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체크포인트

by 로그아웃아일랜드

보통 게임을 하다 보면 어느 지점에서 자동 저장이 되는 구간이 있는데, 그 구간을 '체크포인트'라고 부른다. 즉 플레이어가 패배를 해도 게임 첫 시작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저장된 지점에서 시작할 수 있는 일종의 '백업 시점'인 것이다. 만약 게임이 아닌 현실 세계에서 우리가 경험을 쌓는 과정에 '체크포인트'가 있다면 어떨까? 아니, 사실 이미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우리는 우리 경험 속 체크포인트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해서 또는 믿지 못해서 그 체크포인트를 초기화 시킬 때가 많다.




우리는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것에 대해 굉장한 두려움을 느낀다. 그래서 어떤 지점에 놓여 전전긍긍하기도 하고, 애초에 시작조차 안 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러나 어떤 경험이든 포기 직전까지의 경험이 자동 저장된다는 점을 안다면 우리는 좀 더 가뿐한 마음으로 도전할 수 있다. 공부를 하든, 운동을 하든, 사회생활을 하든, 취미생활을 하든 일단 시작했다면 아주 조금이라도 노련해지고, 성장하기 때문이다.





그 배움이 깊든 얕든 경험은 무언가를 꼭 남긴다. 숙련됨이나 발전된 정도만이 아니라 그 경험에 대한 나만의 기억, 의견, 감정 등이 함께 남아 경험의 '체크포인트'를 만든다. 쉴 새 없이 달려 한 번에 목표를 달성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만약 중간에 그만두더라도 지난 도전을 우습게 여겨선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체크포인트에 있다. 재 도전 시 우리는 큰 어드밴티지를 얻게 된다. 이미 조금이라도 경험했던 것들에 대해서는 지름길이 보일 것이고, 이미 겪었던 것에 대한 감정적 대비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경험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방식을 수정하거나, 다른 환경에서 새롭게 시도해 볼 수 있는 것 역시 체크포인트의 큰 묘미이다. 같은 도전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나은 재도전이 될 테니 우리는 처음부터 다시 하는 두려움에 떨지 않아도 된다.




얼마 전 오랫동안 쉬던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몇 개월을 쉬었던 터라 쉽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운동을 처음 시작하던 때를 떠올렸다. 얼마나 힘들었던가. 그 시절의 바들바들 떨던 초라한 근육으로 완전히 돌아갔을 것이라 생각하니 눈앞이 까마득해졌다. 그러나 일단 다시 시작하고 나니 처음 운동을 시작했을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근육의 힘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 안 되어 운동을 쉬기 직전의 페이스로 회복되었다. 문득 잊고 있었던 '체크포인트 이론'을 떠올렸다.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경험에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던 몇 년이 있었다. 그때 내 멘탈을 붙잡아줬던 것이 스스로 합리화하듯 주창한 '체크포인트 이론'이었다. 내가 하는 모든 경험에 체크포인트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나는 좀 더 도전과 실패를 즐길 수 있었다.




한 번에 해내는 것보다 여러 번 시도해서 해냈을 때 더 드라마틱한 감동을 받기도 한다. 어차피 한 번에 해내는 것보다 여러 번 도전하여 해내는 것이 더욱 흔하고 일반적인 일이라면, 시작 전부터 여러 구간 체크포인트를 둘 것을 감안하고 도전해 보는 것도 좋다. 너무 스트레스나 압박을 받을 때는 잠시 쉬었다가,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때 다시 환기된 정신으로 새롭게 도전해 보는 거다. 어차피 우리에겐 체크포인트에 저장된 우리의 지난 경험들이 있으니까, 너무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무(無)알림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