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이 늦을 것 같아 황급히 밖으로 나왔는데 몇 발자국 못 가고 다시 유턴한다. 또는 정류장에 막 도착했는데 주머니를 뒤지다 일순간 얼어붙는다. 지갑을 놓고 왔을까? 약속에 챙겨가야 하는 중요한 물건을 두고 온 걸까? 아니다. 고작 이어폰을 두고 나왔을 뿐이다.
허구한 날 잊고 나오는 이어폰인데 왜 현관 앞에서 찾아보진 않았는지 자책한다. 가지러 갈까 생각하던 중 멀리서 내가 타야 할 버스가 눈에 들어온다. 늦지 않기 위해 일단 버스에 오른다. 스마트폰을 열어 이 앱 저 앱 열어보는데 여는 것마다 소리가 나온다. 볼륨을 줄여 스피커를 귀에 바짝 대보지만 잘 들리지 않는다. 버스 안내방송이 이렇게 컸던가. 사람도 별로 없는데 왜 이리 시끌벅적한 걸까. 도무지 집중이 되질 않는다. 이어폰이 만들어주던 세상과의 단절이 무너져 버렸다.
뭔가를 감상하지 않을 때조차 귀에 끼워진 채 상시 대기 중이니, 이쯤 되면 이어폰은 그 자체 기능을 배제하고도 외출 시 필수 아이템이다. 그러니 이어폰을 안 챙겨 나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 당혹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혼자 쇼핑을 할 때, 걸어 다닐 때, 공부를 할 때 우리는 언제나 이어폰과 함께한다. 이어폰이 없는 외출을 잘 상상할 수 없다. 문득 이어폰에 대한 일종의 '분리불안'이 아닌가 생각했다.
이어폰이 필수가 아니던 시기를 떠올려본다. 문자, 통화 기능이 휴대폰의 전부였던 그 시절엔 이어폰이 없어도 그다지 지루하지 않았다. 바깥소리를 가만히 듣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세상과 크고 작은 소통을 할 수 있었다. 길거리 행인들의 대화, 흘러나오는 라디오 소리,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 시장 앞 상인들의 활기찬 목소리를 감상하기에도 귀가 벅찼다. 혼자 생각에 빠지기에도 좋았다. 나는 이어폰이든 휴대폰이든 뭐든 가지고 있지 않던 시절에 가장 안정적으로 생각에 잠겼다. 약속 장소로 가는 길목,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나는 즐겁고 새로운 상상을 했다.
외출에 필수인 것은 없다. 다만 외출엔 대체로 목적이 있기에 우리는 굳이 짐을 싼다.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싸고 다니던 짐들에 의해 우리는 필요하지 않은 습관이나 집착을 만들어간다. 불필요한 짐들에 압도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주기적으로 특정 짐이 외출에 정말 필요한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고민할 시간이 별로 없어서 우리는 계속 짐을 늘려가고, 주머니에 항상 있는 이어폰을 사용하기 위해 일부러 스마트폰을 열어본다. 길이가 짧고 반복이 많은 영상, 몰입도가 강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겠는 영상들에 압도되어 내릴 정류장을 지나치고, 뒤에 달려오는 차를 인지하지 못하며, 자극적인 영상들을 대화의 소재로 사용한다.
이어폰과 함께하는 삶이 얼마나 편리하고 즐거운지는 안다. 다만 꼭 감상해야 할 것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이어폰을 놓고 왔다는 사실만으로 좌절하고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는 거다. 없다면 없는 대로 바깥 소음이나 풍경을 즐겨보는 거다. 이어폰을 끼우고 있었을 땐 집중하지 못했던 생각들에 잠겨보는 거다. 겸사겸사 귀도 편히 쉬게 해주는 거다.
이어폰을 몇 번 실수로 집에 놓고 왔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이어폰을 놓고 왔다고 해서 나는 버스를 타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지하철을 못 타는 것도 아니고, 친구를 기다리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주위에 시선을 자연스레 빼앗기고, 귀로 흘러 들어오는 소리를 편안하게 받아들이며 묘한 해방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다음부터는 가끔 이어폰을 집에 두고 와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심지어 볼 영상이 있었어도, 듣고 싶은 음악이 있었어도 집에 다시 돌아가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