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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기록의 배신

by 로그아웃아일랜드

나는 버튼 한 번에 정보를 편하게 저장하고 쉽게 다시 열어볼 수 있는 북마크 기능을 오랫동안 애용해왔다. 너무 간단한 그 버튼에 중독되어 버린 나는 지도, 메신저, 메모어플 등에서 온라인 데이터들을 수시로 저장하곤 했다.



그런데 며칠 전, 지도 어플에 저장했던 중요한 주소가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심지어 GPS로 지정한 주소여서 더욱 찾을 방도가 없었다. 해당 북마크로 누군가에게 로드뷰를 보여준 기억도 분명히 남아있는데. 억울해 팔짝 뛰었다. 그러나 이런 억울한 일은 처음이 아니었다. 나는 여러 방면으로 저장해놓은 온라인 데이터들을 꽤 자주 잃어버리곤 했다. 저장을 애초에 안 했든, 오류로 저장한 것이 사라졌든 이런 일이 꾸준히 발생했음에도 왜 나는 온라인 기록에 계속 의존하고 있었던 걸까?



어릴 때부터 기록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의 어느 날, 아끼던 지갑을 잃어버렸는데 지갑 안에 있던 친구들의 전화번호, 주소 등이 담긴 소중한 쪽지까지 함께 잃고 말았다. 어린 나에게 그 정보는 유일한 자산과 같았고, 그 상실에 대한 충격은 20여 년 전의 일임에도 여전히 생생하다. 이후 실물의 정보는 분실의 위험이 크다는 것을 깨닫고 온라인 데이터 저장에 완전히 의존하기 시작했다. 그랬기 때문에 디스켓 발 20년 된 파일까지 아직 내 하드디스크에 남아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되기도 했지만, 회고해 보면 그 파일도 겨우 살아남았을 뿐 따져보면 십수 번 이상 데이터들을 잃어왔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실물의 기록들이 더 잃어버리기 쉽다고 계속 믿었다. 실물의 무언가를 잃어버린 횟수보다 데이터를 날리거나 어디 저장해뒀는지 못 찾는 횟수가 더 많았다는 것은 나중에야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잘 저장해놨다고 자부했던 여러 정보들은 엄밀히 말하면 내 정보로 저장된 적이 거의 없었다. 모두 내일의 나에게 미룬 정보여서 오늘의 나는 정보에 대해 헤드라인만 겨우 기억하거나 보통은 아예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 저장 버튼 하나 누르는 시간은 너무 짧아서 정보가 장기, 아니 단기기억으로도 스쳐갈 시간을 주지 않았다. 손으로 기록하던 시절에는 최소 한 번이라도 정보가 손과 머리를 훑기는 했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온라인 기록에 괜한 배신감을 느끼며 씩씩대던 나는 문득 사서 한 번 쓰지도 않은 채 서랍에 보관만 해온 노트와 수첩들을 떠올렸다. 사라진 데이터에 절망하는 나를 향해 그들이 '그러니까 진작에 손으로 쓰지...'라며 혀를 찰 것 같았다. 얼마나 대단한 기록을 해보려고 그렇게 모아두고 때를 기다렸을까. 나는 며칠 안 남은 여행에 가져갈 노트를 가벼운 마음으로 한 번 골라보았다. 휴대폰에 저장해놓고 절대 열어보지 않던 기록들에 비해 얼마나 더 자주 열어보는 기록이 될지는 시도해 봐야 알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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