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 지난번 말씀하셨던 아드님 결혼문제요. 제 친구에게 좋은 사람 소개해 달라고 하고 싶은데요. 아드님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려 주시겠어요?"
친구 A가 운전을 하고 있고, 친구 B가 '사모님'에게 전화를 하고 있다. 친구 B는 친구 A에게 신붓감을 부탁하려는 중이다. 나는 옆에서 듣기만 하는 제삼자이고. 나 또한 딸이 있는 관계로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해서 들었다. 나는 연애결혼을 한 사람으로서 중매나 소개 등으로 결혼하는 것에는 낯설지만 호기심은 있다.
"아이고, 고마워라. 우리 아들 진짜 잘 났지. 우리 아들이랑 결혼하면 진짜 땡잡은 거지, 뭐. 나이는 서른다섯 살. 일단 스카이 대학 나왔어요. 건축학과 졸업했는데, 지금은 기술사 자격시험 공부 중이고요. 기술사 자격은 박사급입니다. 기술사 합격하면 경제적인 것은 문제없고요. 결혼하면 내가 집은 사주지 못해도 수도권에 아파트 전세는 얻어줄 수 있어요. 얘가 얼마나 착한지 부모님 말을 거역한 적이 없어요. 무엇을 결정할 때도 부모님 의견에 따라서 하고..."
아들에 대해 소개하는 사모님은 다소 흥분된 목소리였다. 아마도 며느리감을 애타게 찾는 중인가 보다.
"그럼, 사모님, 어떤 신붓감을 원하시나요?"
"착하면 돼요. 무조건 착하면 됩니다."
나는 옆자리에서 그 전화 내용을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였다.
'괜찮네. 그럼 내 딸 소개해 달라고 할까. 아니야. 좀 더 두고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근데 말이지, 그렇게 아들이 잘 났는데, 과연 착하기만 한 며느리감에 성이 찰까? 모든 걸 부모님의 의견대로 한 아들이 결혼해서도 자립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착하기만 한 며느리를 시어머니 마음대로 조종하려는 건 아닐까? 게다가 시가에서 집까지 마련해 준다면 며느리에게 요구하는 건 얼마나 많을까. 세상엔 공짜가 없다는데, 그 부잣집 능력 있는 아들에게 시집가는 아가씨는 무엇을 갖추어야 할까. 착하기만 한 아가씨라면 좋다는 건 말뿐이지.'
머릿속에서 수차례 사모님의 말을 궁굴려 보아도 여전히 미심쩍다. 집에 와서 딸아이에게 그 청년에 대하여 말했다. 딸아이는 내 얘기를 듣자마자 대뜸 이렇게 말한다.
"엄마, 키는?"
"그건 몰라. 그게 중요해?"
"다른 건 다 노력해도 되지만 키는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
내가 살아보니, 키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더니 그게 아니란다. 키는 결혼식장에서나 중요하지, 사는 데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재차 강조해도, 그래도 그게 아니란다. 철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람들이 결혼 후 배우자 선택에 대한 불만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연애할 때는 섬세하고 자상해서 이 사람이다 싶어 결혼했더니 우유부단한 사람이더란다. 연애할 때는 남자다운 박력이 넘치는 매력에 반해서 결혼했더니 폭력적인 남편이 되더란다. 연애할 때는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라 매혹당해서 결혼했더니 경제관념이 부족하여 생활력이 없더란다. 도대체 어떤 사람을 보고 결혼을 해야 하는지 당최 어려운 문제다. 내 딸, 어떤 신랑감을 골라 올지 궁금하다. 설마 키만 멀대 같이 큰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