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내내 하천과 가까이 살았다. 참 복이었다. 동네는 언제나 복잡했지만 하천은 그렇지 않았다. 하천에는 나름 암묵적인 룰이 있어 사람들은 질서정연하게 걷고 달렸다. 서로 불편하게 걸리적거리는 일이 없었다. 하천에서 자주 산책하고 자전거를 타며 해방감을 온몸으로 느꼈다. 하지만 돌아온 고향에는 가까운 하천도 없고 오래 걸을만한 공원도 없었다. 그나마 가까운 초등학교에서 몇 번 트랙을 돌았지만 원하는 운동량을 채우려면 몇 십 바퀴는 멀미나게 돌아야 했다. 다른 실내운동을 찾아볼까 잠시 고민도 했지만 나에게 걷는 일이란 그저 운동으로 대체될만한 것이 아니었다. 산책은 몸뿐만 아니라 머리와 마음까지 가볍게 만들어주곤 했다. 운동 이상으로 나를 단련하는 무기와 같았다.
결국 불편한 도시 산책을 선택했다. 차의 엔진, 클락션 소리, 상가에서 흘러나오는 강한 비트의 음악, 여러 무리들의 데시벨 높은 대화소리. 이어폰을 뚫는 도시의 여러 소리들은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하천 주변 가로등의 차분한 조도와는 달리 도시의 네온사인, 간판의 불빛들은 번쩍번쩍하며 사람을 놀라게 했다. 보행자를 전혀 배려하지 않은 주차된 차들과 인도 위 입간판 등도 산책의 큰 방해요소였다. 일자로 걸어나갈 수 없는 산책은 언제나 불안함 그 자체였다.
그러나 사람은 언제나 적응하고 만다. 자주 걷다 보니 그 지형이 파악이 되고, 돌발 상황도 예측할 수 있게 되었으며, 여러 소리나 불빛에도 적응하게 되었다. 시끌벅적하고 정신없고 왠지 모를 차가움이 느껴지는 '도시'라지만 결국엔 역시 '동네'인 것을. 산책이 잦아질수록 그 주변을 자주 관찰하게 되면서 곧 나의 이웃임을 느끼게 되기도 했다. 닫는 일이 없던 음식점이 닫혀있어 괜스레 궁금하기도 하고, 같은 시간에 식물에 물을 주는 카페 주인을 보며 따뜻함을 느끼고, 문 앞을 지날 때마다 혼미할 정도로 맛있는 냄새가 나는 빵집에 다음에 꼭 오리라 다짐했다.
하천 산책이 조용하게 발 닿는 대로 걷기만 하며 골몰히 사색하는 시간이라면, 도시 산책은 나의 눈길을 딴 데로 돌려주는 시간이었다. 고민거리에 깊이 집중하는 것이 해답을 줄 때도 있지만, 시선이 분산되어 그 고민 자체를 잠시 잊어보는 것도 해답일 때가 있었다. 게다가 거리를 걷다 우연히 얻게 되는 영감이나 아이디어는 도시 산책을 즐기는 자만의 특권이었다.
하루는 굉장히 리드미컬하게 산책을 하는 나를 발견했다. 차 때문에 구불구불해진 산책 경로를 미끄러지듯 자연스럽게 걸어내고, 흘러나오는 상가의 음악소리에 박자를 맞춰 걷기도 하고, 여러 간판들을 읽어내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일에서 묘한 활기를 느꼈다. 그 경험을 누군가에게 전했더니 자동차 매연과 먼지,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산책을 하고 싶냐며 혀를 끌끌 찼다. 그 말에 생각했다. 구태여 알리지 말아야겠다. 나만 알고 싶은 카페나 음식점이 있는 것처럼 나만 아는 일상의 무기로 남겨야지.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