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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적 여행

by 로그아웃아일랜드

세상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것만큼 값진 일도 없다. 바깥에서 많은 경험들을 쌓아나갈수록 우리는 세상을 더 사랑하게 되기도 한다. 이런 재밌는 일이 펼쳐지고 있었다니, 이런 흥미로운 것들이 있다니, 흥분을 감출 수 없다. 그래서 더 많은 경험을 위해 우리는 가끔 가까운 곳으로 또는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곤 한다.




바깥으로 향하는 여행이 세상을 더 사랑할 수 있는 일이라면, 바깥이 아닌 내부로, 즉 '나'를 목적지로 깊게 파고드는 일은 나를 더 사랑하게 되는 일이 된다. (우리는 향하는 곳으로 애정을 쏟기 마련이다.) 흥미진진한 바깥세상에서 많은 경험들에 애정을 쏟으며 추억을 만들어 나가는 것처럼, 나를 향하고, 내 생각과 감정을 다시금 새로운 시선으로 확인하고, 내게 새겨진 지난날들을 하나하나 읊어보며 나에게 애정을 주기 시작한다. '생각해 보니 그때 그 일을 너무 잘 이겨냈었구나.' '나는 그것을 대단히 좋아하는구나.' '나는 그런 일과 정말 안 맞는구나.' 다시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면 깨닫지 못했을 것들을 되짚어보고 나를, 내 주변인들을,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을 이해하게 된다.




특정 방향으로 전진하는 여행, 어떤 먼 곳으로 향하는 여행, 흔히 통상적인 의미의 여행이 '수평적 여행'이라면 나를 깊이 파고드는 여행은 '수직적 여행'이다. 내가 머물고 있는 바로 이 자리, 즉 ‘나’를 목적지로 두고 있는 여행인 것이다. 이런 수직적 여행이 뭔가 심오해 보이고, 어려워 보이고, 불필요한 것이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한 번 시도해 보면 이만큼 손쉽게 할 수 있는 근사한 여행은 없음을 알게 된다. 그저 편한 자리에 앉아 멍하니 생각에 잠겨보거나, 노트를 한 권 꺼내 지난 일들을 끄적여보거나, 사진 또는 영상, 일기와 같은 기록물을 다시 꺼내어 감상해 보면 된다. 대신 감상에 그치지만 말고 몇 차례 나에게 말을 걸어본다. 어떤 기분이었는지, 어떤 생각이 들었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이처럼 일상에서의 짧고 반복적인 수직적 여행을 통해 우리는 어떤 수평적 여행보다 훨씬 먼 길을 떠났다가 돌아오게 된다.




살아가다 가끔씩 수직적 여행을 떠나보면 좋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나를 깊게 파고들기도 하고 내 위에서 나를 관망해 보기도 한다. 여행을 하면서 사 온 여러 기념품을 숙소에 도착해 풀어보는 일처럼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며 내 속에 모아놓은 여러 가지를 풀어보는 시도를 해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내가 무엇을 경험했는지, 무엇을 깨닫게 되었는지, 무엇에 기쁘고 슬펐는지 진정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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