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랫동안 책과 담을 쌓아왔다. 어린 시절, 책과 관련된 어른들의 식상한 조언들에 반항심이 가득했었다. '책을 읽어야 사람된다.' '책을 읽어야 말을 조리있게 잘할 수 있다.' '책을 읽어야 집중력이 좋아진다' 등 모든 잔소리는 독서부족으로 귀결되었다. 그런 말에 하나도 귀기울여주고 싶지 않았던 철부지 꼬마는 거의 서른이 되어서야 그 시절을 후회했다. 나는 '읽는 자'와 '안 읽는 자'의 차이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사람은 경험해야만 아는 구나 깨달았다. 압도적으로 책을 많이 읽던 친구의 감수성,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 지식 수준, 문장력 등을 그 즈음에야 처음으로 의식하게 된 것이다.
책은 되파는 거라고 배웠다. 전공서나 참고서처럼 깨끗하게 읽고 용건이 다하면 파는 거라 생각했다. 책을 읽을 때마다 책에 밑줄을 긋는 친구의 행위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먼저 물었다. "그렇게 줄 쳐놓으면 어떻게 팔려고!?" 그랬더니 "왜 팔아?"라고 답했다. 집으로 돌아와 몇 칸 되지도 않는 작은 책장을 들여다 보았다. 안 읽은 책이 반이고 읽은 책도 내 의지로 읽은 책이 아니며, 읽었지만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훑어보니 새 책이라고 내다팔아도 의심하지 않을 정도로 깨끗했다. 그럴만도 했다. 깨끗하게 봐야 팔릴테니까 세게 펼쳐본 적도, 접어본 적도 없었다. 꽂혀만있던 몇 년간 책등만 보아와서 제목이랑 작가 이름은 참 익숙한데 책 자체는 이토록 초면이라니. 민망했다.
책을 읽겠다 다짐한 후에도 나는 오랫동안 책을 깨끗하게 읽었다. 책에 대한 시선이 달라졌던터라 이전보다는 더 잘 읽히고 기억에도 남았으나 아직 과제가 남아있었다. 책에 줄 긋기가 독서의 필수요소는 아니지만 나는 언젠가 도전하고 싶었다. 책에 줄을 그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를 짓던, 다 읽은 후엔 줄 그은 부분을 재차 읽어보고 필사를 하던 그 친구를 보며 나는 '책과의 교감'이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이라 생각했다. 닮고 싶은 모습이었다.
어느 날 문득 꺼낸 책을 쓱 훑는데, 이 책으로 줄 긋기를 도전해야겠다 결심했다. 보통 책을 벽에 기대거나 누워서 읽던 나는 모처럼 책상 앞에 앉았다. 그 전엔 좋은 문장이 있으면 휴대폰으로 촬영만 했었는데 이번엔 처음부터 휴대폰을 멀찍이 두고 잘 깎아놓은 연필을 꺼냈다. 몇 장 읽기도 전에 줄긋고 싶은 문장이 나타났다. 용기를 내어 손가락에 힘을 준 후 쭈욱 그었다. 그 순간 나는 그 문장과 밑줄 사이에 풍덩 빠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동시에 속으로 문장을 읊는 내 음성이 머리를 울렸다. 기분 좋은 울림이었다. 첫 줄은 망설였지만 그 다음부턴 지체하지 않았다. 어떤 문장은 굉장히 길었는데도 쉬지 않고 무아지경으로 줄을 그었다.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가슴을 퍽 치는 듯한 문장 후에는 실소가 터지기도 했다. 그 첫 시도로 나는 책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갓 시작한 독서라는 취미의 새로운 국면이었다.
요즘은 책과 연필을 세트로 갖고 다닌다. 정자세로 앉아 진득한 밑줄을 경건하게 칠 때도 있고,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당장 흩날려버릴 것 같은 밑줄을 칠 때도 있다. 밑줄을 긋기 시작한 후 나는 마침내 책을 함부로 다뤄선 안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났다. 가끔 한 손으로 꾸깃하게 잡을 때도 있고, 구구절절 내 생각을 낙서해 놓을 때도 있다. 그렇게 손때가 묻은 책을 다시 한 번 후루룩 펼쳐보면 내가 남긴 책과의 교감이 향처럼 피어오르는 듯하다. 그리고 깨닫는다. 이제야 나는 책을 읽고 있구나, 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