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친구가 회원으로 있는 <한반도문학> 시상식/출판기념회에 다녀왔다. 행사장에 들어서니 색소폰 연주가 사람들을 맞이한다. 참석하는 사람들은 연령대가 높아 보였다. 한반도문학회 회장을 비롯한 여러 수상자도 나이가 지긋한 듯하다. 사회자의 말을 들어 보니 70대 80대가 되는 분들도 있다. 그 연세에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는 것을 보고 난 가슴이 뜨끔했다. 내 나이에 무슨, 하며 게으른 글쓰기에 핑계를 대곤 하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1부에서 시상식이 끝나고, 2부 축하공연에서는 성악과 기타 연주가 있었다. 또 피아노 연주도 들었다. 문학 행사답게 시 낭송이 이어졌다. 시 낭송 대회 수상자라고 했다. 재능 있는 사람들이 참 많다.
2부 축하 공연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고안나 님이 시를 낭송했다. 안타깝게도 시의 제목도 내용도 알지 못했다. 당초 계획에는 스크린에 시를 띄워 보여주면서 낭송을 하려고 했는데, 기계적인 사정이 여의치 않아 그러지 못했다는 말을 회장으로부터 행사 후에 들었다. 낭송자는 범상치 않게 낭송을 잘하는데, 시 내용이 전달되지 않아 아쉬웠다. 대신, 시 낭송 무대를 보면서, 예전에 내가 들었던 시 낭송에 대한 추억에 젖었다.
나는 중학교 때 웅변을 했다. 여러 차례 대회에 참가하여 작거나 큰 상을 타기도 하였다. 1977년 그때는 웅변대회의 주제가 주로 '반공' 또는 '경제성장' 등이었다. 그날도 웅변 지도를 해 주시는 선생님과 함께 강당에서 웅변 연습을 하였다.
'오천 년의 기나긴 역사를 가진 이 민족이 건설의 망치 소리에 잠을 깨어, 백억 불 수출을 달성, 고도의 경제 성장으로...'로 시작하는 웅변 원고가 지금도 생각난다. 어렸을 적 외웠던 것 중에 잘 잊히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 강당에서 연습을 하다가 운동장으로 나갔다. 학생들이 모두 하교한 텅 빈 운동장에서 담력을 키우기 위한 훈련이었다.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운동장 앞 야산에서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어둠이 짙어지고 있었다.
"지영아, 그 대목에서는 말이야. 이런 감정을 실어서 소리 내 봐."
선생님께서는 변영로 시인의 '논개'를 낭송하셨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선생님의 굵직한 목소리가 빈 운동장을 가득 메우는 순간이었다. 슬프면서도 뭔가 속에 꼭꼭 눌러 놓았던 것이 표출되는 비장함이 느껴졌다. 나는 선생님을 따라 내 웅변에서 더욱 감정을 살리려고 애썼다. 연습이 끝나고 귀가를 하기 위해 교문으로 나왔다. 선생님은 자신의 자전거 뒤에 나를 태워주셨다.
"지영아, 선생님 허리를 꽉 잡아. 그렇지 않으면 떨어진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도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쑥스러워서. 선생님의 옆구리 옷자락을 살짝 잡고 있다가 자전거가 덜컹거려서 하는 수 없이 선생님의 허리를 꼭 잡았다. 내 가슴은 콩닥거렸다.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자전거와 내 가슴은 마구 뛰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궁금한 게, '논개'를 낭송하시던 선생님 마음속을 가득 채운 것이 무엇이었을까. 선생님 가슴도 뛰었을까. 참 별 게 다 궁금하다. 무릇, 시 낭송이란 이 정도의 설렘은 있어야 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