을 말했더니, 그 친구는 이렇게 답했다.

"네가 가르치려고 들었네. 지영아, 네 얘기를 들어보니까 나라면 이렇게 했을 것 같아. 초인종을 누르고 앞집 사람이 나오면, '바쁘시면 저 쓰레기봉투를 내가 내려다 놓아도 될까요?'라고 말하고 네가 내려다 놓았으면 어땠을까. 그러면 그 앞집 사람은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앞으로도 쓰레기봉투를 거기다 내다 놓지는 않았을 거야. 미안해서."

"그러게 말이야. 아무리 그 사람이 잘못했더라도 괜히 짚고 넘어갔다가 마음만 불편했어."

친구 얘기를 들어보니, 내가 참 어른답지 못한 행동을 한 게 아닌가 생각했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면서 그때 일을 돌이켜보니, 지금 그런 일이 있다 해도 나는 그렇게 밖에 행동하지 못했을 것 같다. 나는 그 친구만 한 마음 씀씀이를 갖는 어른이 되기에는 더 시간이 필요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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