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십여 년 자취생활을 로그아웃하며

by 로그아웃아일랜드

정신을 차려보니 고향을 떠나 자취 생활을 한지 어느새 십 년이 훌쩍 넘어있었다. 처음 상경하던 날을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지만, 그날과 오늘의 간극은 억겁과 같다. 그러다 이내 찰나 같기도 하다. 억겁과 찰나를 오가는 지난날들은 지옥이기도 천국이기도 했다.


십여 년을 고집하던 타향살이를 접는 계기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집 주인이 집세를 올리겠다고 했다. 그래서 집을 빼겠다고 했다. 친구들에게 집세가 올라 이곳 살이를 접는다 했다. 친구들은 갑자기 그렇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겠냐, 일상이 많이 달라질 텐데 괜찮겠냐 물었다. 그래서 괜찮을 것 같다고 답했다.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헤어져 집에 갈 때마다 생각했다. '이곳을 떠날 좋은 구실이 나에게 생겼구나.' 집세가 오른 것이 결정적인 이유이긴 했지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이곳을 떠날 이유는 나도 모르게 이미 여러 가지였다.





자취를 지속할 이유가 고향으로 돌아갈 이유보다 여전히 많아 보였던 것은 사실이다. 내 고향에는 일자리가 더욱 없고, 부모님과 살 테니 그들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뒤통수 따갑게 받아내야 할 것이며, 혼자만의 공간이 부족하니 이전보다 훨씬 많이 방해받을 것이 뻔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서울 하늘 아래 나 하나 거둘 회사 없겠냐는 안일함과 오만에 빠질 것이고, 눈앞에 보이지 않는 부모님의 걱정을 계속 무시하며 방관할 것이고, 나의 괴로움과 고통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못해 악조건에서 더욱 변질될 것이라고 어느 날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어느 날 깨달은 것이 아니라 십여 년간 축적되온 것이 결국 드러난 것뿐이었다.


오랫동안 '현실'이라고 느꼈던 도시에서 일단은 벗어나 보는 것이 나의 오랜 관성들을 깨는 일이라 믿었다. 고단한 출퇴근길, 길어지는 야근,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 회의 시간, 무기력하게 잠만 자는 주말, 점점 약해지는 체력, 나약해지는 마음과 계획만 할 뿐 실행하지 않는 몸뚱어리, 그런 나의 모습을 누구보다 한심해 하는 '나 자신'이 살던 이 도시에서는 앞에 나열한 모든 것이 매일, 매월, 매해 반복되었다.





그 쳇바퀴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겨우 고향으로 도피하는 것이냐 묻는 이가 있다면 나는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 도피하는 것처럼 보이는 뒷모습이라도, 다시 뒤돌아보는 게 아니라면 그것 역시 어딘가로 향하는 것이라고. 나는 이번 짐을 쌀 때 다시 돌아올 가능성을 두지 않고 자취용 짐들을 팔거나 버려버렸다. 남은 내 짐들도 갈 곳만 있을 뿐 떠날 곳을 돌아보지 않길 바랐다. 그렇게 자취생활에서 완전히 '로그아웃'하고 고향으로 '로그인'했다.


'비단옷을 입고 고향에 돌아온다' 즉, 출세를 해서 고향에 돌아오는 것을 '금의환향'이라고 한다. 남들이 인정할 만한 '출세'를 하진 못했지만 혼자 십여 년을 살아오며 얻은 다양한 경험과 교훈들, 나름의 줏대, 여러 자부심들을 '벌어온 것'이라 친다면 그것 역시 일종의 금의환향이 아닐까. 게다가 금의환향이고 뭐고, 막상 돌아와보니 지난 십여 년의 세월을 보냈던 그 도시가 오히려 고향같이 벌써 그립다. 그러고 보면 나에게 고향은 있다가도 없다. 그저 새로운 생각과 경험을 하기 위한 또 다른 환경에 안착했을 뿐이다.





더 이상 고향이라는 단어가 주는 감상에 젖지 않고, 내가 오랫동안 하고 싶다고 생각해온 일들을 읊어본다. 그 자취방에선 잘 되지 않던 마음가짐들을 고향집 내 방 안에서 차근차근 적어내려본다.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불안함에 잠길 때쯤 갑자기 엄마가 불쑥 문을 열고, 아빠가 뭘 묻는다고 날 부르면 잠시 불안함을 잊고 또 이곳에서의 책임을 다한다. 얻던 걸 잃고 잃었던 걸 얻으며 이 공간에 익숙해져간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이어폰 분리불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