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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에 짓눌리지 않는 법

by 로그아웃아일랜드


콘텐츠들이 나에게 와르르 쏟아져 짓눌릴 것만 같은 시대다. 쏟아지는 양에 비해 우리의 시간은 너무나 한정적이어서 꼭 봐야 할 것만 선택하면 좋겠지만, 메모해 놓은 '보고싶은 영화'가 수두룩하고, 구독만 해놓은 채널의 영상들이 잔뜩 업데이트 되어있고, 피드에 뜨는 영상들은 지난주에 꼭 보려했던 예능의 클립영상이거나, 좋아하는 드라마의 비하인드 컷 영상들이다. 왠지 다 봐야 할 것만 같다. 결국 이것, 저것보다 보면 어느새 추천 영상의 노예가 되어 몇 시간이 훌쩍 지나있거나, 시리즈물을 동이 틀 때까지 보고 있다. 수많은 동영상 플랫폼이 분명 우리에게 더 나은 양질의 기능과 감상 환경을 선사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왜 가끔 더 초췌해질까?


솔직히 말하자면, 이리저리 둘러보다 시선을 빼앗길 때가 아닌 듯하다. 주체적으로, 능동적으로 내가 보고 싶은 것을 골라 보기만 해도 평생 다 볼 수 있을지 미지수다. 시간이 별로 없다. 이렇게 알고리즘이 추천해 주는 콘텐츠들만 보다가 이 생이 끝날지도 모른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만, 그렇다고 전자기기를 모두 버리고 갑작스레 속세를 떠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필요는 없다. 적어도 초췌한 콘텐츠 감상 생활은 벗어나보기 위해 몇 가지 작은 변화를 만들어보자.









1. 지금까지 내가 보고 싶어 했던 것들을 당장 튼다.


우리는 봐야 할 영상들을 '나중에 볼 콘텐츠' 목록에 저장만 하고, 보고 싶은 영화들에 '보고 싶어요'만 눌러놓는다. '나중에 꼭 봐야지!' 하고 다짐만 하고 오늘도 피드를 공격적으로 내리며 그냥 '떠 있는' 영상들을 본다. 또는, 발목 잡히듯 봐야 할 것이 생겨서 보고 싶다고 미룬 것들은 점차 뒤로 밀리며 허공으로 사라진다. 그러지말고 우선 지금 당장 내가 보려던 것들을 틀어보자. 보고 싶었던 콘텐츠들을 하나씩 열어본다. 사람마다 달라서 미뤄놓은 것들을 금방 다 보는 사람도, 아니면 미뤄놓은 것만 다 봐도 평생에 걸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찌됐건 전자, 후자 모두 일련의 성취감 또는 후련함을 조금은 느낄지도 모른다.




2. 오늘 보기로 한 것만 본다.


오늘 보기로 마음먹은 콘텐츠만 시청한다. 만약 스스로 약속한 거라면 그것이 한두 시간이 소요되건, 새벽이 훌쩍 지나 동이 트건 상관없다. 대신 보기로 한 것 외에 다른 것을 둘러보지 말자. 그다음 화가 보고 싶거나, 관련된 추천 영상을 보고 싶거나 하며 마음이 많이 심란할 것이다. 그러나 단호하게 기기를 내려놓거나 모니터를 끄고 내가 할 다른 일을 찾는다. 또는 잘 시간일 테니 그냥 자자.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 때문에 수면 부족을 겪는다)




3. 플랫폼 내 알고리즘에 추천받지 말고, 다른 미디어를 통해 콘텐츠를 추천받아보자.


모든 플랫폼은 자신의 플랫폼에 유저들이 장기간 머물기를 원한다. 그래서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똑똑하게 관련 콘텐츠를 추천한다. 실제로 플랫폼의 콘텐츠 추천 기능은 아주 유용하다. 사용자가 적절하게 사용한다면 말이다.


이어지는 다음 영상을 보거나, 메인화면에 대놓고 보라고 광고하는 영상들을 보는 것 대신에, 그 플랫폼을 벗어나 콘텐츠를 추천받는 것을 추천한다. 신문 기사에서 언급된 콘텐츠를 보거나, 인터뷰에서 연예인이 추천한 영화를 보는 것도 좋다. 차라리 TV 프로그램에서 이슈 된 영상을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친구들과 대화를 통해 추천받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렇게 추천받은 콘텐츠만 검색하고 시청하는 것에 그쳐보자. 추천된 한 두개 정도의 영상을 더 보는 것까지 말리고 싶진 않다. 하지만 그 이상을 보게 된다면 또다시 초췌의 쳇바퀴에 들어서는 거다. 또 동이 트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문제가 모두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모두에게 문제가 되지도 않을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자신이 해야 할 것을 사실 알고 있는 사람들에 한할 테다. 우리 몇몇에게는 항상 더 높은 이상이 있다. 전자기기에, 미디어의 홍수에 최대한 매몰되지 않고, 필요한 정보나 흥미를 적절히 얻어 가면서 균형을 유지해나가는 삶,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삶, 가끔은 출퇴근 시간에 책을 읽고, 집에 돌아와 방을 정리하고, 밥을 정성스레 지어 먹고, 샤워를 한 후 스르르 잠이 드는 알찬 삶 같은 것 말이다. 자야 하는 데 눈이 충혈되도록 휴대폰을 들고 영상들에 압도되는 삶은 아마 아닐 것이다.


가끔 누구나 이렇게 죄책감을 느끼지만 그럴 필요까진 없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는 문제고, 이 훌륭한 콘텐츠 플랫폼들도 우리도 잘못은 없다. 다만 '살아있는 인간'인 우리가 어떻게 조절하냐가 관건이다. 쉽지는 않더라도 우리는 어플에서 스스로 이탈할 수도 있고, 핸드폰을 꺼버릴 수도 있고, 저 멀리 둬버릴 수도 있지만, 플랫폼은 우리가 핸드폰 한 번 홀드 해버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것일 뿐이다. 이 점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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