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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無)알림 여행

by 로그아웃아일랜드

작년 여름 머리를 식히기 위해 혼자 여행을 떠났었다. 삼사일 정도 목적지 없이 운전만 내리 하고 싶었다. 동생에게 차를 빌려 바퀴가 닿는 대로 달렸다. 밟다 보면 충청도쯤까지는 가지 않을까 했던 예상과는 달리 나는 차를 빌렸던 동생 집 부근도 벗어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휴대폰 내비게이션을 켰는데 화면 상단에 뜨는 알림들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그 무렵 겪고 있던 고충 중 하나가 '알림'과 관련된 문제였다. 평소 알림을 한 번 확인하면 알림이 발생한 근원지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카톡,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블랙홀 같아서 한 번 빠져들면 시공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는 앱들이었다. 알림을 꺼본 적도 많았지만, 혹시나 모를 중요한 연락 또는 콘텐츠를 놓칠 수 있을 거란 조바심에 알림을 꺼놓고도 들어가 보게 되는 부작용이 있었다.




알림을 끄고 여행 내내 문제의 앱들을 열어보지 않겠다 다짐했다. 그리고 여행에 꼭 필요한 지도 앱, 음악 스트리밍 앱 정도만 열기로 했다. 처해진 상황이 주는 힘이 있는 건지 유혹을 떨치지 못하던 일상에서와는 달리, 여행 동안은 참을만했던 것 같다. 특히 운전이 팔 할이었던 여행이라 내내 핸들에 손이 묶여있어서 휴대폰을 잡지 않는 것이 조금씩 익숙해졌다.




물론 불편했다. 맛집이나 관광지라도 한 번 검색해 볼까 하다 아차 싶어 포기했다. 날씨가 언제쯤 갤지 보려다가도 멈칫했다. 알림만 끄는 것이 아니라 아예 폰을 멀리해보기로 한 탓에 자꾸 뚝딱이게 됐다. 하지만 해내야 했다. 생각보다 나는 굉장히 쉽게 휴대폰에 빨려 드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잠깐 경치를 감상하고 휴대폰으로 촬영을 했는데, 촬영본을 확인하다 문득 이전 사진들을 쭉 올려보며 사진 감상을 한참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고독했다. 사진이 기가 막히게 찍혀서 누군가에게 보내주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멋진 장소를 발견해서 다음에 여기 오자고 공유하고 싶은데 역시 할 수 없었다. 그 무렵 내가 왜 그리 단호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심지어 전화도 받지 않고 휴대폰을 쓰지 않는 동안에는 비행기 모드로 돌려놓기까지 했다. 직접 비행기 모드로 전환해놓고서는 아무도 나에게 연락을 하지 않는다는 왜곡된 섭섭함을 느꼈다. 연락을 주고받을 수가 없으니 마치 세상과 단절된 것 같았다. 문득 괜한 짓인가 싶기도 했지만 이상하리만치 자유롭기도 했다.




그렇게 첫 날을 참아내고 나니 이튿날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경치를 즐길 때마다 이 기쁨을 누군가에게 공유하고, 경험과 관련된 정보를 SNS로 찾아보고 싶기도 했지만, 어차피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알려줘야지'와 '검색해 봐야지'하고 생각하는 비율이 적어지니 그것들을 좀 더 온전히 즐기는 비율이 늘었다. 생각해 보니 어느 새부터 나는 무언가를 경험하면 '즉시' 즐기지 않고 우선 휴대폰을 들곤 했다. 사진을 찍든, 공유를 하든, 정보를 찾아보든 내가 그것을 즐기는 것은 뒷전이 되었다. 다시금 '휴대폰보다 먼저 만끽할 줄 아는 법'을 찾고 싶어졌다.




그러고 보니 무(無) 알림은 세상과의 단절이 아니었다. 알림이 없던, 아니 휴대폰도 없던 시절에도 나는 분명히 잘 살았다. 즐길 거리를 고작 한 손에 들어오는 휴대폰에서 찾지 않았다. 친구들과의 연락은 집 전화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시절 나는 몇 가지 필수적인 알림(친구의 전화, 가족들의 부름 정도)을 제외하곤 내 시간을 방해받지 않았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내가 만든 세상과 소통했고 그 세상에선 한 번도 지금처럼 불안하거나 초조하지 않았다. 내가 만든 세상이 곧 내가 속한 세상이었고 그것은 외부의 누군가가 알려주는 세상이 아니었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어떤 채팅방에선 카톡 안 한 지 반나절만에 나보고 살아있는 건지 안부를 물었고, 또 어떤 채팅방에선 내가 카톡을 안 보고 있는지도 모르는 듯했다. 오랜만에 각종 SNS를 둘러봤는데 내가 특별히 놓쳤다고 느낀 것은 없었다. 왜냐하면 놓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고작 삼사일이지만 휴대폰이라는 문물을 접한 후 이렇게까지 멀리한 적이 없었는데, 결국 별일은 없었다. 대신 내 여행에선 별일이 많았다. 더 오래 생각했고 더 깊이 감상했다. 그리고 더 많은 것을 기억했다.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고 실수하지 않기 위해, 또는 아주 일상적이고 평범하게 살기위해 우리는 알림이 필요하다. 지난 여행을 통해 나는 '앞으로 알림 없이 살아야지!'하고 다짐하지는 않았다. 다만 '절충'하기 위해 한 번쯤 극단적임이 필요했었던 것이라 본다. 완전히 무 알림 상태로 지내고 나니, 알림에 지나치게 반응하던 그 정도가 확실히 줄었다. 적당한 수준이라면 애초에 우리의 삶에 불필요한 것은 별로 없다. 그게 과해질 때까지 깨닫지 못하고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적절히 알림과 타협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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