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인으로서 에어프라이어만큼 믿음직한 동료는 없음을 확신한다. '이게 될까?' 하면 '이것도 되네!'의 정석이 에어프라이어다. 군고구마, 감자튀김, 만두, 치킨너겟, 치즈스틱 등을 쉽게 조리할 수 있어 우리 집 간식의 다양화를 이루어 냈고 통 삼겹, 베이킹 등 기존엔 오븐 없이 하기 어려웠던 조리까지 가능해져 친구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기 용이해졌다.
에어프라이어는 대부분 3-40분 이상 조리시간이 필요한 경우가 많은데 처음엔 그 시간을 기다리기가 참 지루했다. 배를 곯으며 고통스럽게 기다리는 거라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다 익었기를 바라면서 십분에 한 번씩 에어프라이어를 열어봤고, 결국 자꾸 열고 닫다 보니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어지곤 했다.
여느 때와 같이 에어프라이어로 고구마를 굽고 있었다. 좁은 자취방 가득 군고구마의 달달한 향이 퍼져있어 황홀했고 그래서 더 애가 탔다. 핸드폰만 보고 있으면 한두 시간도 후딱 지나가던데 40분이 왜 그리 긴 지. 시간이 더 흘러 마침내 경쾌한 '띵!'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가 참으로 반가웠다. 그전까진 시간이 약 2배 정도 느리게 흐르는 특별한 세상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는데, 띵 소리와 함께 현실로 즐겁게 복귀한 느낌이 들었다. 문득 이 인내의 시간을 다른 걸로 채워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이후 나는 에어프라이어 조리시간을 나의 '몰입 타이머'로 이용해 보기로 했다. 에어프라이어 조리시간이 보통 길게 느껴질 때가 많지만 일상의 내 할 일 하나 해내기엔 적당하거나 조금 빠듯한 시간이어서, 음식이 완성되는 동안 할 일을 하다 보면 기다리기 힘들었던 조리시간은 짧게 느껴지고 할 일을 마무리하기엔 시간을 넉넉히 쓴 듯한 느낌을 받는다. '띵!'하는 소리에 음식은 '벌써' 다 됐고, 할 일은 '벌써' 이만큼이나 해낸 것이다. 게다가 좋은 향기는 덤이다. 음식이 완성되는 향은 몰입을 방해하기 보다 오히려 간간이 설렘을 전하고, 즐겁게 나를 보채기도 했다.
어느 날은 책을 읽어봤고, 또 다른 날은 계획을 정리했다. 어떤 날엔 방 청소를 하기도 했다. 그저 핸드폰만 보며 기다리는 것보단 확실히 나았다. 일단 음식을 기다리는 체감 시간이 확연히 짧아졌고 할 일에 대한 집중도는 높아졌다. 할 일을 해내기에 30분은 짧다고 느껴져서 보통 그 정도 여유시간엔 아무것도 안 하던 나였다. 하다가 마는 게 싫어서였는데 결과적으론 하다가 마는 게 하긴 한 거여서 훨씬 나았다.
꼭 에어프라이어가 아니어도 음식을 기다리는 시간이라면 괜찮다. 오븐 또는 밥솥 등의 조리시간을 기다리는 것도 괜찮고 배달음식을 기다리는 시간 역시 몰입하기 좋다. 그렇다고 아주 긴 시간도 아니어서 뭔가를 해보기에 부담도 덜하다. 중요한 건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시간을 '때우지' 않고 시간을 '채워'보는 것이다. 그 기다림 속에서 부지런히 집중하며 에너지를 소모한 덕에 아마 음식 맛은 더욱 근사할 테고, 겸사겸사 우리는 몇 퍼센트라도 할 일을 해낸 사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