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지영 Jan 07. 2023

이거, 사랑 맞죠?

(1979년의 기록)

  (사진출처 : 인터넷)

  1979년 3월, 나는 단발머리 여중생이었다. 빳빳하게 풀 먹이고 다림질한 교복 칼라를 달고 새 학년 첫날 학교에 갔다. 새 학년 첫날이라 다른 날보다 일찍 학교에 갔다. 친구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그 당시 내가 다닌 중학교는, 대부분의 학생이 자전거 통학을 하였다. 운동장 가장자리가 거의 다 자전거 거치대였다. 학급별로 구분도 되어 있었다. 나도 우리 반 구역에 자전거를 세우고 교실로 막 들어가려고 하는데, 어느 잘 생긴 남자분이 나 쪽으로 걸어왔다. 슈트가 참 멋있었다. 키도 훤칠하고 머리는 곱슬이었던 것 같다. 안경을 쓰고. 시골에서는 보기 드문 멋을 풍기고 있었다. 그다음 그분이 나에게 물었다.

  "학생, 여기 숙직실이 어디지?"

  멋진 외모에 저음의 그 목소리까지. 나는 혼이 정상일 수가 없었다.

  "아, 예, 그게, 숙직실은 여기인데요."

  우리 교실 들어가는 길목에 숙직실이 있었다. 아침부터 숙직실이 어디냐고 묻는 그분에게 나는 누구냐고 묻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용기는 없었다. 숙직실이라는 데가 학생이 출입하는 곳이 아니기에 팻말 정도만 알고 있는 상황이었고, 숙직실 옆에 인쇄실이 있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돌아서려는 순간, 그분이 큰 소리로 나를 불렀다.

  "학생, 이리 와서 나 좀 도와줘."

  인쇄실 앞에 갔다. 뭔가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작은 틈으로 손을 넣어서 물건을 빼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성인 남자의 손은 들어가지 않는 크기였다. 그분은 나에게 손을 쑥 넣어서 물건을 빼내 달라고 했다. 부탁하는 대로 했다. 서서 손을 쭉 뻗어 집어넣자 내 몸이 기우뚱했다. 그러자 그분이 나를 잡아 주었다. 처음 알았다. 남자도 화장품을  바른다는 걸. 나는 그야말로 '뿅'가고 말았다. 그렇게 그 시간은 지나갔다. 궁금하신가, 그분이 누구인지.


  그분은 바로 우리 학교에 새로 오신 선생님이었다. 안타깝게도 그 선생님은 우리 반을 가르치지 않으셨다. 다른 학년 영어 담당이셨다. 멀리서 선생님이 오시면 나는 예쁘게 걸으려고 했고, 그럴 때마다 발걸음도 꼬이는 것 같고, 팔도 어떻게 움직여야 멋있을지 생각하며 걷느라 더 어색해짐을 느꼈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나는 키가 작아 늘 교실 앞에 앉았다. 키 작은 단벌머리 여중생, 지금 나이 들어 생각해보니 얼마나 귀여운지.


  그로부터 얼마 후, 나는 B선생님이 나에게도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바로 교실환경미화를 하는 날이었다. 그 당시에는 교실환경미화라고 해서, 교실 게시판을 꾸미고 벽에 그림이나 액자를 거는 일들을 학생들이 직접 했다. 중학생이니까 할 수 있었다. 우리 담임 선생님은 오시지 않았다. 우리들끼리 할 수 있었다. 일요일 어느 날, 환경 꾸미기를 하려고 친구들과 함께 학교에 갔다. 그런데, B선생님이 우리 교실로 들어오셨다.

  "얘들아, 뭐 도와줄 거 없어?"

  "선생님, 여기 액자를 걸고 싶은데, 못을 박아 주세요."

  나는 용기를 내어 선생님께 부탁을 드렸다. 그렇게 하여 우리가 원하는 곳에 액자를 걸 수 있었다. 선생님은 일요일까지 학교에 와서 환경 꾸미기를 한다고 칭찬을 하셨다. 나는 너무 기분이 좋았다.


  그것 말고도 선생님이 우리 교실에서 뭔가 도와주셨는데,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 후로도 B선생님은 우리 교실에 자주 오셨다. 아침에도 오시고, 점심에도 오시고, 방과 후에도 자주 오셨다. 교실에 들어오지 않고 복도에서 교실을 들여다볼 때가 더 많았다. 나는 먼발치에서 선생님을 보기만 해도 좋았다. 영어에 대하여 물어보고 싶었어도 용기를 내지는 못했다. 그래서 영어 공부를 참 열심히 하였다.


  어느 날, 우리들이 자율학습을 하고 있는데, B선생님이 들어오셨다. 그 선생님이 자율학습 감독이셨나 보다. 우리 교실 옆이 3학년 5반이었고, 그 옆이 교무실이었는데,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 교무실에서 나오신 건지도 모른다. 자율학습을 조용히 하지 못한다고,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지 않았다고 하시면서 반장 부반장을 나오라고 하였다. 나는 반장과 함께 교실 앞으로 나갔다. 선생님은 손바닥을 내놓으라고 했다. 그런데 희한하게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아마도 선생님이 때리는 모습만 연출한 것인지, 내가 정말로 아프지 않은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잘 생각해 보면 둘 다일 수도 있다.


   그 당시는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셨는데, 그 선생님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셨다. 그 모습 또한 멋졌다.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한 번은 그 선생님의 오토바이를 탄 적이 있었다. 오토바이 특성상, 허리를 꽉 잡아야 했다. 나는 선생님의 허리를 꽉 잡고 오토바이를 탔다. 세상 태어나서 처음으로 타는 오토바이였다. 오토바이는 자전거에 비해 너무나 빨랐다. 짧은 시간이 흘러가 버리고 말았다.


  중학교 졸업식 날, B선생님은 검은색 가죽 재킷을 입고 오셨다. B선생님은 우리 학년 수업을 하지 않으셔서 운동장에서 졸업식이 끝나고 바로 교무실로 들어가셨다. 나는 용기를 내서 교무실에 들어가 선생님께 사진을 찍자고 했다. 운동장으로 나와 사진을 찍었다. 중학교 졸업식이 끝남과 동시에 B선생님을 한 번도 뵙지 못했다.


  고등학교 입학하고 내 머릿속에서 B선생님이 거의 잊힐 무렵, B선생님에 대한 소식이 들려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선생님이 결혼을 하셨다는 거다.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이셨던 선생님과 B선생님이 결혼을 하셨다는 거였다. 나는 너무 놀랐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우리 교실을 자주 방문하셨던 B선생님이 바로 우리 담임 선생님과 열애 중이었던 것이다. 어린 나는 그걸 모르고 선생님도 나를 좋아하는 거라고, 완전히 착각에 빠져 환상 속에 살았던 것이다.


  지금은 할아버지가 되셨을 B선생님, 그렇더라도 내 머릿속에는 검정 가죽 재킷에 헬맷을 쓰고 오토바이를 타고 출퇴근을 하셨던 멋진 선생님으로만 남아 있다. 나에게 추억을 남겨 주신 선생님, 새 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작가의 이전글 프로필 사진 바꾼 사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