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역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하였다. 오랜만에 가 본 영등포역 앞은 예전과 매우 달랐다. 역 앞 인도에는 걸어가는 사람들만이 있었다. 그간 도로 정비를 대대적으로 한 모양이다. 포장마차도 없고 양말이나 스타킹 또는 간단한 음료를 팔던 간이매점 등도 눈에 띄지 않았다. 번듯한 가게도 없이 손수레나 작은 부스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누군가는 생업을 잃고 눈물 흘렸을 거고, 누군가는 강제이주를 당해 분노했을 테고. 나의 쾌적함, 나의 편안함이 누군가의 희생이나 노고에 의한 것이 아니겠는가라는 생각을 했다. 예전의 복잡한 역전에서 내가 느꼈던 불편함을 떠올리면서도 지금의 쾌적함과 편리함이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았다. 역전이 아닌 다른 곳으로 그들을 밀어내는 데 나 또한 일조한 듯한 착각이 들었다.
영등포역사로 들어가니 친구가 먼저 와 있다. 나는 십 분이나 늦었다. 우리 둘은 백화점 내에 있는 식당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고 밖으로 나와 카페로 들어갔다. 친구는 커피를, 나는 따뜻한 레몬차를 주문했다. 평일 한낮이라서 손님이 많지는 않았다. 노트북을 켜 놓고 자판을 두드리는 사람이 두 테이블 있다. 마주 보고 앉은 남녀가 웃음기 가득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친구와 나는 따뜻한 햇볕이 가득한 창가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카페에 와서 사람을 만난 지가 오랜만이다.
친구와 나는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었고, 이 날 만난 것은 40여 년 만이었다. 무심히 세월만 보내다가 이제야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친구와 두 시간 동안 얘기를 나눈 것을 여기서 다 소개할 필요는 없겠고... 친구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남편과 손주 2명과 함께. 돌도 안된 젖먹이 손주. 4살 된 손주는 어린이집을 다닌다. 멀리 떨어져 사는 아들 내외는 직장 때문에 내 친구에게 자녀를 맡긴 사연이다. 최근 김장을 하느라고 고생한 얘기를 들었다. 친구가 오늘 아침에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왔다고 하는데, 발병의 이유는 김장이다. 배추 70포기를 혼자 다 했다고 한다. 따로 사는 자녀들은 각자 일이 있어 참석하지 않았다. 남편은 갑자기 허리가 안 좋다고 하며 김장일을 전혀 하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마을 노인회관에 드나들며 하루를 보내면서도 마늘 한쪽 까주지 않았다. 친구는 젖먹이 손주가 자는 틈틈이 배추를 절이고, 양념거리를 준비해서 사흘에 걸쳐 김장을 마쳤다. 그러고 나서 감기 몸살을 앓았다. 목과 허리에 통증이 와 한의원에 가서 침도 맞았다.
나는 친구의 말을 들으면서 화가 났다. 여성의 노동의 끝은 어디인가. 결혼하여 아이를 낳아 기르며 살림을 하고, 직장에서 일한다. 직장에서 일하다가 나이가 들어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면 시부모를 모신다. 출가한 자녀가 아이를 낳으면 할머니가 되어 어린 손주를 돌본다. 가정 상황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주로 이런 패턴으로 보통의 여성은 삶을 살아간다. 자녀가 맞벌이를 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손주를 돌봐주는 경우를 여럿 보았다. 어떤 친구는 지방에서 서울로, 일주일 단위 출퇴근을 하며 딸의 육아를 돕는다. 일요일 저녁에 서울로 와서 일주일간 외손주를 돌보다가 금요일 저녁에 지방으로 내려간다. 할머니가 되어서 손주를 돌보는 친구들은 손주 얘기만 나와도 얼굴엔 행복이 가득하다. 하지만 육체적 고단함은 어쩔 수가 없다. 누군가의 편리함이나 안락함은 반드시 누군가의 희생과 노고가 뒤따른다. 모두가 편안히 살 수 있는 방법은 뭘까. 가만히 친구의 손을 만져 보았다. 일을 많이 해서 손마디가 굵다. 거칠거칠하기도 하다. 마음이 아프다. 친구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장갑을 파는 가게를 지났다. 친구에게 장갑을 선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